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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당탕 서현이의 문화유산 답사기226

두드리면 열린다는 말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라는 말이 있다. 간절한 마음만큼 끊임없이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이루고자 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다는 의미인데, 넘어서야 하는 한계를 “문”에 비유하고 있다. 이 말은 한편으로 노력해도 문이 열리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노력이 부족했거나, 덜 간절했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결국은 문을 열지 못한 당신의 노력이 부족했던 거라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도 더 많이, 더 열심히 해야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동안 나는 덜 간절했다는 말인가? 아니면, 나의 노력이 부족했다는 말인가? 요즘, 약간의 번아웃이 오면서 드는 생각, “그동안 나는 열리지 않는 문을 두드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2024. 1. 6.
폭설이 선사한 정릉 원찰 흥천사의 절경 어렸을 적에 정릉동에 살았다지만, 4-5살 정도로 어린 나이였기에 당시의 기억은 거의 나지 않는다. 정릉동에서 꽃병공장을 했던 우리집은 함께 일하는 삼촌들이 많았다. 엄마는 당시 매일 공장 식구들 삼시세끼 밥해먹이느라 고생했다고 그때 얘기를 할 때마다, 아리랑시장을 걸어서 장을 보러 다녔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 아마도 우리집은 아리랑고개 언덕 어디쯤에 있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정릉동에서 삼양동으로 이사온 이후, 그리고 용인으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쭉 삼양동에 살았는데, 삼양동과 정릉동은 비교적 가까워서 마음으로는 한동네라고 생각하지만, 생활반경이 달라 자세히 돌아본 적이 없다. 물론 '정릉'이 있고, 그 원찰인 '흥천사'가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가까운 곳은 발길이 잘 .. 2024. 1. 3.
전국학예연구회 2023년의 마지막 일정 오늘 2023년 전국학예연구회의 공식적인 마지막 일정으로, 김예지 국회의원님을 뵙고, 문화재보호법 개정을 위해 애써주신 것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전달하고 왔습니다. * 감사패와 함께 김예지 의원님을 위해 점자로 상장을 제작하여 전달드렸습니다. 올해 10월 문화재보호법 개정안이 공포되어, 처음으로 문화재보호법에 문화유산 전문인력 배치에 대한 조항이 신설되었습니다. 우리의 노력에 응답해주신 의원님의 진심에 깊이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힘닿는 데까지 도와주신다는 말씀에 다시 한 번 감사말씀 드립니다. 그동안 함께 해주신 전국학예연구회 엄원식 회장님, 홍원의 부회장님, 김대종 부회장님, 김은정 감사님 모두 감사드립니다. 2024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3. 12. 29.
내가 생각하는 학예연구사 포지션2[(촉석봉정(矗石逢釘)vs 낭중지추(囊中之錐)] 공무원 신분의 학예연구사가 연구자를 지향하는 중간 지점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공유하면서, 내가 생각하는 학예연구사 포지션(Position)포지션(Position) : 위치, 자리, 처지, 입장 등등의 뜻이 나온다. 오늘 전문직으로서 학예연구직에 대한 글들을 보면서, 학예연구사(학예연구직 공무원 한정)의 포지션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신분historylibrary.net 한편으로, 지자체 학예연구직의 포지션에 대한 또 다른 포지션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이 부분은 연구자의 역할에 어느 만큼 비중을 두느냐에 중점을 뒀을 때 주위의 평판과 관련이 있는데, “모난 돌이 정 맞는다[촉석봉정(矗石逢釘)]“와 주머니 속의 송곳[낭중지추(囊中之錐)]“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최근 나에 대한 평판 중의 하나로 .. 2023. 12. 25.
내가 생각하는 학예연구사 포지션(Position) 포지션(Position) : 위치, 자리, 처지, 입장 등등의 뜻이 나온다. 오늘 전문직으로서 학예연구직에 대한 글들을 보면서, 학예연구사(학예연구직 공무원 한정)의 포지션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신분은 공무원이면서, '연구직'이라는 직렬 속에서 연구자(교수로 대표되는)를 지향하는 그 중간 어디쯤 속해 있는 것은 아닐까. 공부가 하고 싶으면 연구자의 길을 선택해야 하고, 공무원으로서 관련 직렬의 행정 일을 하고 싶으면 공무원으로서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이제 많은 사람이 공무원 학예연구직이 '연구'를 하는 자리라고 알고 오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막상 와 보면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다르다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그치만 학예연구직이란 자리가 완전 공무원이면서, 채용할 때 석사학위 이상 학력을 보는 까닭에 .. 2023. 12. 19.
1232년 12월 16일, 처인성 전투는 겨울이었다. 크게 6차례에 걸쳐 전개된 고려・몽골 전쟁은 고려가 겪었던 직접적인 전쟁 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였다. 40여 년에 이르는 긴 기간 동안 고려 전 국토가 전장으로 이용되었고, 이와 함께 수 많은 피해가 발생하였다. “이 해에 몽골의 군사에게 사로잡힌 남자와 여자는 무려 20만 6800여명이다. 살육된 사람의 숫자는 헤아릴 수 없다. 몽골군이 지나간 마을은 모두 잿더미가 되었다.” 『고려사』 권24 고종 41년 이 전쟁 기간 동안 가장 극적인 장면을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코 처인성 전투가 제일 먼저 떠오를 것이다. 일반 군현에 비해 상대적으로 차별받던 처인부곡에서 치러진 이 전투는 관군의 도움없이 순수하게 지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졌으며, 결국 몽골군의 원수 살리타이(살례탑, 살리타)가 사살되었다. 이.. 2023.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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