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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 이야기

촌이 중앙을 타고 오른 유일한 시기

by 신동훈 識 2026.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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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 추존 만인소.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우리 역사에서 중앙정부- 서울과 그 근교가 지방에게 압도당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딱 한 번 예외가 영남 사림들이 상경하여 서울을 타고 올라앉은 사림의 시대이다. 

이것도 오래가지 못하고 결국 서울 근교의 사족들이 영남 사족을 밀어내고 다시 권력을 차지한 것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따라서 영남 사족들이 중앙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기-. 

이리저리하여 조선 중기 백여년-. 

이 시기가 우리나라의 향촌 사족들이 중앙정부를 타고 올라 좌지우지한 유일한 시기다. 

이 시점 이전에도 서울 근교에 살며 왕실과 혈연적으로 얽힌 사족들이 나라를 쥐고 흔들었고, 

그 이후 영남 사족들이 밀려난 후에도 다시 서울 근교의 사족들이 정권을 잡고 독점했으니, 

이때 잘나가던 사람들을 우리는 특별히 경화사족이라고 부르는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에서 경화사족이 잘 못 나간 적은 한 번도 없다. 

오죽하면 정약용이 죽어도 서울을 떠나지 말라고 아들들에게 신신당부를 했겠는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조선시대를 보는 우리의 시각이 왜곡되어 있다는 것을 느낀다. 

왜 조선후기에 경화사족이 권력을 독점했는가를 묻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우리나라는 국가가 생긴 이래 항상 그래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분권한 지방권력이 자기 동네에서라도 온전한 권력을 누린 적이 없다. 

항상 중앙의 왕족과 이에 결탁한 사족들이 정권을 독점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오히려-. 

도대체 왜 영남의 사족들이 성종 이후 백여년간

중앙 정권으로 진출하여 무려 다섯 명의 자신들 학통을 이어 준 스승들을 나라의 문묘에 꽂아 넣고 

중앙 정권에서 패퇴한 이후에도 조선이 망할 때까지도 해체되지 않고 

지방의 사족으로 중앙에 계속 맞서며 수백년을 살아 남았는가,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오히려 이 질문이 되겠다. 

필자가 보는 한 우리나라 전국에서 중앙에 이렇게 맞서고 각을 세우면서도 끝까지 살아 남은 곳은 
영남 사족이 유일하다. 

이 중앙에 대한 도전과 항전, 

이것의 원인과 결과가 얼핏 보이는 장면이 바로 

전주이씨의 분포가 영남 지역에는 많지 않은 바로 이것 아니겠나. 

조선후기에는 왜 경화사족이 등장했는가를 물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조선 중기에 왜 영남사족이 중앙에서 그렇게 득세하였는가를 묻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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