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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2729

암포라에 납덩이에 회향목까지 적재한 로마 화물선 1980년 이탈리아 코마키오 Comacchio 근처에서 발견된 이 배는 길이가 21미터가 넘으며 기원전 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암포라(와인이나 올리브 오일로 가득 찬 것 같음), 납 덩이 lead ingots, 심지어 회향나무 통나무 boxwood logs 까지 운반하고 있었다. 간단히 말해 로마시대 화물선이다. Photo: Soprintendenza per i Beni Archeologici of the Emilia Romagna #난파선 #Shipwreck #로마난파선 #화물선 #침몰선 #로마선박 2024. 5. 20.
배접지, 서양의 책 땜질 1535년 인쇄된 책을 제본한 흔적이다.책을 엮을 때 필사본을 덧대 땜질했다.책이 찢어지면서 속이 드러났으니 겉옷이 찢어지면서 난닝구가 드러난 셈이다.한국 서책 문화에선 비교적 흔한 배접지 전통과 근본 발상이 같다.우리 배접의 양상으로 아래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창덕궁 대조전 장판 뜯다가 발견한 꿩무늬 옷본 적의본(翟衣本) 2024. 5. 20.
로마 전성기 이탈리아 반도를 관통한 10대 고속도로 로마 제국 절정기 이탈리아 반도를 연결한 10개 고속도로. 가장 중요한 것은 로마와 카푸아 Capua 를 연결하고 항구도시 브룬디시움 Brundisium 까지 남쪽으로 이어지는 "비아 아피아 Via Appia"다. 이른바 아피아 가도街道라 일컫는 데다. 저 카푸아가 교통 요지라, 그에서는 아피아 가도 말고도 비아 포필리아 Via Popilia 라 해서 남쪽 해변을 따라 달리는 도로가 났으니, 이 도로가 결국 시칠리아와 접점을 형성한다. 로마를 기점으로 동북쪽을 향하는 주요 도로는 4개가 있었다. 개중 아드리아해변 항구 도시들인 아르미니움 Arminium과 안코나 Ancona, 그리고 카스트룸 트루엔티늄 Castrum Truentinium 을 연결하는 도로가 있었다. 저들 세 아드리안 해변도시는 또 서로 .. 2024. 5. 20.
바다가 삼킨 도시 헤라클레이온 Heracleion Heracleion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Alexandria 북동쪽 아부키르만 Abu Qir Bay 에 위치한 고대 이집트 도시다. 이곳은 '토니스 Thonis ' 혹은 '토니스-헤라클레이온 Thonis-Heracleion' 이라고도 한다. 헤라클레이온은 기원전 8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한다.전설에 따르면 영웅 헤라클레스 자신이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 도시 이름이 그리 생겼다고 한다. 이 도시는 2000년 프랑스 고고학자 프랑크 고디오 Frank Goddio 와 그의 팀이 사진에서 보는 거대한 석상을 물속에서 건져냄으로써 본격 데뷔하게 된다.수중 유물 중에는 선박 64척, 닻 700점, 금화 보물창고, 16피트 높이로 선 조각상, 특히 아문-게레브 Amun-Gereb 신에게 바치는 거대한 .. 2024. 5. 20.
시위를 당기는 아시리아 왕 Tiglath-pileser III 칼후 Kalhu 출토 아시리아 알라바스터 alabaster 부조. 기원전 745-727년 제작. 활로 무장한 아시리아 왕 티글라스-필레세르 3세 Tiglath-pileser III 를 묘사한다. 그의 옆에는 한 아시리아 전사가 고전적 뾰족한 아시리아 투구를 쓰고 단검을 들고 있다. 이 작품은 베를린 페르가몬 박물관 Pergamon Museum 에서 만난다. 저 왕에 대해선 아래 참조 Tiglath-pileser III, king of Assyria (744-727 BC) #아시리아 #아시리아부조 #니네베 #칼후 #페르가몬박물관 #tiglathpileser 2024. 5. 19.
보령 성주사의 전신 백제 오합사[烏合寺, 오회사烏會寺, 오함사烏含寺] 터 by 심상육 백제 멸망 후 통일신라 시대 당나라에서 선종 불교를 공부하고 돌아온 무염대사가 머무르면서 크게 일으켰고, 신라 문성왕이 성주사라 고친 절로(위키백과 인용), 백제시대에는 오합사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절터다. 백제시대 가람 흔적은 충남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하여 알려졌는데, 목탑지(추정, 지하로 구축된 축기부)-금당지(지상으로 올린 기단토)-강당지(지상으로 올린 기단) 그리고 강당 좌우로 정사각형 소규모 건물 그리고 이 정사각형 건물지 남편으로 회랑과 별도건물이 배치된 형태로, 그 모습이 백제시대 부여의 사찰터와 같다. 특히, 그 배치 형태가 577년의 절대 년대가 확인된 왕흥사지와 흡사하고, 567년도의 능산리사지와도 비슷하다. 오합사는 법왕이 전쟁에서 죽은 원혼을 달래기 위해 지었다고 하여 5.. 2024.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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