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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2295

아버지는 포로수용소 관리, 아들은 인민군 포로 이 생활 좀 하다 보면, 이른바 기구崎嶇한 사연이라는 인연을 조금 만나게 되는데, 그런 기구崎嶇 중에 2013년 다음 기사가 떠오른다. 아버지는 포로수용소 관리, 아들은 인민군 포로기사입력 2013.05.31. 오전 11:21 국립민속박물관·해금강테마박물관 '흥남에서 거제까지' 특별전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한국전쟁 와중에 헤어진 아버지와 아들이 만났다. 재회한 곳은 거제도 포로수용소. 이때 아버지는 포로수용소 문관이었고, 아들은 북한 인민군 포로였다. 기구하기 짝이 없는 이 만남. 1951년 4월17일 아버지 최중훈 씨는 당시 열여덟살로 포로 신세인 아들 영철 씨를 찾아간다. 달걀과 돼지고기를 들고서 아들을 눈물로 면회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아버지가 남긴 피난일기를 보면.. 2019. 5. 31.
김유신, 태대각간에서 흥무대왕으로 이 무덤이 김유신묘인가 아닌가는 논란이 적지 않다. 그것은 차치하고 내가 주목하는 대목은 조선후기, 아마도 영조연간이던가? 그때 세운 묘표墓表에 이 무덤을 일러 '新羅太大角干金庾信墓(신라 태대각간 김유신묘)'라고 했다는 점이다. 왜 흥무대왕릉興武大王陵이라 하지 않았을까? 이미 김유신은 그 시기를 확정하긴 곤란하나, 신라말기에 흥무대왕에 추봉된 이래 줄곧 흥무대왕이었으며, 특히 김해김씨 종문宗門에서는 더 그랬다. 그럼에도 대각간 김유신묘라고 한다. 이 점이 수상쩍기만 하다. 김유신이 흥무대왕興武大王으로 추봉된 시기는 언제인가? 내가 일전에 이를 정리한 적이 있으니 다음과 같다. 삼국사기 : 흥덕왕代(826~836)삼국유사 : 경명왕代(917~924)삼국사절요 : 경명왕 7년(923)동국통감 : 흥덕왕 10.. 2019. 5. 30.
매형공주妹兄公主와 백제 창왕 부여 능산리 사지陵山里寺址 목탑지 출토 이 석조사리감石造舍利龕 전면에는 양쪽 줄에 걸쳐 百濟昌王十三年季太歲在 / 丁亥妹兄公主供養舍利 ( / 는 줄 바뀜을 의미) 라는 문구가 확인되거니와, 이는 지금은 이름을 알 수 없는 능산리 백제시대 절이 언제 창건되었는지를 알려주는 결정적인 근거가 된다. 저 문장은 백제 창왕 13년, 간지로는 정해년에 매형공주가 사리를 공양했다 는 뜻이거니와, 이를 통해 이 절을 창건한 대단월이 매형공주임을 안다. 이 절을 창왕이 직접 창건한 것으로 간주하는 글이 많고, 그에 따라 이를 근거로 하는 논설이 부지기에 이르는데 개소리다. 이 절을 창건한 주체는 분명히 '妹兄公主'다. 이 절을 창건한 백제 창왕 13년, 간지로는 정해년은 567년. 다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연표를.. 2019. 5. 29.
죽을 때까지 한국어판은 안내고 냉큼 일본어판 《무령왕릉》을 낸 한국고고학도 한국 고고학자가 자신이 관여한 한국 고고학 발굴성과를 일본어판으로 냈다 해서 그걸로 그가 비난받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발굴책임자로써, 더구나 그 보고서 집필을 총괄한 자로써, 한국어판은 죽을 때까지 내지도 않으면서, 냉큼 일본어판 단행본을 발간한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이 책 발간은 소화 54년은 1979년이다. 출판사는 근등출판사近藤出版社다. 더구나 이 사람은 《조선고적도보》 증보판도 집필했다. 《조선고적도보》 가 뭔가? 조선총독부가 기획하고 결과한 사업이다. 제국주의 일본이 망하고서 한참이나 지난 시기에, 그 증보판을 더구나 한국 고고학도가 집필했다는 것이 어디 제정신인가? 그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 대일본제국 신민이었다. 누구인가? 삼불三佛이라는 호를 쓴 김원룡金元龍이란 사람이다. 자신은 .. 2019. 5. 21.
문고리에서 돌쩌귀로 운현궁 이로당二老堂 대문大門 문고리다. 한때 문고리라는 말이 대유행한 적이 있다. 저 문고리. 겨울철이면 손가락이 쩍쩍 들어붙었다. 문고리보단 돌쩌귀 같은 사람이어야지 않겠는가? 돌쩌귀는 언제나 자신을 내세우는 법이 없다. 묵묵할 뿐이다. 문고리가 없으면 밀어 열면 되지만 돌쩌귀가 없으면 문이 존재할 수가 없다. 2019. 5. 20.
귀수龜首와 귀두龜頭, 그 sexual connotation 무엇을 닮았는가? 귀두龜頭다. 남자의 음경陰莖이다. 이 귀두를 금관가야 시조 김수로가 하늘에서 지상으로 강림할 적에 불렀다는 노래 구지가龜旨歌에서는 일러 귀수龜首라 했거니와 "首, 頭也" "頭, 首也"라 《설문說文》에서 일렀다. 이런 귀두를 볼 적에 키 포인트는 목주름이다. 하긴 이 목주름을 요새는 포경수술이라는 이름으로 말살하는 일이 종종 있다. 거북, 특히 그 대가리는 짙은 섹슈얼 코너테이션이 있음을 하시何時도 잊어서는 안 된다. 나는 언제나 성姓 담론을 수면 위로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 일환으로 거북 대가리 귀두龜頭가 실은 남자의 음경 그 귀두龜頭임을 언제나 힘주어 강조했다. 두 단어가 한자가 같은 까닭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지칭하는 대상이 같기 때문이다. 일전에 나는 어떤 글(아래 참조).. 2019.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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