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역사문화 이모저모2492 초고속 승진 가도 달린 최항, 이삼십대에 이미 지공거 최언위 손자인 최항崔沆이 역사 전면에 등장한 시점은 고려 성종成宗 10년(991)이라, 이해는 윤달이 끼어 그 윤2월에 실시된 과거시험에 그가 급제해 등단한 것이다. 고려사 그의 열전에는 이때 나이 20세로 갑과甲科에 급제했다 했으니, 972년, 광종 23년에 태어났다. 20세 등과는 상당히 빨랐으니, 서희 역시 이 나이인가 더 빨리 등단했으니, 할아버지 아버지 위광이 있었다 해도, 대단한 재능을 발휘한 천재임을 엿본다. 유의할 점은 그는 77세로 장수한 할아버지 최언위 얼굴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앞서 보았듯이 최언위는 이미 944년 사망한 것이다. 이는 마흔두살 다 늙어서 고려로 귀환한 최언위가 귀국 뒤에 새 장가를 갔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어린 놈이 잘나서 이뻤는지 성종은 우습유 지제고右拾遺 .. 2024. 2. 4. 기구한 인생을 산 최언위 네 아들, 국제 이산가족 작금 방영 중인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 고려 조정 신료 중에 최항崔沆(?~1024)이라는 이가 있어 꽤 비중 있는 역할로 나온다. 그가 바로 최언위 손자다. 그의 아버지가 최광원崔光遠인데 최언위 셋째 아들로 그의 아들 중에서는 비교적 순탄한 삶을 살아 생전에 관직이 비서소감秘書少監까지 이르렀다. 맏아들 최광윤崔光胤은 아버지처럼 일찍이 아버지와 비슷한 코스를 걸어 빈공진사賓貢進士로 후진後晉936년~946)에 가서 유학했지만 인생이 꼬이고 말았다. 후진을 침략한 거란에게 사로잡혀 거기서 벼슬살이를 한 것이다. 귀성龜城이란 데로 사신으로 갔다가 거란이 고려를 침략하려는 것을 알고 글을 써서 번인蕃에게 부탁하여 알렸다 했으니 이 일로 고려가 군사 30만을 뽑아 광군光軍을 조직하게 된다. 둘째 최행귀崔行歸는 북쪽.. 2024. 2. 4. "신라를 악의적으로 헐뜯고자 한 위작" 1989년의 화랑세기 가짜론 임창순 "화랑들의 활동이나 화랑도의 성격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신라 왕족과 귀족들의 군음 혼음 관계를 중점적으로 서술한 이 필사본의 내용은 김부식이 삼국사기에 인용한 것과도 크게 다를 뿐더러 사람의 성격 묘사 등이 마치 문학작품에서처럼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점으로 보아 후대의 사람이 신라사회를 헐뜯기 위해 쓴 악의에 찬 위작으로 보인다" "자체와 사용되고 있는 용어를 면밀히 검토해 보면 당시의 것들이라 하기 어려운 부분이 너무 많고 더구나 이것들이 일본의 사료들에 나타나고 있는 특징들과 많이 닮아 있어 위작이라도 우리나라 사람이 행한 것이 아닐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 필사본의 출처가 불명확한 점도 위작일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것" "이 사료가 진품일 경우 신라시대의 역사가 완전.. 2024. 2. 4. 나말여초 문단 거물 최언위와 그의 네 아들(1) 나말여초 문단을 호령한 인물로 최치원崔致遠(857~?), 그리고 견훤을 섬긴 최승우崔承祐(?~?)와 더불어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인물이 같은 경주최씨로 그보다는 열한 살 어린 최언위崔彦撝(868~944)다. 치원과 언위 둘은 당나라 유학파로 그에서 급제한 인생 행로가 아주 비슷한데, 또 세트로 움직이기도 했으니, 다만, 최치원은 나말에 해인사로 은거한 뒤에는 행적이 묘연한 데 견주어, 최언위는 달라서 오래산 까닭도 있지마는 고려가 건국한 다음에는 아예 주거지를 경주에서 개경으로 옮기고, 고려 조정에서 문한을 담당한다. 고려사 열전이 정리한 그의 행적을 보면 초명初名이 신지愼之라 했으니, 이는 삼가고 삼갈지니라 하는 뜻에서 취한 이름이라, 다만 그 바꾼 이름 언위彦撝는 어디에서 유래했는지를 내가 아직 추적하.. 2024. 2. 4. Best of best, 수선전도首善全圖의 수선首善 조선시대 도성都城이라 하면 글자 그대로 성곽으로 두른 도읍을 의미했으니, 구체로는 현재 우리가 한양도성이라 일컫는 나성羅城이 둘러친 공간 구역 안쪽을 말한다. 이곳이 서울이라 지금의 서울 종로구와 중구 일대가 본래는 엄격한 의미의 도성이며, 이곳이 바로 서울이다. 이 도성은 조선 왕조 건국 직후에 이미 둘러치기 시작해 후대에 끊임없는 보수가 있었지만, 그 공간 구역에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시 말해 조선왕조 오백년 내내 저 구역은 그대로였다. 물론 도시 구역이 성밖으로 계속 확장해가기는 했지만, 한양도성은 죽죽 그 자리에 있었다. 따라서 조선시대에 제작한 도성지도란 곧 저 한양도성 안쪽 지도를 말한다. 실제 그런가는 차치하고 생긴 모양은 천상 자궁 딱 그것이다. 조선시대, 특히 그 후기 도성을 .. 2024. 2. 4. 바닥부터 재상으로 수직 상승한 왕자지王字之 이름 듣고는 대뜸 대물열전 등판 인물 아닌가 하겠지만, 또 그 후속타를 기대한 사람들한테는 미안하지만 아니다. 고려 중기 때 인물이다. 그는 이미 궁예 정권 시절 경사經史에 통달했다 해서 출사해 원외랑員外郞을 거쳐 동궁기실東宮記室까지 이르렀지만 궁예가 포악하게 변하자 머리 깎고 중이 되었다가 훗날 세상이 격변하고 왕건이 쿠데타로 고려를 건국하자 다시 나와 국가 기밀을 관장하게 된 박유朴儒라는 사람 현손이다. 박씨 집안 직계 후손임에도 왕씨 성을 쓴 까닭은 이미 저 박유가 하도 고려 왕조가 자리 잡는 데 공이 크다 해서 그 할아버지 박유한테 아예 왕실 성인 왕씨를 하사해 왕유王儒로 창씨개명한 데 따른다. 고려사 왕유 열전에 부기된 왕자지王字之 열전에 의하면 그는 자字가 원장元長이고, 어릴 적 이름은 소중紹.. 2024. 2. 3. 이전 1 ··· 183 184 185 186 187 188 189 ··· 416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