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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587

화폐가 왜 안돌았는지를 묻지 말고 조선시대를 포함한 우리 역사에서는, 화폐가 왜 안 돌았는지를 묻지 말고화폐가 18세기부터 왜 갑자기 돌기 시작했는지를 물어야 한다. 근대 이전 우리나라는 화폐가 제대로 돈 적이 없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지만, 화폐가 유통되며 떠들썩하게 경제적 호황을 누린 적이 없다는 말이다. 조선시대 18세기까지도 사실상 화폐의 역할을 대신했던 쌀, 면포 등 현물화폐는그 이전시기도 계속 비슷한 모습으로 그렇게 유지되었다. 고려시대? 비슷하다. 고려도경을 보면 이 시대도 여전히 현물화폐가 주로 쓰였고, 나라에서는 화폐를 유통시키기 위해 꽤 노력했지만 여전히 제대로 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소위 실학자라는 이익처럼 화폐를 전부 폐지해야 한다는 정신 나간 소리를 한 영감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시대, 정부는 항상 화폐를 유.. 2026. 6. 25.
군역자를 만들어내야 하는 호적 우리나라 호적은 결국 군역 때문에 유지된 것이다. 물론 그 외 다양한 용도가 있었겠지만, 결국 호적에 표시된 신분의 상당 부분이 군역과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요즘 주민등록에서 병역 여부를 기록하는 것은, 따지고 보면 조선시대 호적의 전통과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 호적이라는 것을 보면 조선시대 국가의 존속을 위협하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었는가 하는 점을 여실히 볼 수 있으니, 군역을 담당할 계층이 뒤로 갈수록 노비로 빠져 나가버린다는데 심각성이 있었다 하겠다. 따라서 평민층이 줄고 노비층이 늘어가니 군역을 담당할 이들은 점점 줄어들고, 율곡이 지적한 바 "경장을 해야 할 병폐"는 틀림없이 이를 가리킨 것이니, 양반들은 조선시대 내내 군역을 담당할 사람이 줄어드는 이유로 서얼.. 2026. 6. 23.
자기 아버지도 모른다는 19세기 한량閑良 언젠가 한 번 써 본 거 같지만19세기 우리나라 호적이 얼마나 재미있는가 하면, 한 집 건너 한 집이 유학幼學인 것도 모잘라, 18세기만 해도 무과 예비군으로 이것도 아무나 하는 것도 아니었던 직역-. 한량閑良을 직역으로 적은 사람이, 할아버지 할머니는 고사하고 아버지 어머니 이름도 몰라서, 조상 이름을 적는 곳에 부, 조부, 증조부, 외조부 이름 모름이라고 적고, 처가쪽도 부, 조부, 증조부, 외조부 이름 모름이라고, 버젓이 적어 놓은 이가 있으니, 이 사람들은 평민도 아니고 노비였던 이가 속량된 후 아예 하층 양반 직역인 한량까지 직역이 올라간 사람으로19세기 중반 호적을 보면 이런 사람들이 한 동네에 한둘은 보인다. 19세기 중반이라고 해서 노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는데, 식년 호적에서 올해.. 2026. 6. 23.
으레 그럴 것이라는 믿음 몇 가지 한국사에 대한 선입견이 있다. 써 보면-. 호적은 으레 엉망진창일 것이라는 선입견. 맞긴 맞다. 그런데 그 엉망진창의 원인이 무관심과 방기가 아니라 치열한 머리 싸움의 결과라는 것이 다를 뿐. 조선시대 호적은 삼정의 문란이라 하면 아무도 신경 안 쓰는 엉터리 장부라는 느낌을 주지만, 사실은 모든 사람이 신경을 쓰는 잔머리가 난무하던 종합격투기장이었다는 표현이 더 맞다. 이건 족보도 마찬가지다. 족보에 엉터리가 많다고 하니 부실 족보를 연상하지만족보 역시 수백 년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그 역시 치열한 잔머리와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 난무하던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다음으로 조선시대 공부에 대한 관심은 사족층이나 그랬을 거라는 생각. 맞긴 맞다. 책 구경이라도 제대로 한 건 당연히 사족층.전 인민 다수를.. 2026. 6. 23.
노비인 자기 딸을 사온 미암 미암일기에 보면 흥미로운 이야기가 하나 나오는 바, 미암 유희춘의 서녀에 관한 이야기다. 일기에 의하면 미암 유희춘은 해성이라 부르는 서녀가 하나 있었던 모양인데, 이 서녀는 어머니가 홍반洪磻의 비婢, 곧 여종이었다. 무슨 말인가 하니, 유희춘과 남의 집 婢 사이에 난 딸이었다는 말이다. 사실 이런 경우는 조선시대에 생각보다 흔했을 가능성이 많아서, 부북일기에도 보면 주인공이 북방에 부방하러 가는 여행길 와중에 묵는 사족 집에서 그 집 주인 양해 하에 婢와 동침하는 경우가 상당히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희춘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집 婢가 아니라 남의 집 婢와의 사이에 딸을 둔 바, 이 딸은 아버지는 미암이지만, 어머니가 천민인 고로 여전히 홍반 집 노비로 묶인 상태였던 모양이다. 어쨌건 미암은.. 2026. 6. 19.
일기와 번역 양자 모두 대단한 조선시대 일기 최대의 역작 미암일기에 실린 성리철학의 논조를 보면 명불허전16세기 조선 성리학의 정수를 보는 듯 하다. 내용 자체가 이 일기는 일단 대단하고-. 번역-. 번역자가 하도 특이해 찾아보니 이를 주동한 분이 향토에서 매우 존경받던 분인가 보다. 담양향토문화연구회라, 필자는 일면식도 없는 연구회이고 또 이 연구회 이해섭이라는 분도 일면식도 없는 분인데,대단한 일기에 대단한 번역이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이 일기 번역한 분은 성리철학에 매우 밝은 분이라는 생각을 한다. 대략 이런 번역 철학에 밝지 않은 경우 문리가 잘 안통하는 경우가 많은데번역에 실린 내용은 정확히 철학적 문리를 뚫고 있어 그 어떤 번역가보다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이해섭이라는 분은 이미 돌아가신듯 하여 당시 부고 기사가 있어 아래에 전재해 둔다. http.. 2026.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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