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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2297

2000년전, White Tiger Hall에서 세미나가 열렸다 2005.05.11 14:36:58-1신정근 교수, 반고 편집 백호통의(白虎通義) 완역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왕망(王莽)에게 탈취된 정권을 도로 빼앗은 유씨(劉氏) 왕조를 흔히 후한(後漢) 왕조라고 하고, 동한(東漢)이라고도 한다. 한 황실 복위를 이룩한 그 초대 황제는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 재위 서기 25-57년). 한 왕조 개창주인 전한(前漢) 고조(高祖) 유방(劉邦)의 9세손이라고 하지만, 한 왕실 적통이라고는 할 수 없는 방계 중의 방계였던 그는 용케도 시운(時運)에 편승해 권력을 쥐고 32년이나 그것을 농단해 신왕조의 기반을 다졌다. 그리하여 재위는 명제(明帝, 재위 58-75년)를 거쳐 3대 장제(章帝, 재위 76-88)에 이르렀다. 경학(經學)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장제의 .. 2020. 3. 16.
동중서董仲舒와 《춘추번로春秋繁露》가 꿈꾼 중화주의 *** 2005.03.08 10:29:10 글이다. 05-20040402-004-00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공자가어孔子家語》에 있는 말이다. 자공이 묻기를 "사람은 죽은 뒤에도 감각이 있을까요?"라고 하니, 공자 왈 "음...죽어보면 안다"고 했다. 공자는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말하지 않는다고 했고, 이 세상 삶도 잘 모르는데 저쪽(죽음 뒤의 세계)을 어찌 알겠느냐고 제자들을 질타했다. 맹자 또한 천天·지地·인人 중에서도 人을 가장 앞세우고 天을 꼴찌로 돌렸다. 순자는 아예 天과 저승 세계에 대한 죽음을 선언한다. "기우제를 지내서 비가 오는 것은 기우제를 지내지 않아도 비가 오는 것이랑 마찬가지다"고 갈파한다. 한데 이들 선배를 우습게 만드는 '반역자'가 출현하니 한漢 건국 직후 어느 무렵에.. 2020. 3. 15.
[순간포착] 두 개의 탄핵, 운명을 가른 두 개의 결정 [순간포착] 비슷하면서도 달랐던 두 번의 탄핵송고시간 2020-03-14 06:00노무현·박근혜 탄핵심판…기각과 파면으로 운명 엇갈려 접때도 얘기했듯이, 사진이 포착한 한국현대사 명장면을 표방하는 순간포착이 주제로 고르는 준거라면 첫째는 시사성, 둘째는 캘린더 이 정도다. 아무래도 지금 대한민국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 사태 복판에 위치하기는 하지만 곧 4.15 총선을 앞둔 정치의 계절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 무렵에 일어난 일로 저 두 탄핵과 관련한 묵직한 순간이 있다. 독자에 따라서는 이미 저 두 탄핵 중 하나는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만큼이나 현실성 부족한 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노무현 탄핵소추안 국회 가결이 2004년 3월 12일이니, 벌써 16년 전 아닌가? 이 글을 접하는 독자 중에서는 노무현이 .. 2020. 3. 14.
절대 법치와 절대 부국강병 외친 《상군서商君書》 *** 까마득한 2005.03.08 09:33:03 글이다. 지금은 사라진 내 옛 블로그 글이다. 《상군서》가 어떤 책이며, 어떤 역본이 있는지를 소개한 정도지만, 읽어보니 지금도 그런 대로 소용할 바는 없지는 아니해 전재한다. 법가철학 전공 장형근 교수 ‘상군서’ 내 2005-02-23 10:33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적어도 공자 이후 중국이 주축을 이룬 동아시아 사상사 2천500년, 특히 제왕학은 이렇게 정리될 수 있다. 외유내법外儒內法. 겉으로는 공자를 들먹이며 인의仁義를 부르짖었으나, 그들이 실제로 추구한 것은 부국강병의 법가法家였다. 공자가 몰沒한 지 약 1세기 뒤에 태어난 맹자. 한 수 배우고 싶다 해서 불원이천리不遠而千里해서 달려가 만난 양梁 혜왕惠王이 “노인께서는 어떻게 우리나.. 2020. 3. 14.
최송설당, 몰적 89년만에 집안을 복권한 철의 여인 2004. 06.17 07:06:09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그때 나는 바람 타고 씨가 날아와 생겨난 소나무였다. 그때 나는 암벽에 뿌리박은 소나무였다. 혼자 떠돌아다니며 한양에 살 때는 겨울철 고개 위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소나무였다. 시원스레 선조님들 한을 풀고 따뜻한 봄날을 되찾으니, 그때 나는 임금님 은혜를 입은 늙은 소나무였다" 그러면서 이 여인은 그의 일생을 눈(雪)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말년에 전재산을 쾌척해 1931년 김천고등보통학교(현 김천중고교)를 설립하게 되는 이 여인은 58세 때인 1912년 8월 경성 무교동(현재의 코오롱빌딩 자리)에 저택을 설립하고는 당호(堂號)를 송설당(松雪堂)이라 했다. 1855년(철종 6년) 금산군(金山郡.경북 김천)에서 홍경래의 난에 .. 2020. 3. 10.
남의 비문에다 자기 울분을 토로한 최치원 "을사년(신라 헌강왕 11, 885)에 이르러, 나라 백성 중에 유도儒道를 중매쟁이로 삼아 황제 나라로 시집가 이름을 계륜桂輪에 높이 걸고 관직이 주하사柱下史에 오른 이가 있어 이름을 최치원崔致遠이라 하니, 唐 황제(희종·僖宗-인용자)의 조서詔書를 두 손에 받들었는가 하면, 회왕淮王(고변·高騈-인용자)이 준 의단衣段을 함께 가져 오니, 비록 이 영광 봉황이 날아다닌 일엔 부끄러우나, 학이 돌아온 일엔 자못 비길 만 하리라." 최치원은 지금의 경북 문경 봉암사에 남은 대당 신라 고 봉암산사교휘 지증대사 적조지탑 비명 병서 大唐新羅國故鳳巖山寺敎諡智證大幷序 에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한마디로 나는 당나라 대국에서 가서 출세했다 이거다. 이런 그의 신라 귀환을 그 자신은 금의환향으로 보았다. 비록 그의 귀국.. 2020.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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