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587 포옹일기 1842년 1월, 조폭을 방불하는 집단 패싸움 산변 사건 (산송 사건)이 있어서 내가 30명을 모아서 청양 납산동의 금장 (산송 때문에 문제가 생긴 구역) 하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옛 금정역의 역한(驛漢) 최한석으로 하여금 수표를 작성하여 이름을 쓰고 서명하게 한 다음 묘를 파가게 하였다. 아침에 청양향교가 있는 마을 앞에 이르니 그 역한이 모집한 백여 명과 고을 종들이 길가에 매복해 있다가 나와서 신분을 막론하고 사람을 때려 결박하고 의관의 주머니 속에 있는 수표를 빼앗았다. 이 일로 인해 어떤 사람은 어깨와 갈비뼈가 부러지고 어떤 사람은 피가 낭자하게 흘렀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이처럼 윗사람을 범하고 분수를 넘어선 변고는 보지 못했다. 이 포옹일기를 쓴 최진익은 한미하지만 어쨌건 양반 후손이고, 산송이 일어난 상대는 역졸인 최한석이다. 역.. 2026. 7. 24. 산송이 왜 이렇게 많았을까? 우리나라 조선 후기에 산송이 많았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살인사건의 검시 자료에서도 산송 때문에 살인까지 가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그리고 조선 후기 근대적 측량이 제대로 확립되기 전이니, 선산이라 해도 도대체 어디서 어디까지나 내 산인지도 알 수 없고, 투장도 반드시 양반이 낮은 계급 사람들에게만 하는 것도 아니다. 낮은 계급 사람이 높은 계급의 사람 산소에 투장하고는 걸리면 배째라 한다. 조선후기, 산송이 이렇게 급증한 이유도 한 번쯤 살펴볼 만하다. 산송이 많았다는 팩트 이상의 사실을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 [편집자주] *** 저 산송을 근간에서 흔들어 버린 것이 바로 토지조사사업 임야조사사업이다. 저 사업은 인구센서스와 더불어 근대 국가를 추동한 양대 축이라, 저.. 2026. 7. 23. 경복궁 중건이 바꾸어 버린 조선의 모든 것, 그것을 증언하는 포옹일기 1861년 1월의 토로 대원군 이하응이 국정에 관여하며 경복궁을 중검하고 종친보를 만들었다. 부유한 사람과 상민은 특별한 공로나 글재주가 없어도 손쉽게 관작을 받았다. 반면 가난한 사람과 대대로 양반으로 지내온 사람은 많은 책을 읽거나 활쏘기를 잘 하는 사람이라도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였다. 동요에 "새로운 양반이 득세하고 전통있는 집안은 관직을 잃는다"라고 하였다. 당시 본관이 전주이고 성이 이씨인 사람은 비록 종의 신분이거나 역졸에 불과한 사람도 모두 양반이라며 사족들을 함부로 대하였다. 아 통탄할 일이다. 1861년, 그 자신도 그다지 영달하지 못했던 듯 한 집안출신인 최진익이 쓴 일기의 내용이다. *** [편집자주] *** 세상이 뒤집히는 증언으로 이토록 절절한 게 있을까? 저 경복궁 중건은 조선사회 모든 것을 흔들어버.. 2026. 7. 23. 남은 시간에 비해 턱없이 큰 족보와 호적 필자는 더 이상 "호기심과 창조"가 안 되면 공부고 나발이고 다 접고 놀러다닐거라 했다. 호기심과 창조가 보장되지 않는 연구란 없다. 그 시간이면 차라리 놀러 다니는 게 낫다. 그 호기심과 창조가 가능한 첫 번째 시한을 75세로 본다. 앞으로 15년 정도 남은 것인데, 필자가 하는 작업 중에 족보와 호적이 있다. 당초에는 이를 인구학적 분석의 목적으로 들어간 것인데, 하고 보니 이 작업의 볼륨이 굉장히 크다는 생각이다. 필자의 작업을 보면 아시겠지만, 족보와 호적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훑고 있는데, 이 작업을 하면서 느끼는 생각은필자가 전공이 인문학자이고, 남은 공부할 세월이 30년만 된다면 아마 이 일에 평생을 걸어볼 만하겠다는 생각을 해 봤다. 이 작업은 그 볼륨이 지나치게 커서 아마 이 작업을 필자가.. 2026. 7. 21. 향촌중인이란 무엇인가 향촌중인라는 개념이 있다. 학계 문외한인 필자가 볼 때 이 개념이 어느 정도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조선시대 호적을 보면 이 향촌중이라는 개념은 호적의 구조를 파악하는데 매우 유용하다는 생각이다. 일반적으로 중인이라하면, 역관, 의원, 향리 등 특정 업무를 수행하는 이들을 지칭한다고 알지만, 향촌중인이라고 부르면 이 사람들은 정체성에 있어 그 고을의 양반과 다른 사람들이 아니다. 다시 말해 양반 행세를 하며 본인 스스로도 "좀 떨어지기는 하지만 우리는 양반"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조선시대 호적을 보면, 양반 직역을 받는 사람들 중에 두가지 부류가 있다. 하나는 수백 노비를 거느리고 안정적으로 유학 이상의 직역 혹은 현직을 받는 집안, 또 하나는 노비의 숫자가.. 2026. 7. 20. 우리 조상님들은 돼지고기 안 드셨다! 20세기의 기호품에 지나지 않아 돼지고기는 요즘 소고기보다 더 맛있는 것 같다. 양념까지 치면 소고기보다 육질이 부드러워 필자는 돼지고기를 더 선호한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필자가 어린 시절까지만 해도우리나라는 돼지요리가 익숙한 나라가 아니었다. 돼지고기에서는 냄새가 많이 났다. 키우는 방법에 문제가 있어서였다는 말을 들었는데아무튼 돼지에서 냄새가 많이 나서 필자 어렸을 시절에는돼지를 구워먹을 때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고추장으로 양념을 매우 강하게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먹기가 쉽지 않았다. 냄새가 많이 났기 때문이다. 돼지국밥?그 당시 돼지고기로 국밥 끓였다가는 냄새가 나서 요즘 사람들은 먹지도 못한다. 돼지는 우리나라에서 많이 먹던 고기가 아니다. 물론 돼지사육의 증거는 꽤 멀리 거슬러 올라가지만, 돼지고기는 조선시대 후.. 2026. 7. 19. 이전 1 ··· 7 8 9 10 11 12 13 ··· 98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