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587 하재일기 독서 시작 조선시대 일기를 하나씩 시간 나는 대로 읽어가고 있는데, 이번에는 하재일기다. 서울시사편찬위원회에서 국역한 책을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와 읽기 시작했다. 구한말의 일기인데, 필자가 연구하는 검안자료의 시기와 겹쳐 도움이 될 것 같다.틈틈이 비망기 삼아 올려두겠다. *** 편집자주 *** 저 하재일기荷齋日記가 나로서는 생소한데, 이르기를 도자기를 생산하던 분원공소分院貢所 공인貢人 지규식池圭植이 조선 고종 28년, 1891년부터 1911년까지 약 20년 7개월 동안 쓴 일기로. 총 9책이며,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원본은 소장되어 있다 한다.경기도 양근군 남종면 분원리(현재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에서 도자기 만드는 일을 한 평민 지규식이 1891년 1월 1일부터 1911년 윤 6월 29일까지 20년.. 2025. 10. 5. 1476년 안동권씨 성화보 최근에 안동권씨 성화보를 배독한 바, 이런 규모의 족보가 1476년에 이미 발간되었다는 데서, 이 집안의 당시 명망을 알 수 있겠다. 책 하나를 편집하려 해도 원고가 도착하는 때가 들쭉날쭉으로 마지막까지 원고를 보내지 않고 결사저항하는 저자가 부지기수인 바 저때라고 달랐겠는가? 같은 동성의 같은 파보를 만들어도 수단이 제대로 안 되어 20세기나 되어야 파보를 제대로 만들어 내는 집이 널렸는데, 1476년에 사료로 가치도 풍부한 이 정도 규모의 족보를성도 다른 여러 문중으로부터 수단하여 만들어 낸 것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극심한 근친혼 콩가루 사회를 증명한 안동권씨 족보https://historylibrary.net/m/entry/%E3%85%87-836069 극심한 근친혼 콩가루 사회를 증명한 안동.. 2025. 10. 4. 호적에 차마 쓰지 못한 '양반' 한 글자 조선시대 호적을 보면 양반인지 중인인지 평민인지 노비인지몇 가지 판단 지표를 보면 알 수 있다.하지만 호적에다 양반, 중인, 평민 이렇게 써 놓은 것은 없다. 노비는 있다. 노비는 호적에 노비라고 쓴다. 하지만 양반도 중인도 평민도, 호적에는 그렇게 쓰지 않는다. 직역이라는 것이 있지만 이건 양반, 중인, 평민과는 본질적으로 상관은 없다. 직역이란 쉽게 말해 국가를 위해 이러이러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적어 놓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양반이라면 군역을 할 필요가 없었지만명분상으로 보자면 양반이라 군역을 면제 받은 것이 아니라, 과거 준비를 하는 사람에게 군역을 면제해주었을 뿐인 것이다. 따지고 보면 발상 자체는 우리가 대학생들에게 군대를 연기해 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이것이 본말이 전도되어 군역을.. 2025. 10. 4. 인구학의 목적으로 사용할 족보 이야기 이 블로그에 필자가 지금 느닷없이 보학 연재를 시작한 바이것은 원래 보학을 하려 함이 아니고, 필자 연구의 한 모퉁이인 조선시대 인구학을 연구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준비 작업을 하면서 쓰고 있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조선시대 호적과 족보, 그리고 인골정보를 합쳐서 그 시대의 인구의 동향, 족보의 기록, 호적의 기록을다방면에서 들여다보고자 함이니, 필자의 연구의 한 구석 기둥을 이루고 있는 주제라 할 수 있다. 필자가 일본의 연구자와 함께 했던 일본 도쿠가와 집안의 평균수명에 대한 연구는필자의 지금 족보에 대한 고찰과 인연이 닿는 연구이므로 관심있는 분의 일독을 바란다.https://www.e-agmr.org/journal/view.php?doi=10.4235/agmr.25.0008 Life Expec.. 2025. 9. 30. 족보와 제사, 귀성 추석이 눈앞이라 조금 써 보면, 우리가 전통의 상징으로 인식하는 족보, 제사, 귀성은그 전통이 제대로 작동하던 시대에는 이런 것 제대로 있지도 않았다. 오늘날 한국인의 절반 이상의 사람들은 19세기 이전에는 족보도 없었고 제사도 지내지 않았고 귀성은 더더욱이 없었다는 말이다. 추석과 설날을 상징하는 이 풍습과 전통은 모두 빨라야 19세기, 늦은 것은 20세기 중반이나 되야 한국인들의 실생활에 파고 든 것이다. 족보는 심지어는 사대부들도 17세기 초반까지도 제대로 된 게 만들어지지 못했고 우리가 아는 대동보는 빨라야 19세기 후반,그 나마 대부분은 일제시대나 되어야 제대로 수단되어 각 문중별로 발간된 것이고 제사? 유교적 풍습에 입각한 제사와 친영례등 주자가례에 기반한 풍습들은16-17세기가 되어서야 사대.. 2025. 9. 30. 대동보는 망각과 타협의 결과이다 이런 이야기는 어떤 특정 문중 이야기는 아니니 오해 없길 바란다. 그렇다고 해서 가공의 이야기는 아니다. 어느 집안이나 흔히 있는 이야기라는 뜻이다. 우리는 문중의 옛날부터 뭔가 대동보 비스무리한 족보가 있어이것이 확대되면서 지금의 대동보 모습을 갖추었으리라 생각하지만 족보도 사람의 기억의 산물인지라 자연히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게 되어 있고내 주위는 많이 알고 멀어지면 모르게 되어 있다는 말이다. 족보라는 건 결국 망각과의 싸움이라 제때 정리하지 않으면 하나도 기억이 남지않는 것은 옛 어른들이라 해서 다를 바 없다. 이런 경우가 있다고 해보자. 우리 문중으로 알던 사람들은 아닌데 수백년 전에 갈려 나간 동족이라고 하여 족보에 이제부터라도 적어 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도 수백년 전 조상의 후손들이니 수.. 2025. 9. 30. 이전 1 ··· 52 53 54 55 56 57 58 ··· 98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