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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2640

[제3차 고려 막부정권] (3) 강조의 실패를 새긴 쿠데타 주역들 이 3차 막부정권 수립 전야 군사 쿠데타 수뇌진이 누군지는 같은 고려사절요 해당 사건 기술에 명확히 드러나는데 상장군 김훈과 최질, 그리고 박성朴成·이협李恊·이상李翔·이섬李暹·석방현石邦賢·최가정崔可貞·공문恭文·임맹林猛이 그들이라 저에 의하면 이들은 땅(영업전)을 빼앗은 일을 가지고 여러 사람의 분노를 격화시켰으며, 여러 위衛의 군사들을 꾀어내어 북을 치면서 소란스럽게 궁궐[禁中]로 난입하고서는 장연우張延祐와 황보유의皇甫兪義를 포박하고 매질하여 거의 다 죽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장연우와 황보유의가 표적이었을까? 이어지는 기술. (이들이) 합문閤門 안으로 들어가 면전에서 호소하기를, “황보유의 등이 우리의 토지를 점탈한 한 것은 실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고자 한 것이지 조정[公家]의 이익을 위한 것.. 2024. 2. 8.
고려사 백관지百官志에서 얻을 건 없다 이건 내가 일찍이 고려시대 후비后妃 책봉제도를 들여다 볼 적에 절감한 것으로, 내 결론은 백관지에서 얻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였으니 왜 그런가? 전연 체계적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고려사 찬자들은 고려시대 관직 제도에 대해 똥인지 된장인지도 구별 못한 데가 천지라, 궁주宮主만 해도, 이것이 이른바 몽골 간섭기를 계기로 그 위상이 급속도로 변함에도 이걸 전연 알아채지 못했으며, 기타 원주院主니 뭐니 하는 등급도 말할 나위가 없었다. 그렇다면 어찌할 것인가? 철저히 사례 중심으로 파고 들어 그를 통해 그 작동 원리를 도출할 수밖에 없다. 고려사 백관에 대한 기존 연구성과란 것도 저 백관지 축약 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똥인지 된장인지 모르기는 고려사 찬자나 마찬가지다. 이것이 내 결론이었고, 그래서 나는.. 2024. 2. 7.
[제3차 고려 막부정권] (2) 영업전이 당긴 반란의 씨앗 고려사를 통괄할 때 건국기를 막부정권 1기라 명명한다면, 강조가 목종을 시해하고 권력을 잡은 시기를 2차 막부정권이라 해야 한다. 그리고 대략 백년 시간이 흘러 정중부에 의한 우리가 아는 그 막부정권이 본격 개막한다. 종래 막부정권이라 하면 정중부 이래 최씨 집권기에 전성을 이루는 시기만을 특정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생각보다 더 다채롭고 생각보다 더 복잡했으며 생각보다 더 많았다. 당장 강조 정권이 막을 올린 고려 현종시대만 해도 강조 말고도 또 한 차례 막부정권이 있었으니, 이 자리에서는 그 이야기를 정리해 보려 한다. 이를 그 주모자 이름을 따서 김훈·최질 막부정권이라 해야 할 성 싶은데, 때는 현종 5년(1014) 11월. 작금 방영 중인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이 막 이 시기로 돌입하는 듯하거니와,.. 2024. 2. 7.
전통시대 군대에서 유의할 점, 경찰 기능도 겸했다 군대는 국방, 경찰은 치안이라는 등식은 실은 국민국가 체제의 발명품이라, 전근대에는 실상 두 기능이 구분되지 않았다. 이 점을 하시라도 잊으면 안 된다. 다시 말해 전통시대 軍은 요새 우리 관념으로 본다면 전쟁하는 군대는 물론이려니와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 기능도 아울러 수행했다. 또 한 가지 전통시대 검찰 법원도 문제인데, 그때야 기소 불기소 이런 개념도 없었고, 검사 판사도 실상 지방관 혹은 임금이 겸했다. 입법사법행정이 구별되지 않은 시대였다. 2024. 2. 7.
[강동육주를 심판한다] (2) 육주六州 vs. 육성六城 강동육주江東六州라 하지만, 이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아니하며 현대 역사학이 만들어낸 허상이다. 다만, 그 용어가 아주 쓰임이 없지는 아니해서 그런 대로 10~11세기 고려 거란 관계를 설명할 때 요긴하기는 하다.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서도 툭하면 강동6주라는 대사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강동이라는 말 자체가 거란 주체 시각임을 앞서 지적한 바 있다. 고려가 宋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하고, 거란에 신속臣屬하는 반대급부로 개척한 이른바 강동육주는 협상 성립과 더불어 곧바로 고려에 관할이 넘어온 것도 아니요, 거란의 묵인 아래 고려 왕조가 직접 군사를 발동해 순차로 개척했다는 사실도 앞서 보았다. 그 전방 개척 사령관이 다름 아닌 서희였다. 더구나 그렇게 해서 그 땅에 쌓은 전초기지가 6군데도 아니요 사서.. 2024. 2. 7.
고려는 태생 자체가 막부 정권이다 동시대 중국은 당唐 제국이 결딴난 상황이라, 절도사 시대가 개막하면서 막부정권 문을 다시금 열었다. 다시금이라 하는 이유는 인류 역사는 언제나 군사력을 바탕으로 삼아 새로운 시대를 연 까닭이며, 이에서 후삼국시대 개막과 그에 따른 고려왕조로의 통일 역시 이에서 단 한 치 어긋남이 없는 까닭이다. 절도사에 비견하는 중앙 정부 파견 관리가 없던 신라의 경우, 도독이니 뭐니 해서 무던히도 봉건제후화하는 지방 거점 권력을 억누르고자 했고, 그것이 장기간 성공한 것처럼 보였지만, 겉만 그리보였을 뿐, 속으로는 발호하는 권벌들을 막을 수가 없었다. 도독들이 사라진 자리에 숨을 죽이고 있던 지방권력들이 틈바구니를 헤집고 나서기 시작했으니, 깡패 두목들까지 설치는 막부시대가 화려한 팡파르를 울리며 개막했다. 고려는 태.. 2024.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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