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역사문화 이모저모2724 다리우스가 닦은 아케메네스 고속도로 도로를 정비하지 아니하고서 무슨 국가 통치를 하겠는가? 이 점에서 한반도 전근대는 재앙이다. 도로다운 도로도 없어 수레 하나 제대로 다닐 길이 없었다. 물론 전국토 70%가 산악이라는 특성에서 말미암기는 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간선도로 하나 없었다. 영남대로? 호남대로? 웃기는 소리. 그게 무슨 요즘 기준으로 도로 축에 속하는 줄 아는가? 그런 도로라 해 봐야 포장도 되지 않았다. 포장한 도로 봤는가? 기껏 왕성 혹은 왕궁이라 할 만 한데 흉내만 내다 말았을 뿐이다. 고갯길은 도로라도 있었던 것 같은가? 천만에. 오죽하면 육십령은 육십명이 모여야 비로소 통행을 허락하지 않았겠는가? 왜? 호랑이 산도적 때문이었다. 다리우스 대왕 Darius the Great (Darius I) 시절 기원전 5세기에.. 2024. 7. 3. 천애절벽 올라 베히스툰 비문 조사하는 서 헨리 롤린슨 Sir Henry Rawlinson 베히스툰 비문 Behistun Rock이 인류사, 특히 고대 근동사는 물론이고 쐐기문자 판독에 결정타를 날렸다는 점에서 그 중대성은 이집트 문자를 읽게 만든 로제타스톤에 비견한다. 그 발판을 마련한 이가 19세기 중반 헨리 롤린슨 Henry Rawlinson 경이라는 영국 동인도 회사 군인이었다. 그는 이 설형 문자를 판독 번역해 냈다. 그의 초인적인 노력이야 뭐라 하겠냐마는 그 발판을 마련한 베히스툰 비문을 조사하고자 그가 저런 험준한 벼랑을 올라 그가 비문을 조사했다 해서 회화로 표현한 한 장면이다. 내가 볼 땐 저리 오를 수도 없고, 더구나 저 상태로 계속 조사한다? 밧줄을 매달고 대롱대롱 매달려 조사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물론 내 막연한 추측이다. 지극히 극화한 상상화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2024. 7. 3. 밀비우스 다리 전투, 나와바리 쟁탈 조폭 쌈박질 서기 312년 10월 28일, 로마 제국 패권을 둔 조폭 내전이 벌어졌으니, 이 전쟁에서 콘스탄티누스가 이끄는 군대가 막센티우스 대군을 로마 근교 밀비우스 다리에서 사생 결단을 벌여 일망타진한다.이 승리로 콘스탄티누스는 사두정치체제라는 공동통치체제를 끝내고 1인 독재 시대를 화려하게 개막한다. 다만 이 기억이 싫어서였는지, 콘스탄티누스는 이후 로마가 싫다 해서 냅다 콘스탄니노플이라는 행정수도를 건설하기 시작하고는 기어이 그쪽으로 도읍을 옮기니, 이렇게 해서 로마시대는 비잔틴시대로 넘어간다. 로마사 분수령을 이룬 저 양아치 쌈박질을 그것이 일어난 장소를 따서 밀비우스 다리 전투 Battle of the Milvian Bridge 라 하거니와, 저 다리를 라틴어나 그 후신 이탈리아가 저리 부를 리는 없을 테.. 2024. 7. 3. 이집트에서는 물고기도 문신을 하고 붕어빵도 즐겼다 혹자는 낙인烙印이라 하겠지만 내 보기엔 태투 tatoo 문신이다. 물고기인들 태투 하지 말란 법 있는가? 그래 물고기도 세월이 지나 3천 년이 흐른 지금은 태투 대신 점만 남았지만 고대 이집트에서는 문신을 했다. 그게 유행이었다. 아 그보다는 붕어빵에 가까우니, 그렇담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붕어빵을 즐겼나 보다. 이르기를 Ivory fish amulet, with the throne-name of king Thutmose IV, "Menkheperure", meaning; "Established in forms is Re."New Kingdom, 18th Dynasty, c. 1479–1425 B.C. On display at the Virginia Museum of Fine Arts. 57.33 라.. 2024. 7. 2. 7년 가뭄을 말하는 이집트 비문 저를 내용에 따라 기근 비문 Famine Stela 이라 하거니와 홍수신화와 맞물려 이런저런 이야기를 양산하는 빌미로 작동하기도 한다. 진흥왕 창녕 척경비를 연상케 하는 저 돌덩이는 이집트 아스완Aswan 근처 나일강 하중도 세헬 섬 Sehel Island에 있다. 당근빠따로 텍스트는 이집트 상형문자다. 제3왕조 파라오 조세르 Djoser 통치 기간 동안 7년 동안 가뭄과 기근이 발생했다 한다. 건립연대는 기원전 332년부터 31년까지 통치한 프톨레마이오스 왕국 Ptolemaic Kingdom 시대로 본다. 천연 화강암 표면을 직사각형 모양으로 다듬고는 32줄로 텍스트를 새겼다. 상단에는 크눔Khnum, 사티스Satis, 아누켓Anuket 세 이집트 신을 묘사한다. 그들 앞에서 조세르는 뻗은 손에 제물을.. 2024. 7. 2. 왕비? 귀족? 소속이 애매모흐한 노지메트 Nodjmet 검은 왕비 노지메트 Black Queen Nodjmet(기원전 1000년) 미라. 여전히 땋은 머리 baids를 하고 있다. 그 정확한 발음을 모르니 이표기가 많아 네지메트Nedjmet, 혹은 노트미트Notmit 라고도 한다. 네제메트Nedjemet는 이집트 제21왕조 왕비다. 람세스 10세[Ramesses X]와 튀티Tyti 왕비 딸이다. 일부 연구자는 아문Amun의 대제사장 아멘호테프Amenhotep이라 하지만 이는 아마도 피안크Piankh의 부인 네제메트Nedjemet와 혼동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 이건 내가 참고한 어떤 글이고, 저 분 정확한 소속은 저에서도 보이듯이 논란이 있는 모양이라 Nodjmet was an ancient Egyptian noble lady and/or Queen .. 2024. 7. 2. 이전 1 ··· 112 113 114 115 116 117 118 ··· 454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