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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3264

견과류, 글레디에이터들의 음식 Nuts immortalized in the centuries in Pompeii 곧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재에 묻힌 로마 도시 폼페이 유적 발굴 너츠가 그대로 화석이 된 것을 말하는데 꼭 밤이라 해얄지 아님 다른 견과류인지를 몰라 일단 너트라 해둔다. 이 친구들은 참 고고학 환경 좋아. 저런 먹거리가 저런 상태로 나와주니 얼마나 좋아? 그러니 할 일 없는 우리야 맨 껍데기 토기나 만지작 거리는 희롱을 고고학이라 하지 않겠는가? 참 불쌍하기는 하다. 암튼 견과류는 모든 로마인들에게 매우 인기가 있었지만, 특히 글래디에이터들 사이에서 영양가가 높고 단백질이 풍부하여 매우 흔했다. 파바콩 fava beans, 보리, 말린 과일과 함께 싸움 후에 추천되었다. 2024. 11. 17.
안서장군사마安西將軍司馬 by 홍승직 안서는 지명, 장군사마는 무관 중 고위직이다. 장군 중의 장군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앞은 팔보가 전각 입문 학생 때 본떠서 새긴 것이고(털처럼 무수히 드러난 칼자국), 아래는 원본에 가깝다. 중국 한나라 때 서역에 파견하는 장군에게 준 인장으로 보인다. 당시에는 돌에 새긴 게 아니라 주로 주물이었다. 안서, 미지의 땅, 두려운 곳, 죽지 않고 성공해서 돌아오면 출세가 보장되는 곳이었다. 왕유가 쓴 [안서로 가는 원이를 전송하며] 시는 송별시의 명작으로 손꼽힌다. 나중에 별도로 소개할 계획이다. 2024. 11. 17.
빙하기 구석기인이 상아로 새긴 말 이 빙하기 말은 이미 이전에 아래처럼 상세히 소개한 적 있다. 포겔헤르트 동굴이 토해낸 3만5천 년 전 구석기시대 말 한 번 했다고 다 기억하면 학습이 필요는 없으리라. 친숙, 나아가 이를 통한 생소가 박멸할 때까지 끊임없이 반복해야 한다. 현재까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말 조각상이라 32,000~35,000년 전에 온 것이라 간주한다. 정교하기 짝이 없게 조각한 이 빙하기 조각상은 독일 남서부 슈테텐Stetten 근처 포겔헤르트 동굴 Vogelherd Cave에서 발견되었다. 매머드 상아로 조각된 이 작은 말은 본래 이보다 더 정교했을 것이지만 다리와 꼬리 부분이 떨어져나갔다. 머리는 완전하며 입과 콧구멍, 눈도 표현했다. 귀도 보이며 목은 아치형이다. 갈기와 등, 측면에는 교차한 대각선 절개 표.. 2024. 11. 16.
동탁董卓의 배꼽 by 김영문 저잣거리에 동탁의 시체를 내걸었다. 동탁은 평소에 살이 쪘는지라 시체에서 기름이 흘러내려 땅에 스며들었고 풀이 그 때문에 붉어졌다. 시체를 지키는 관리가 날이 어두워지자 큰 심지를 만들어 동탁의 배꼽에 꽂고 등불로 삼았다. 등불의 환한 빛이 아침까지 이어졌으며 이와 같이 여러 날을 지속했다. (『삼국지』 권6 「위지.동탁전」 배송지 주 인용 『영웅기(英雄記)』) 이미지 출처: 百度圖片 *** 삼국지 배송지 주 완역 출간을 코앞에 둔 김영문 선생 글이다. *** previous article *** 여포가 동탁을 죽이다 by 김영문 2024. 11. 15.
여포가 동탁을 죽이다 by 김영문 여포는 같은 군郡 사람 기도위 이숙李肅 등을 시켜 자신의 친위병 10여 명을 거느리고 거짓으로 위사衛士의 복장으로 꾸며 궁궐 문을 지키게 했다. 여포는 품에 어명이 적힌 조서를 품었다. 동탁이 도착하자 이숙 등이 동탁을 공격했다. 동탁은 깜짝 놀라 여포가 어디 있는지 불렀다. 여포가 “황상의 조서를 갖고 있다”라고 했다. 마침내 동탁을 죽이고 삼족을 멸했다. 주부主簿 전경田景이 동탁의 시신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자 여포가 또 그를 죽였다. 무릇 세 사람을 죽이자 나머지는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장안의 사람들은 모두 서로 경축했고, 동탁에게 아부한 자들은 모두 하옥해서 죽였다.(『삼국지』 권6 「위지.동탁전」) 이미지 출처 百度圖片 *** 삼국지 배송지 주 완역 출간을 앞둔 김영문 선생 글이다. *** pr.. 2024. 11. 15.
정사 삼국지 무영전본과 사고전서본 by 김영문 * 청대에 이르러 중국 고적의 방각본과 복각본이 쏟아져 나오자 청나라 강희제(康熙帝)는 명나라 때 건립한 무영전(武英殿)이라는 전각 안에 ‘무영전서국(武英殿書局)’을 설립하여 황실의 장서를 소장하고, 교감하고, 연구하고, 정리하고, 다시 판각하는 기관으로 삼았다. 이곳에서는 강희 40년(1701년) 이후 정교하고 미려한 동판 활자와 특별 제작한 개화지(開化紙)를 이용하여 다양한 중국 고적을 고품질로 인쇄하기 시작했다. 특히 다음 시대인 건륭(乾隆) 4년(1739년)에서 건륭 49년(1784년)까지 ‘흠정이십사사(欽定二十四史)’를 간행했는데, 이 속에 건륭 4년에 교감하여 간행한 『삼국지』 14책 65권이 편입되었다. 이 판본을 ‘무영전본’ 또는 줄여서 ‘전본(殿本)’ 『삼국지』라고 하며, 청대에 간행된 .. 2024.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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