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은 세월이 좋아서 조선시대 신분제를 거칠게나마 챗지피티로 시물레이션 해볼 수 있다.
이건 챗지피티에 몇 가지 조건만 설정하여 물어보면 쉽게 알 수 있으므로 자세히 쓰지는 않겠다.
결론만 간추려 말한다면 조선시대에 노비 숫자를 줄이는 것은,
노비종모법을 그대로 놔두는 한 어떤 방법을 써도 노비 숫자는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비종모법은 노비가 한 번 되면 정말 특이한 일이 없다면 혼인만으로는 노비에서 결코 빠져나올 수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신분제의 어떠한 개혁을 해도 노비종모법을 놔두는 한은 노비의 숫자는 줄어들지 않는다.
조선시대 호적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당시 매우 일부분 지역 호적만 남아 있다.
그러면 여기만 노비만 많고 다른 지역은 덜 했을까?
노비가 전체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현상은 이곳에서만 일어난 일일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은 노비종모법을 그대로 놔둔 상태에서는 어떤 시물레이션을 해도 노비 숫자가 절대로 줄어들지 않고,
다른 신분제 개혁은 어떻게 해도 노비는 전체 인구 절반에 가까운 숫자로 유지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노비종모법은 어떤 지역에만 국한되어 시행된 것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시행된 것이며
매우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이를 적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지역별로 약간씩의 차이는 물론 있었겠지만
노비가 전체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양상의 비율은 전국적으로 별 차이가 없었을 것이라 본다.
노비종모법은 어떤 의미에서는 역사학의 영역이라기보다 수학의 영역이라는 것이 옳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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