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역사문화 이모저모3298

예비군 참호에서 찾은 율촌리고분 옹관묘 by 이영덕 높이가 1m정도되는 익산 율촌리고분 옹관을 불과 6cm로 축소했다.1998년 마백연구소에 있을때 당시로서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분구묘를 찾았다.낮은 언덕 능선에 팬 예비군 참호의 단면을 정리하다보니 주둥아리를 맞댄 옹관묘가 확인되는 것이 아닌가.그리고 이어진 발굴.전주이씨 문중의 묘 아래로 이어지는 옹관을 그대로 둘수는 없었다. 문중어르신께 선영 아래에 또 무덤이 있으니 이건 조사해야 한다고 설득해서 결국 빛을 보게된 옹관이다.한컷에 들어오지 않는 5호분의 모습을 담고자 어안렌즈를 구입하고역시 맨발 발굴의 추억이 있는 곳이다. 2024. 8. 13.
[고인돌을 묻는다] (1) 새빨갛게 틀린 춘천 천전리 정비복원 춘천 천전리 고인돌묘 군이다. 식민지시대에 존재가 알려졌고 1960년대 국립박물관이 발굴조사하고 이후에도 발굴이 이뤄져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정비가 되었다. 이 정비가 얼마나 저 고인돌묘 조성 당시 모습을 반영했는지는 모르지만 다 틀렸다. 새빨갛게 틀렸다. 무엇이 틀려먹었는가? 2024. 8. 13.
광개토왕비문은 고구려의 마스터베이션, 거꾸로 읽어야 한다 지들끼리 제자랑 하는 선전문을 금과옥조로 삼을 수는 없다. 물론 그 선전물은 선전물 자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다대함을 잊지는 말아야 한다. 내가 항용 말하듯이 광개토왕비문은 지금의 북한 정권 노동신문과 똑같다. 그 노동신문 봐라. 지구상 이렇게 강력한 국가, 지구상 이렇게 인민이 일치단결을 이룩한 국가 없다. 일본서기 역시 마찬가지다. 광개토왕비문은 딱 그 노동신문이요 딱 그 일본서기다. 뭐 담덕이가 5만을 동원해서 남쪽으로 내려와서 신라를 구원해? 말 같은 소릴 해야 한다. 그렇게 주리고 곧 망할 것 같은 그 당시 신라는 황남대총을 만들고 있었다. 신라 매금이 한번도 조공한 적 없어? 거꾸로 읽어라. 조공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신라가 조공을 해? 웃기는 소리 작작하라 그래라. 백제를 박살내? 그.. 2024. 8. 13.
임플란트 창시자는 에트루리아? 에트루리아 인공 치아, 복원품으로 약 2000년 전. 기원전 700년부터 에트루리아Etruria(이탈리아 움브리아와 토스카나)에 사는 사람들인 에트루리아인들은 틀니dentures와 의치 false teeth 를 처음으로 만들었다. 부유한 사람들만이 이 치료를 감당할 수 있었다. 치과 전문의가 없었기 때문에 의사가 이 일을 했다. 에트루리아 한 무덤에서 발견된 치아 2개가 달린 의치 원본을 복원했다. 저 의치를 임플란트라 하기는 곤란하겠지만, 그렇다고 그 단초가 아니라고도 할 수 없다. 아래와 같은 더 읽기 자료도 있다. Copy of an Etruscan denture, Europe, 1901-1930 | Science Museum Group CollectionEtruscan denture, 2 teet.. 2024. 8. 12.
사진이 포착한 1870년대 카르낙 신전 이는 1870년 무렵 사진이 포착한 이집트 카르낙 신전 단지 Karnak Temple Complex 한 장면이다.붕괴 일보 직전인 기둥은 아마 바로 세웠을 것이다. 현장 가면 이미 다 곧추 섰다. 복잡한 상형문자로 덮인 거대한 이들 기둥은 흔히 이집트 건축의 웅장함을 말해주는 증좌로 거론하지만 글쎄 과연 그렇게 보아야 할까?카르낙 사원 단지는 기원전 2000년 무렵 중왕조 때 건설이 시작되어 이후 2천년간 간단없는 변화가 있었다.파라오마다 뭔가 하나 남기고 싶어해 추가하곤 했다.배향한 주신은 아문라Amun-Ra지만 꼭 그에게 한정할 필요가 있겠는가? 나한테 복만 내려준다면 무당신도 좋다. 이집트라고 달랐을 것 같은가?고도하는 문명을 구가했지만, 그 문명도 고립은 결국 붕괴를 자초하고 만다.  아시리아에 .. 2024. 8. 12.
아직도 납득할 수 없는 풍납토성 시유도기 이게 아마 연합뉴스를 통해 발행한 사진 한 장면으로 기억하는데 지금 여러 키워드 묶음해서 검색해 보니 아래 기사가 걸린다. 백제판 달항아리 시유도기 복원 한창 송고시간2009-03-03 07:00 2009년이면 저 유명한 2000년 풍납토성 사태가 한 단계 진정하고, 그 이후 조금은(하지만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안정된 상황에서 발굴이 재개되어 그 조사단인 한신대박물관이 풍납토성 경당지구를 재발굴하게 되면서 수습한 유물들을 정리하는 모습을 현장 취재를 겸해 박물관을 찾아가 보고 들은 것을 정리했을 것이다. 저 인물 속 주인공이 권오씨다. 서울대 국사학과로 들어갔다가 역사로는 먹고 사는데 지장 있겠다 싶어 고고학이랑 양다리 걸치기 해서 동아대랑 한신대 거쳐 두 가지 다 해 먹다가 다 늙은 지금은 뒤늦게 모교.. 2024. 8. 12.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