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선대계보의 확립은
최초의 문중 족보를 만들려고 할 때
같은 문중이라고 알려진 몇 개 씨족이 직계계보를 들고 경합하고 있다는 데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위와 같이 직계계보 세 개가 경합한다고 할 때,
이 세개의 계보는 대동보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런 식으로 병렬적으로 나열해 둘 수는 없다.
특히 자기 직계계보도 간신히 추려내 들고 있는 경우에는
다른 계보와의 접점도 알 수 없겠다.
오직 시조와 자신의 직계 계보 이 흐름만이 확인된 세개의 계보가 있을 경우,

첫 번째 방식은 이런 식으로 이어 붙이거나,
또 다른 방식은

이런 식으로 이어붙이거나 둘 중 하나의 방법을 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어떤 씨족이든 족보를 보면,
고려시대 계보는 거의 이런 식으로 되어 있다.
직계 계보의 연합체로 되어 있다는 점은 금방 알 수 있다.
원래는 별개 계보가 동일 조상의 후손이라는 전제 하에 하나의 계보로 묶인 것이다.
물론 이렇게 묶일 때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언제 어떤 방식으로 분파가 이루어졌는지 확인하여
그에 따라 두 번째 그림과 같은 계보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경우, 언제 분파가 이루어졌는지 알 수 없는 직계씨족들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처리했을까?
17세기 초반 당시 어떤 가문에서는 실제로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
정황상 우리 집안이 맞는 것 같은데 어떻게 갈려 나갔는지 불확실한 것이다.
이런 경우 이 가문에서는 첫 족보에서 이 지파를 별보로 처리하면서 해결했다.
정확히 족보의 어느 곳에 위치시키지 않고 별보 처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족보에서 별보란 이런 용도로 씌어졌다.
어떤 경우에는 수단收單했을 때 병단이 늦게 도착하여 별보를 꾸리는 경우도 있지만,
어디서 갈려 나갔는지 알 수 없을 때 별보에 따로 수록했다.
오늘날 족보를 연구한 사학자들이 별보가 족보에 끼어드는 유력한 통로라고 지목한 것이 바로 이 때문인데,
별보를 통해 입보한 모든 씨족이 전부 가짜라고 볼 수도 없다.
정황상 그렇지 않아 보이는 것도 상당수 보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우리나라 족보는 대동보의 골격이 갖추어지기 전까지는
족보가 이런 식으로 직계 계보를 전체 집안 계보의 어딘가에는 위치시켜야 했고,
이 때문에 한 사람의 조상 그 아래에는
무지하게 많은 아들이 각각 분파를 이루어 전국 각지에 세거하는 모양으로 그려졌다.
실제로 이 많은 분파가 전부 이 씨족이 맞다고 하더라도,
이 분파들이 정말 그 한 사람 중시조의 아들인지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 편집자주 ***

본래 계보는 이리 복잡하다. 저 아마존 강 본류라고 하는 굵은 선도 실은 편의에 지나지 않는다.
암튼 아마존 강을 이루는 지류는 저리도 무수하며, 합류지점(곧 갈라지는 지점)도 다 다르다. 저걸 어떻게 하나로 합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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