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616 묵재일기...논을 사고 지급한 물품들 묵재일기에 보면 논을 사러 보내는 장면이 있다. 이때 논을 산 대가로 뭘 지불하는가 하면, 목면 1동호피 큰 것과 작은 것 2장, 백지 (권수 누락)상지 10권빗 140개향합과 사향로 각 1개벼루갑 1개 등을 들려 보냈다. 요즘으로 치면 허접한 물건이라 할 진대, 이것을 주고 논을 사온 것이다. 논의 매매도 물물교환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여기 나오는 물품은 모두 소위 말하는 선물로 사족들끼리 주고 받는 물품들이다. 사족들이 주고받는 선물이란 그냥 성의의 표현이 아니라 주고 받는 사람들끼리는 명확히 이게 얼마짜리다, 라는 공감대가 형성이 되어 있었음을 뜻한다. 그러니 위 물건들로도 논을 구매할 수 있었던 것이다. 흔히 조선시대는 상품화폐로 옷감과 쌀로만 거래한 것으로 아는데.. 2026. 9. 26. 불교에 대한 의문, 집안마다 따로 있는 사찰 뭐 불교에 대한 필자의 인식은 높지 않으니 그걸 감안하고 봐주기 바란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일기를 보면, 이런 장면이 많이 나온다. 어느 집안 영당을 한 절에 위탁하였는데, 이 절은 이 집안 조상들 영당을 차려 놓고 명복을 빌어주는 대신에, 여러 가지 잔 심부름도 하고, 양반은 그 절과 사실상 경제공동체와 같은 모습을 보인단 말이다. 이 시점은 16세기 이미 척불론은 물론이고, 주자가례에 대한 인식이 깊어지던 시점이었는데도 이렇다. 그리고 절에서 이것저것 그 양반들한테 바치러 내려 오면보답 삼아 양반은 스님들한테 밥도 먹이고 술 한 상 대접해서 돌려보내는 것이다. 이런 모습의 절이 과연, 조선시대 들어와서 척불론 때문에 불교가 타락하여 벌어진 현상이었을까, 그게 아니라 고려시대, 신라시대까지도 올라가면 .. 2026. 9. 16. 북방 지역의 노비, 평민, 양반 필자는 우리나라 삼남지역은 양반과 평민, 노비의 비율이 거의 비슷했을 것이라 본다. 그 이유를 든다면 이렇다. 우선 일기에서 나오는 상황이 거의 비슷해 보이고, 우리나라의 평민, 노비, 특히 노비의 비율이 조선시대 내내 증가하는 것은지역적 특성이 아니라 이전에도 말한 것 같이 산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회의 시스템이 그리 되어 있으니 노비는 안 늘어나고 배길 수가 없다는 점. 이들 지역의 노비 해방과 급감은 18세기 후반이나 되어서야 비로소 급물살을 탔으리라 본다. 그런데-. 북방지역은 어떨까. 사실 북방사민이라 하면 우리는 함경도 지역만 생각하지만평안도 지역도 역시 조선시대 사민이 이루어지던 지역이라, 이들 지역에는 부족한 사람수를 메우기 위해 끊임없이 계속 옮겨갈 사람들이 뽑혔고, 그렇게 그 사람들.. 2026. 9. 14. 단촐한 일본인의 족보 일본은 우리처럼 부계 대동보가 거의 없다. 예를 들어 일본인들이 우리와 같은 부계 대동보를 만들고자 했으면, 예를 들어 세이와 겐지라고 하면, 우리나라 통일신라 시대 정도에 천황에서 갈려나온 성이므로, 세이와 겐지에서 또 갈려나간 수 많은 씨족이 다 모여서 세이와겐지 대동보를 만들었을 것이고,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강릉김씨나 광산김씨 같이 신라 김씨에서 갈려 나갔다는 부계 씨족 족보가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우리와는 달리 부계 대동보가 출현하는 경험을 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통일신라 시대 즈음 갈려 나온 시조에서 계속 분기한 수많은 씨족이 각각의 성씨를 칭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일본인들의 상당수는 자신들의 조상을 많이 거슬러 올라가지 못한다. 그래도 사무라이 집안 정도 되면, .. 2026. 9. 10. 조선시대 승병의 미스터리 뭐 그게 왜 궁금하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필자는 임진왜란 이야기를 볼 때마다, 승병이라는 존재가 정말 아리송한 존재였다. 절에서 도 닦던 사람들이 왜 임란 때 들고 일어난 것이며, 그것도 대접이나 받던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양반들 뒤치닥거리나 하고 불교는 옆집 강아지 취급 받던 시절에도대체 왜 왜병이 침투함에 승병들이 궐기하였을까?아니, 도대체 의병의 정체는 무엇이고 승병의 정체는 무엇일까?이 의병과 승병은 정말 드라마에 나오듯이분기탱천한 의사 한 분이 손을 불끈 쥐고"왜적을 타도 합시다" 하니 너도 나도 "옳소" 하고 집에 들어가 쇠스랑 곡괭이 들고 나와 전쟁터로 몰려간 그런 사람들이 의병이고, 승병이었으까?의병이 뭐가 궁금하냐 하면 할 말도 없다만, 문제는 우리나라 조선시대 호적을 보면의병들이 도대.. 2026. 9. 7. 조선은 노예 사회, 신발로 노비 뺨을 수십 차례 때리는 양반들 요즘 우리는 세월이 하도 좋은 때 살고 있어 그런지조선시대 사람들 삶도 우리 식으로 재단해서 생각한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나라 조선시대 인구 절대다수를 차지한 노비를 그것이 이름이 노비일 뿐 사실은 노예와는 다른 사람들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천만의 말씀. 조선시대 일기가 증언하는 노비의 삶은 더도덜도 말고 딱 남북전쟁 이전 흑인노예의 삶과 방불하다. 각종 노동 사역에 종사하는 노비가 게으르다? 그때부터 몽둥이 찜질이 이어지는 기록이 많이 나온다. 일을 하다 그릇을 깨먹었다?바로 신발을 벗어 뺨을 때린다. 그것도 그냥 한 대 때리고 마는 것이 아니고 체벌이기 때문에뺨을 수십 차례 때리는 것이 나온다. 그러니 도망가는 것이다. 앞으로도 이 블로그에 필자는 조선시대 일기에 나오는 노비들 삶을 더도덜도 말고.. 2026. 8. 25. 이전 1 2 3 4 5 6 7 ··· 103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