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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2468

마그나 그라이키아Magna Graecia, 식민지로 확장한 그리스 세계 마그나 그라이키아Magna Graecia[마갈레 헬라스Megalē Hellas]는 기원전 8세기부터 5세기까지 여러 고대 그리스 도시 국가가 식민지화한 남부 이탈리아 해안 지역을 말한다. ​ 시칠리아는 그리스 식민지이기도 하지만 보통 이 지역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스트라보Strabo와 같은 후대의 작가들은 시칠리아를 포함하여 이 용어를 그리스 세계 전체를 포함하는 의미로 사용했다. ​원래의 마간 그라이키아 지역은 에비아 식민지 쿠마에Cumae(아마도 기원전 740년에 가장 일찍 설립된 식민지였을 것이다)를 필두로 스파르타 식민지 타렌툼Tarentum(기원전 706년에 설립되었다)까지 확장된다. ​ 그리스 식민지 중 마지막으로 세워진 곳은 기원전 433년 건립된 헤라클레아Heraclea였다.​ 그.. 2024. 9. 25.
여자 장군 부호妇好가 휘두른 개폼 창날 1976년 은상殷商시대 도읍 하남성 안양安阳 소둔촌小屯村 서북쪽 은허殷墟에서 발견된 부호묘妇好墓 출토품 1천928건 문물 중 하나로 옥원동과玉援铜戈라 일컫는 단검이다. 이를 옥원동내과玉援铜内戈라 일컫기도 하는데, 내과內戈라면 外戈를 염두에 둔 표현일 텐데, 혹 저 둘을 세트로 보아 내외로 보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보다시피 자루 쪽은 청동으로 만들되 터키석을 비롯한 준보석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칼 몸통은 옥으로 제작했다. 오른쪽 기준일 듯한데 길이 27.8㎝다. 현재 중국 국가박물관이 소장 전시 중이다. 이를 재료와 그 기능을 결합해서 저쪽에서는 옥과玉戈라 일컫거니와, 옥으로 만든 戈라는 무기 일종이라는 뜻이다. 이는 크게 보다시피 자루와 칼 몸통으로 구성되니, 이 경우 몸통에 해당하는 칼날을 옥원玉援이라.. 2024. 9. 25.
[신라왕 매금寐錦 탐구] (1) 말뚝왕 414년, 고구려 장수왕 즉위 초반에 고구려가 작성한 이른바 광개토왕릉 비문에는 신라 왕을 일컬어 '신라매금新羅寐錦'이라 하며, 비슷한 시기 역시 고구려가 작성했다는 이른바 충주 고구려비에서도 '신라매금新羅寐錦'과 더불어 신라 왕을 일컬어 이칭으로써 '동이매금東夷寐錦'이라 해서 5세기 무렵 고구려가 신라 왕을 지칭해 '매금'이라 일컬었다 보는 견해가 자리를 잡은 형편이었다. 하지만 다른 아닌 신라인 스스로도 그 무렵 자신들의 왕을 일컬어 매금이라 했음은 524년 신라 법흥왕 시절에 작성한 울진 봉평리 신라비에서 당시 법흥왕을 일컬어 '모즉지매금왕牟卽智寐錦王'이라 했으니 이는 신라인 스스로의 신라 왕에 대한 호칭이 매금이었음을 본다. 아울러 시대가 훨씬 떨어져 신라 말 최치원이 작성한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 2024. 9. 25.
100년 전 풍납토성 재림 팡파르를 울린 을축년 대홍수 누누이 강조하지만, 풍납토성을 이 땅에 출현케 한 이는 물난리였다. 1925년, 을축년 7월 한반도를 강타한 네 차례 대홍수는 한반도를 쑥대밭으로 만들었으니 그 쑥대밭에서 화려한 부활을 알린 이가 바로 풍납토성이다. 당시엔 광주 풍납리토성이라 일컬었으니, 이 허허벌판 강변 황무지가 한강물에 잠기고, 토사가 쌓이기도 했지만, 토사를 밀어내기도 했으니 그 물난리가 지난 자리에 청동초두 2점이 화려한 팡파르를 울리면서 천오백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으니 무슨 사연인지 모르나 큰 항아리 안에 보관되어 땅 속에 묻혔다가 이때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으니 깨진 그 항아리 사이로 문제의 청동초두가 화려한 부활을 알린 것이다. 2025년은 풍납리토성이 이 땅에 재림한지 꼭 100주년이 되는 해다. 그 상류 지점 암사동 선사유.. 2024. 9. 24.
퀀quern은 갈돌에 갈아야 제맛 뭐 볼짝없다. 갈판에다 갈돌로 곡물을 갈고 있는 장면이다. 브리티시뮤지엄 소장품 중 하나라, 이 석회암 조각상을 보면 하인이 퀀quern으로 보이는 곳에 곡물을 갈아주는 모습을 묘사하거니와 저 퀀이라는 것이 갈판이다. 저런 조각은 이미 고대 이집트 제1왕조(기원전 3100~2890년) 시기에 무덤에 배치되기 시작했다 하니, 죽어서도 잘먹고 잘살라는 뜻으로 넣어주었을 것이다. 한 번 노예는 계속 노예, 한 번 주인은 죽어서도 계속 주인이니 있는 놈은 참 편안안 세상되겠다. 하인들은 대체로 베이커리, 양조장, 도살과 같은 일상에 종사했으니 저런 조각이 무덤마다 1~100개씩 다양하게 안치된다. 저 유물은 제6왕조, 기원전 2345~2181년에 속한다. 2024. 9. 24.
폭발하는 미라 수요, 공급을 따라 잡을 수가 없었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정복은 유럽인들에게 이집트 문의 역사를 열었다. 당시 미라는 마땅히 받아야 할 존중을 받지 못했고, 실제로 사교 모임 주요 행사로 사용하기 위해 사진에서 보듯이 노점상에서 미라를 구입할 수도 있었다. 당시 엘리트들은 종종 "미라 포장 풀기 파티Mummy Unwrapping Parties"를 열었는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시끄러운 청중 앞에서 미라 포장을 풀며 환호와 박수를 보내는 것을 주요 주제로 삼았다. 잘 보존된 고대 이집트인 유해는 일상적으로 가루로 갈아 약용으로 소비되었다. 실제로 분쇄 미라는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위조 거래를 유도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산업 혁명이 진행됨에 따라 이집트 미라는 더 많은 공리주의적 목적으로 악용되었다. 갈색 안료를 만드는 데 사용되거나 포장.. 2024.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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