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471 조선시대 역사에 대한 두 가지 이야기 필자는 조선시대 전공자도 아니고, 전공과 관련 있는 일을 하다 보니 기웃거리는 문외한에 불과하다. 다만, 이런 것을 먼저 지적해 두고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벌거벗은 임금님은 누구 눈에나 다 보이지만 아이의 입에서나 그 사실이 먼저 나오는 법이다. 아래에 필자가 조선시대 역사를 보며 느낀 점을 두 가지만 적고자 한다. 첫째, 앞에서도 반복해서 썼지만 우리나라는 근대의 기점에 있어 대략 한 세기 이상 끌어올려 보고 있다. 필자가 보기엔 우리나라는 서양사의 근세, early modern에 해당하는 시기는 아무리 올려도 영조대 이상으로 올릴 수 없다. 17세기 효종, 현종? 전부 서양으로 따지자면 중세다. 숙종대도 마찬가지다. 영조대를 거치면서 비로소 서양사의 근세에 가까운 징후가 나타난다고 본다. 소위 말하.. 2026. 5. 6. 이해하기 어려운 한국의 지폐인물님들 孟子见梁惠王。王曰:“叟!不远千里而来,亦将有以利吾国乎?” 孟子对曰:“王何必曰利?亦有仁义而已矣。王曰:‘何以利吾国?’大夫曰:‘何以利吾家?’士庶人曰:‘何以利吾身?’上下交征利而国危矣。한국의 지폐에 실린 주인공들이 과연 "돈"이라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했을까? 맹자 양혜왕 장구를 보면 그랬을 것 같지가 않다. 우리나라 지폐에 선정된 인물들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비판이 있지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양반들을 지폐에 얼굴을 넣어 놓은 것인지 그 생각을 이해할 수 없다. 차라리 조선시대 선비 얼굴을 그렇게 넣고 싶다면, 신해통공을 한 채제공은 어떤가? 죄다 상상도인 퇴계 율곡 신사임당과는 달리 채제공은 당시 남긴 초상화도 있다. 한국자본주의의 아버지까지는 아니라도 증조할아버지 정도는 되지 않을까? 우리나라 지페.. 2026. 5. 6. 촌이 중앙을 타고 오른 유일한 시기 우리 역사에서 중앙정부- 서울과 그 근교가 지방에게 압도당한 적은 거의 없다. 딱 한 번 예외가 영남 사림들이 상경하여 서울을 타고 올라앉은 사림의 시대이다. 이것도 오래가지 못하고 결국 서울 근교의 사족들이 영남 사족을 밀어내고 다시 권력을 차지한 것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따라서 영남 사족들이 중앙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기-. 이리저리하여 조선 중기 백여년-. 이 시기가 우리나라의 향촌 사족들이 중앙정부를 타고 올라 좌지우지한 유일한 시기다. 이 시점 이전에도 서울 근교에 살며 왕실과 혈연적으로 얽힌 사족들이 나라를 쥐고 흔들었고, 그 이후 영남 사족들이 밀려난 후에도 다시 서울 근교의 사족들이 정권을 잡고 독점했으니, 이때 잘나가던 사람들을 우리는 특별히 경화사족이라고 부르는 것 같지만, 따지.. 2026. 5. 5. 태종이 죽였다는 고려왕실은 몇 명인가 조선이 건국되면서 고려왕실 사람들을 죽였다는 이야기는여러 가지 전설처럼 전해오는 버전이 있지만죽인 사실 자체는 팩트로 보인다. 그렇다면 몇 명이나 죽인 것일까. 비슷한 오백년 사직을 유지한 조선시대 말 왕실 후손 숫자를 보면 어마무시한 숫자인지라, 그렇다면 조선이 건국한 후 왕씨 후손을 수십 만을 죽인 것일까. 그런데 이에 대해 조사한 몇몇 자료를 보면대체로 100명에서 150명 사이라는데 어느 정도 의견이 모이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정도 숫자만 죽여도 고려왕실의 날개는 충분히 꺾을 수 있는 정도였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고려왕실의 경우, 서자를 제대로 챙기지 않았다. 조선왕실의 경우, 선원계보에 수록된 왕으로부터 갈려 나와 4대까지는 서자에 서.. 2026. 5. 5. 초기 족보와 표리를 이루는 또 하나의 계보 안동권씨 성화보, 문화유씨 가정보와 표리를 이루는 또 하나의 계보가 있으니, 바로 전주이씨 선원계보이다 (여기서는 편의상 선원계보기략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왕실 종친의 족보인 이 전주이씨 선원계보는 몇 가지 점에서 특이한 부분이 있는 바, 첫째는 왕의 서자를 악착 같이 다 가려내어 정확하게 썼다는 점이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사족들의 족보도 아예 서자를 제외하거나 서자를 끼워주되 서자라고 족보에 써 버리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 정도가 선원계보만큼 엄정하지 않다. 굳이 왕의 서자를 감출 필요가 없는 것이, 선원계보에 들어가 있는 동안에는 서자라고 해도, 나중에 대수가 내려가 선원계보에서 나가게 될 때, 어엿한 사족으로 활동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 태종의 자손 중에, .. 2026. 5. 5. 훈구파와 혈연관계가 없으면 더 이상한 현량과 급제자 아래는 조광조 일파가 주동이 되어 조선 중종 14년(1488년)에 꼴랑 한 번 실시하고서는 조광조가 패망하면서 폐지되어 버린 공무원 특별 채용 시험인 현량과賢良科 급제자 28명 명단이다.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 - 한국학중앙연구원수록인원 : 28명 목록개수 : 10 20 30 50 100 정렬 : 방목별 인명 생년 본관 합격등급people.aks.ac.kr 이 급제자 이름을 찍으면 이 사람들이 당시 어디에 살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총 28명 중 21명이 수도 한성에 거주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나머지 7명이 각각 상주, 진주, 청송, 강릉, 나주, 청도, 성주에 거주한다. [지방 7명 중 경상도가 그래도 많아 다섯 명이며, 기타 강원도랑 전라도가 1명씩 차지한다.] 이 한성에 거주하는.. 2026. 5. 4. 이전 1 ··· 10 11 12 13 14 15 16 ··· 79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