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역사문화 이모저모2492 [화랑세기 트라우마] (1) 용수-용춘의 문제 화랑세기 출현 이후 한국고대사학계, 특히 신라사학계에는 ‘화랑세기 트라우마’에 견줄 수 있는 현상이 있다고 했거니와, 그것을 잘 보여주는 사건 중 하나가 용수龍樹-용춘龍春 문제다. 두 이름은 김춘추 계보를 논하면서 그 아버지로 등장하는 표기로, 화랑세기 출현 이전에는 이 두 표기를 딴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하지만 화랑세기에는 뜻밖에도 이 둘이 다른 사람으로 드러났다. 한데 이에 놀란 사람들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이 두 표기가 등장하는 맥락을 다시 살피니, 정말로 딴 사람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해 이렇게 기록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집필진이 용수-용춘을 딴 사람으로 인식했느냐 하는 논란이 있다. 나는 적어도 삼국사기는 그랬다고 본다. 하지만 집필진이 그렇게 인식했건 아니했건, 이건 중요하지않다... 2023. 12. 19. 말과 소가 세트를 이룬 북위시대 귀인 행차 신동훈 교수 관련 글들, 그리고 그에 대한 바로 앞 코리끼표 명나라 만력제 행차와 연속하는 관점에서 북위시대 귀인 행차를 새삼 소개한다. 북위는 널리 알려졌듯이 북방 선비족이 이룩한 왕조로, 지금의 중국 동북방에서 밀고 내려와 세력을 확장하다 지금의 산서성 북쪽 대동大同에서 통일 왕조를 이룩하고는 이내 우리도 변방에서는 살 수는 없다 해서 낙양으로 천도하고는 중국 북방을 통일한다. 선비족은 본래 유목 부족이다. 그래서 말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런 그들도 느긋한 행차에 쓰는 수레는 소를 썼다. 말은? 전쟁통에는 당연히 전투에 말을 썼다. 이 전쟁통도 우마 쓰임새에서 주목해야 하는 점이 있는데, 군량미나 무거운 무기는 모조리 소가 옮겼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전쟁통에도 말과 소는 언제나 세트로 움직였다... 2023. 12. 19. 소가 끌다 코끼리로 교체된 명나라 황제의 수레 요새 신동훈 교수께서 맹렬히 우리가 흔히 마차馬車로 아는 것이 말이 끄는 마차가 아니라 실은 소가 끄는 우차牛車일 가능성을 지적하는 글을 연속으로 쓰고 계신 바 간단히 그 맥락을 추리자면, 귀인貴人으로 분류할 만한 돈께나 있는 사람들은 나들이에 말을 이용하지 않았고 소를 이용했다는 말이 되겠다. 그렇다고 말을 타지 않았는가 하면, 꼭 그런 것은 아니어서, 군인들은 당연히 말을 탔다. 소 타고 싸울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런 날렵함을 무장해야 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말이 도입되고서는 탔다. 하지만 그런 시급성을 다투지 아니하는 사람들한테, 또 말 타기에는 아무래도 서툴 수밖에 없는 사람들한테 말은 굉장히 위험한 교통수단이었으니, 낙마사고로 죽는 일이 그리 많았으니, 이는 요새 교통사고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2023. 12. 19. [조선 세종시대의 장영실] (3) 걸핏하면 뇌물죄로 걸려든 광물 전문가 3. 광물 전문가 이제 장영실이 어떠한 인물인가를 실록에 드러나는 그의 행적을 통해 정리해 보자.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자료에 의하건대 그가 맨 먼저 등장하는 시점은 세종 7년(1425) 4월 18일이다. 이 날짜 한 기록에 의하면 임금이 지금의 평안도 도지사 정도에 해당하는 평안도감사에게 명을 내리기를 “석등잔 대·중·소 아울러 30개를 이제 가는 사직(司直) 장영실(蔣英實)이 말하는 것을 들어 준비하라” 고 했다는 것이다. 석등잔이란 돌로 만든 등잔을 말한다. 그 사용처가 궁중이었음을 말할 나위가 없다. 당시에는 전기가 있을 리 만무하니 밤에는 촛불을 켜서 밤을 밝혔다. 등잔은 말할 것도 없이 촛불 받침대다. 한데 이에서 말하는 석등잔이 구체적으로 어떤 물건인지는 다른 사례를 검토해 봐야 한다. 그 .. 2023. 12. 18. [조선 세종시대의 장영실] (2) 대통령 전용차 부실 제작 책임을 진 장영실 2. 대통령 전용차 부실 제작 책임을 진 장영실 시험 삼아 이에서 ‘장영실’이라는 키워드를 집어넣어 본다. 우리에게 상식으로 각인한 장영실은 세종시대에 측우기를 비롯한 각종 과학기구를 만든 장인이라 해서 그에서 본뜬 과학정신을 기린다며 만든 과학상 이름도 ‘장영실상’이 있을 정도라 난삽하게 등장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결과는 전연 뜻밖이다. 그 방대한 실록에도 번역본 기준으로 실록에서 걸리는 ‘장영실’은 서른 번밖에 되지 않으며, 더구나 그의 사후에 언급된 이름 빼고 생전에 등장하는 ‘장영실’은 횟수가 14번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 당황스러운 점은 그 14번 중에서도 절반에 육박하는 무려 6건이 뇌물을 받거나 물건을 잘못 만들어 처벌 받은 일에 관한 것이니 도대체 이를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각종.. 2023. 12. 17. [조선 세종시대의 장영실] (1) raw file로 대면하는 조선왕조사 *** 내가 역사전문 언론인으로 직업이 기록된 것으로 보아, 해직 시절(2015~17년)이었을 원고다. 본문이 언급되듯이 선문대 구사회 선생이 마련해준 특강 자리였으니, 그때 강연록 원고다. 물론 이대로 강연하지는 않았다. 마침 근자 강민경 군이 장영실과 관련한 의미 있는 논문을 공간했기에 옛날 묵힌 원고를 새삼 꺼내어 6회분으로 나누어 싣는다. 조선 세종시대의 장영실 김태식 역사전문 언론인 1. raw file로 대면하는 조선왕조사 세종과 장영실에 대한 강의를 한 달 전쯤 나는 이 대학 구사회 교수께 요청받을 때만 해도 적어도 후자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아니, 더욱 정확히는 아는 것이 없었다. 더구나 세종이라고 해도 성군聖君이라는 피상의 인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한 달이.. 2023. 12. 17. 이전 1 ··· 210 211 212 213 214 215 216 ··· 416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