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역사문화 이모저모2492 페라리 타고 도망가던 현종, “너무 왔나?” 앞서 보았듯이 코앞까지 밀어닥친 거란군을 피해 고려 현종 왕순은 1010년 12월 28일 임신壬申, 양력 2011년 2월 3일 남쪽으로 줄행랑을 쳤다. 드라마는 현종이 끝까지 개경을 사수하려다가 할 수 없이 피했다고 해서 고뇌에 찬 군주의 모습을 그렸지만, 실상은 전연 달라 이날 밤 몰래 후비后妃 몇 명과 이부시랑吏部侍郞 채충순蔡忠順을 포함한 금군禁軍(궁궐 수비대) 50여 인과 더불어 아주 단촐한 규모로 경성을 빠져나갔다. 소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꼼수였다. 밤새 달린 현종은 이튿날인 1010년 12월 29일 계유季酉에는 적성현積城縣 단조역丹棗驛이란 곳에 이르고 다시 그곳을 떠나 날이 저물어서야 창화현昌化縣이란 곳에 이르렀다. 앞 지도를 보면 이날 임진강을 도하했음을 본다. 아마 그쪽 현 치소에서 머물.. 2024. 1. 30. 남쪽으로 튄 현종, 보름 만에 날아서 나주에 닿다 성종이 친정한 이른바 2차 고려거란전쟁에서 결국 개경까지 함락 당할 위기가 닥치자 현종은 1010년 12월 28일 임신일에 남쪽으로 줄행랑치기 시작해 1011년 1월 13일 정해丁亥(양력 2월 18일) 노령蘆嶺을 넘어 나주羅州에 입성하니 개경 출발 기준 불과 보름 만이었다. 왕의 행차가 이렇게 빠를 수는 없으니 얼마나 급박했는지를 짐작케 한다. 우사인 볼트보다 빠른 줄행랑이었다. 예서 궁금증. 남쪽은 고려시대 당시에도 개경을 기준으로 삼아 크게 두 가지 통로가 있었다. 나주로 곧장 남진하는 코스와 소백산맥 넘어 경주 방면으로 가는 길이 그것이었다. 두 길은 천안, 구체로는 갈기비가 있는 데서 갈라진다. 현종은 단 코스를 선택했다. 왜? 저 코스는 전반으로 보아 평탄하나 두 개의 고개를 넘어야 한다. 천안.. 2024. 1. 30. 강동6주? 서희가 강제로 탈취했지 거져 얻은 것이 아니다 저 강동육주江東六州라는 말은 전통시대 사서에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이 점이 못내 옛날부터 미심쩍기 짝이 없었지만, 그런 대로 저 시대 역사를 설명할 때는 편리한 점이 많아 그대로 따르기는 했지마는 더는 두고 볼 수 없다. 우리한테 각인한 이미지는 서희라는 세 치 혀로 무장한 뛰어난 고려시대 외교관이 80만 대군이라 설레발 친 거란 소손녕과 외교 담판을 지어 그 자리서 저 땅을 받았다고 하지만 천만에. 당시 양쪽 조정을 대표한 두 사람 사이에 어떤 밀실 야합이 있었는지는 고려사(절요 포함)와 요사 모두 침묵하지만, 이후 전재된 양상으로 보건대 명확해서, 또 많은 이 시대 연구자가 지적하듯이 고려는 송과의 조공책봉 관계를 끊고 이제부터는 거란을 종주국으로 섬겨 요나라에서 조공 책봉을 받겠다. .. 2024. 1. 30. 조선의 건국, 왕후장상을 씨로 따지는 시대의 개막 거리마다 외국산 상품이 넘쳐나는 시대가 있었다. 해마다 외국 상선이 쏟아져 들어오는 시대가 있었다. 장사로 떼돈 버는 사람도 생겼다. 언감생심 출세는 꿈도 꾸지 못할 사람들이 불알 짤라 출세하고 소 잡는 백정하다가 벼락출세하는 시대가 있었다. 그들은 당당히 외쳤다. 왕후장상이 어찌 씨가 있으리오? 이런 시대 카니벌이 있었다. 모인 군중은 툭하면 삼만이요 많으면 수십만이었다. 한데 혁명이 일어나 느닷없이 외국산 수입 전면 금지 조치를 내렸다. 원리주의자들이 등장해 세상은 썩었다고 성토하면서 농업만이 살 길이라고 설레발을 쳤다. 군중 집회 역시 전면 금지되었다. 이로써 한국사는 오백년을 후퇴했다. 저 싸가지 없는자 수괴가 이성계요 정도전이다. 저들이야말로 수구반동이다. (2016. 1. 30) *** 좀 과.. 2024. 1. 30. 혈혈단신, 보재기 들고 가는 사신 없다 전통시대 왕조국가 체제에서 저런 식으로 선물 꾸러미 몇개 든 쫄개 몇 명 데리고 가는 사신 행렬단은 유사 이래 없다. 외교를 내 아버지가 내 담임 선생님 뵈러 갈 때 우와기 걸치고 쌀 가마니 하나 들고 가는 그런 모습으로 할 수는 없다. 심지어 전투 중인 양쪽 군대에서도 협상을 벌일 때도 저런 식으로 하지 않았다. 비상 사태에 대비해 적어도 수 백 명 이상 되는 중무장한 양쪽 군대가 뒤쪽에서 집결한 가운데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물론 이해는 한다. 드라마니깐. 고려거란전쟁에서 2차 전쟁이 끝나고 양측에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전쟁을 막아보고자 고려 조정에서 김은부를 거란에 파견하는 장면이다. 촬영 무대가 어딘지 모르겠는데, 저런 장소 찾는다고 애를 먹었겠다 싶다. 배경은 CG 처리해야 했으니 돈도 .. 2024. 1. 30. 강동육주, 고려거란전쟁의 최대 변수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이 그 대미라 할 3차전을 향해 치닫는다. 그 전쟁의 야합이 이른바 강동6주였으니 이후 전쟁과 그 간헐 기간 내내 두 왕조는 이 강동육주를 사이에 두고 팽팽한 긴장을 연출하게 된다. 서희는 세 치 혀로 강동6주를 획득했던가? 아니다. 야합이 있었다. 고려는 송과의 조공책봉관계를 청산하고 거란에 칭신하는 대신 그 선물로 저 땅을 받았으니 그렇다면 왜 거란은 저 땅을 순순히 내어주었는가? 그네의 직접 통치력이 미치지 아니하지만, 신속하는 여진 땅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거란으로서는 주나마나 아무런 중요성이 없는 땅이었다. 한데 이 땅이 이후 저리 비린내나는 전쟁 혹은 대치국면마다 그토록 중요한 변수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고려도, 거란도 몰랐다. 애꿎은 여진만 피해를 봤을 뿐이다. #고려.. 2024. 1. 29. 이전 1 ··· 186 187 188 189 190 191 192 ··· 416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