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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농경과 식생활의 역사212

보리에 현미, 그리고 일즙삼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지독한 구두쇠였다고 한다. 천하를 잡은 후에도 그가 먹은 밥은 보리에 현미를 섞어서 짓고, 반찬으로는 일즙삼채였다고 한다. 여기서 일즙이라고 하면, 국이 한 종류, 삼채라고 하면 나물이 세 종류라는 뜻이 아니라 여기서는 반찬을 통틀어 말한다. 따라서 보리에 현미를 섞어 지은 밥에 국 하나, 반찬 세 가지를 먹었다는 뜻이겠다. 당시 모든 전국시대 영주가 이런 밥을 먹었던 것은 아니고 화려한 식사를 즐긴 이도 많았는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이런 검소한 식사는 꽤 유명했던 모양으로 요즘도 일즙삼채하면 심플한 정식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대개 조식을 주는 비즈니스 호텔에 묵으면 나오는 아침밥이 바로 일즙삼채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여기서 밥을 백반이 아니라 보리밥+현미였다는 점만 다르겠다. 가끔.. 2024. 1. 17.
쌀과 잡곡이 별 차이 없는 찐밥 쌀과 잡곡을 찐밥으로 해 먹으면 별 차이가 없다. 둘다 맛이 없기 때문에. 밥을 솥에 넣고 끓여 마지막에 뜸을 들여 만들어 내야 비로소 쌀이 자신이 가진 포텐셜을 백프로 발휘하여 다른 곡식이 도저히 따라 올 수 없는 맛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곡식으로서 쌀이 높은 평가를 받게 된 것은 결국 조리기구가 더 중요한 역할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한번만 쌀과 잡곡을 쪄 먹어 보면 아는데, 정말 둘다 맛이 없다. 아마 솥에 밥을 뜸들여 만들어 처음 먹어 본 사람은 그 쌀밥 맛에 기절할 정도로 놀랐을 것이다. 2024. 1. 15.
치아 마모도는 곡물 도정과 관련이 있을 것 사람의 치아는 계속 닳는다. 요즘은 그 정도로 닳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고인골의 치아를 보면 치아의 수질 부분까지 다 노출되도록 닳은 경우가 많다. 이렇게 닳은 모양을 보고 거친 음식 때문이라고 대개 추정을 하거나 아니면 밀과 같이 가루를 만들어 빵을 굽는 경우에는 가루를 만들때 미세한 돌가루가 섞여 들어갔을 것이라 보기도 한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엔 거친 음식이라 하면 역시 애매하다. 거친 음식으로 예를 들어 식물성 섬유를 과거에 요즘보다 많이 섭취한 것을 들기도 하는데 식물성 섬유 때문일까? 필자가 보기엔 이빨을 가장 빨리 닳게 만드는 건 식물성 검유나 미세한 돌가루가 아니라 곡물의 도정 정도다. 정말 잡곡과 도정이 덜된 쌀로 밥을 지어 먹으면 거친 밥이라는 게 뭔가를 실감하게 되는데 특히 이걸 .. 2024. 1. 6.
건강과 음식은 관련이 있다 필자가 요즘 음식에 매달리는 것은 그냥 재미로 하는 것은 아니고, 이유가 있어서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인간의 건강은 음식과는 떼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보면 고인골의 치아 마모도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같은 나이인데도 치아 마모도가 다르다. 이런 건 결국 먹는 음식의 성격 때문이다.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는 반드시 알아야 풀리는 부분이 많다. 아마도 먹는 음식의 종류나 쌀이 도정 정도가 치아 마모도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걸 과연 낱낱이 밝힐 수 있을것인가 하는 의문은 필자에게도 있지만, 어쨌건 한국에 대해서도 이런 작업은 있어야 하고 또 이걸 전 세계적으로 본다면 관련 자료의 축적량이 만만치 않다. 필자의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단지 몇 번에 그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며 앞으로 이 블.. 2024. 1. 6.
밥짓는데 쓴 토기는 "와분" 삼국유사를 보면, 진정법사가 딱 하나 있던 쇠솥을 시주하고 토기로 밥을 지었다 하는 구절에서, "와분"이라 하였으니 乃以瓦盆爲釡, 熟食而飬之 아래 밥 짓는데 쓴 것 같은 시루 토기는 최소한 고려시대까지는 와분이라 불렀던 모양이라, 와분이라면 그 당시에 이미 저건 그릇도 아니라는 의미도 있는 듯. 밥 짓는데 썼을 토기. 삼국유사에는 "와분"으로 나온다. 뭐 당시의 고유명사였는지는 모르겟지만, 철솥이 나온 후의 토기의 운명을 짐작하게 하는 이름이다. *** 盆 《禮記‧禮器》: “夫奧者, 老婦之祭也, 盛於盆, 尊於瓶。” 鄭玄 注: “盆、瓶, 炊器也。” 2024. 1. 6.
7세기 신라의 밥솥 상황 삼국유사 권 5의, 真定師孝善雙羙을 보면 7세기 신라의 밥솥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法師真定羅人也. 白衣時隷名卒伍, 而家貧不娶. 部役之餘傭作受粟以飬孀母. 家中計産唯折脚一鐺而已 一日有僧到門求化營寺䥫物, 母以鐺施之. 旣而定従外敀. 母告之故且虞子意何如厼. 定喜現於色曰, “施於佛事何幸如之. 雖無鐺又何患.” 乃以瓦盆爲釡, 熟食而飬之. 진정법사라는 이는 의상의 제자라니 아마 통일기의 승려인 듯하고, 그의 출가 이전 상황을 보면 집이 가난해서 재산이라고는 다리 부러진 鐺하나였다는데, 鐺이 뭔지 모르겠지만, 일본쪽 설명을 보면 다리 셋 달린 솥이라 하니 그렇다면 정과 비슷하지만 다른 쇠솥이었나보다. 재미잇는 건 이 다리 부러진 쇠솥도 절에 시주해버리고 나니 집에서는 밥짓는데 瓦盆을 솥으로써서 밥을 지어 어머니를 부양.. 2024.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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