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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2639

참을 만큼 참았다, 정면으로 대드는 고려 제2차 고려거란전쟁에서 소기한 성과를 내지 못한 거란은 게릴라전법을 채택해 고려를 괴롭히기로 방향을 바꾼다. 이른바 치고빠지기 전법이었으니, 그 동원하는 군사 성격에 따라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 고려와 거란이 교통하는 거란 동방기지인 동경유수가 거란군을 소규모로 직접 동원해 고려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방법이 있고 둘째 여진을 동원한 간접 타격도 있었으니 둘은 공격 타점도 달랐다. 먼저 동경유수 기점 거란군 타격은 고려 기준으로는 서북면에 집중되었으니, 흥화진을 필두로 하는 지금의 평안북도 일대를 집중 타격했다. 반면 여진을 동원한 타격은 한반도 동해안에 집중하는 특징을 보이는데, 그 타격 지점은 지금 기준으로 말하면 강릉과 경주가 타격지였으니, 이쪽이 아무래도 동해안 대도회였던 까닭이다. 현종 원년 이후.. 2024. 2. 10.
[강동육주를 심판한다] (3) 요사遼史가 말하는 육주六州 우리는 앞서 거란 측 기록에는 한결같이 육주六州라고 등장하는 실체가 고려사에는 한결같이 육성六城이라는 말로 대치한다 지적했고 둘 중에서도 후자가 사실에 부합함도 보았다.따라서 강동6주江東六州라는 말은 있을 수 없으며 그 토대가 된 육주라는 말도 순전히 거란 측 수사에 지나지 않았다. 실제 이 말은 이런 검토도 없이 근현대 역사학이 무책임하게 주물한 거란 중심주의의 발로에 지나지 않는다.이 점이 나로서는 수상쩍기 짝이 없어 한국 근현대 역사학은 22사 혹은 24사 중에서는 유독 요사를 개취급 걸레취급함에도 어찌하여 이 문제만큼은 요사를 취해서 저런 용어를 고수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그렇게 요사를 믿는다면 왜 그 지리지는 버리는가? 웃기지 아니한가? 그 지리지를 취하면 위만조선이건 그 땅에 설치됐다는 이른.. 2024. 2. 10.
양원정閬苑亭, 고려시대 동물원 고려사 본기와 고려사절요에 의하면 현종 즉위년인 1009년 2월에 교방敎坊을 파하고, 궁녀 1백 여 인을 풀어주는 한편. 양원정閬苑亭을 허물고 진기한 길짐승·날짐승·어류[珍禽奇獸龜魚之類]를 산과 못에 놓아주었다고 했거니와, 이 양원정이라는 데가 동식물원과 수족관을 겸한 시설임을 안다. 저 양원정은 구체 양상이 어떠한지는 알 수 없어, 그 명칭 풀이로 그 성격을 가늠할 수밖에 없으니, 위선 음을 【당운唐韻】에선 來와 宕의 반절, 【집운集韻】과 【운회韻會】, 【정운正韻】에서는 郞와 宕의 반절로 음은 량浪이라 했으니, 소리는 량임을 본다. 그 의미에 대해 【설문說文】은 門高也라 했으니 솟을대문임을 알겠지만, 그 솟은 데는 광활한 빈 공간이라 그런 까닭에 다른 의미로 空虛也라 했다. 【관자管子·도지편度地篇】에 .. 2024. 2. 10.
강민첨, 활쏘기 말타기도 못한 서생 출신 대장군 강민첨姜民瞻은 진주晉州 강씨라, 강감찬과 본관이 같고 무엇보다 활동연대도 겹친다. 또 같은 서생 출신으로 이른바 귀주대첩에서 대승을 이끈 전쟁 영웅이다. 강민첨은 전쟁 영웅인 까닭에 고려사와 절요에는 죽은 시점이 명확히 보이니 1021년, 현종 11년 11월 12일 계미癸未가 그때라 이르기를 “지중추사知中樞事이면서 병부상서兵部尙書인 강민첨姜民瞻이 졸卒했다”고 해서 현직 상태에서 죽었음을 본다. 각종 사전에는 그가 광종 14년, 963년 진주에서 원윤 벼슬을 지낸 아버지 강보능姜甫能과 거창 신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그 근거가 아마 진주강씨 족보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를 믿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고려사 그의 열전에는 그가 목종(재위 997~1009) 시대에 과거에 급제했다는 기록이 있을 .. 2024. 2. 9.
[제3차 고려 막부정권] (7) 달래야 하는 군인들 막부를 타도한 현종은 1015년 4월 서경에서 개경으로 귀환한다. 시급한 과제는 막부 이전으로 사회를 돌리는 일이었다. 같은해 7월, 막부 최고기구인 금오대金吾臺를 혁파하고는 사헌대司憲臺를 두었다. 이 사헌대는 조선시대 사헌부랑 거의 역할이 같을 것으로 본다면, 간쟁을 담당한다고 하지만 실제는 사찰에 가까운 기구였다. 그렇지만 드러난 불만을 막부를 타도했다 해서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같은달 도병마사都兵馬使 제안에 대한 응답 형식을 빌려 장군 정신용鄭神勇과 임영함林英含, 그리고 그 수하 병사 1만2천500여 명이 모두 변경에서 공적이 있다 해서 그 자급資級을 하나씩 올려 포상했으니, 돈이 얼마나 더 들어간 일이었겠는가? 그러지 않을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고 봐야 하며 이런 식으로 막부를 타도한 보.. 2024. 2. 9.
거란지패, 미유여차지심[契丹之敗, 未有如此之甚] 거란∨지패 / 미유 ∨ 여차 ∨ 지심 정도로 읽어주면 되겠다. 이건 하도 인구에 회자하는 명문이라, 이 정도는 기냥 저 한문으로 외워두면 와! 똑똑하다는 소리 듣기 십상이니, 독자들은 참고해주셨으면 싶다. 뜻 풀이도 쉬워서, 거란의 패배가 이토록 심한 적은 일찍이 없었다는 뜻이다. 고려사 권94 열전 권 제7 제신諸臣 강감찬 전에 보이는 한 구절이라, 이른바 귀주대첩 승리를 이렇게 묘사했다. 이 장면을 작금 방영 중인 kbs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이 어떤 식으로 묘사할지는 모르겠다. 이 드라마는 내가 몰아보기는 하는 방식으로 시청 중인데, 그 첫 회분 첫 장면을 보고서는 와 우리 공중파 역사드라마도 이젠 이렇게 전투장면을 연출하는 시대가 왔구나 하고 찬탄했으니, 그런 식으로 묘사되지 않을까 한다. 제3차.. 2024.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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