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504 구한말의 주인공은 노비 후손이다? 필자는 이 말이 틀림없는 사실이다, 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도발적인 말을 하는 이유는 이렇다. 18세기 초반까지도 마을마다 절반 가까이 되던 노비사역이 18세가 후반을 거쳐 19세기가 되면 거의 사라지고 각 마을은 자기들이 양반 후손이라 주장하는 소농민들로 재편된다. 그렇다면 이전 노비는 어디로 갔겠는가, 당연히 양반이라고 주장하는 소농민들로 바뀌었을 것이다. 이 숫자가 전체 인구의 절반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과연 19세기 후반, 구한말에 들어가면 얌전히 있었을 것으로 보는가? 19세기 후반 활동하던 사람들 상당수, 심지어는 중앙정부에 발탁되어 들어간 사람들 중에도 이들이 상당수 섞여 있었으리라 보는것이 옳지 않을까. 당연히 우리나라 역사에서 구한말 활동하던 사람들 중에는 우리 조상이 100.. 2025. 8. 18. 구한말 출사한 상당수는 노비후손일 가능성이 있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도 있다. 19세기도 전반과 후반.출사하는 사람들 신분에 상당한 변화가 발생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구한말 아예 중앙관리로 진출한 사람 중에는 17-18세기까지만 해도 그 조상이 노비였던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아마도 상당히 많을 것이다. 양반으로 이미 신분 세탁을 끝냈기 대문에 안 보일 뿐이다. 아니라고 단언하여 말할 수 있겠는가?혹시 그런 것 아닌가 라는 의심으로부터 학문은 시작될 것이다. 2025. 8. 17. 19세기 역사에 요청한다 19세기 말 역사는 필자도 지금 조선시대 검시 자료에 대한 의학적 분석, 이 연구 프로젝트 때문에 공부를 좀 하고 있다. 이 시대 역사 전공자분들께 조금 부탁드리면, 첫째는 19세기 말 출현하는 역사적 인물들의 개인사-. 특히 이 시기에 출세하는 모든 이가 양반의 후손으로 되어 있는 부분이걸 그냥 당사자들이 말하는 그대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서는이 시대 역사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기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초대 대통령 우남 이승만 박사 같은 경우, 양령대군 후손이라지만 이미 이 분 5대조부터 벼슬이 끊겨 있었다고 하는 바, 이를 몰락양반 후손이라는 말 한 마디로 명쾌히 정리할 수 있겠는가? 우남 이외에 다른 분들의 경우에는 필자는, 이 중 많은 수가 그 2-3대 조 시기에 입신한 집안의 후손일 것이라 의.. 2025. 8. 17. 19세기 가짜양반들은 동학전쟁 때 무엇을 했을까 필자가 파악하는 바, 19세기 우리나라 향촌사회에서 변혁의 핵은 바로 가짜양반들의 급증과 함께 일어나는노비사역을 중심한 중세적 사회의 해체가 되겠다. 그 결과가 소농민의 급증, 노비사역의 급감, 그리고 가짜양반의 급증이다. 그렇다면 말이다. 이 가짜양반들은 개항 이후 무엇을 했을까, 동학전쟁 때 이 가짜양반들은 과연 무엇을 했을까. 정부 편에 섰을까 아니면 동학군에 가담했을까. 아니 대한제국의 멸망과 함께, 일제시대가 시작되면이 가짜양반들의 후손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독립운동을 했을까. 아니면 친일을 하고 있었을까. 물론 가짜양반들의 일부는 독립운동도 했을 테고일부는 또 친일도 하고 있었겠지만 문제는 우리가 그런 동향 파악을 전혀 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 그게 되겠다. 조선후기까지 열심히 향촌사회의 .. 2025. 8. 17. 조선시대, 국수는 귀했는가 언제부터인지 조선시대에는 국수가 귀했다는 말이 있다. 밀가루가 귀하다 보니 국수도 귀해서 대궐에서나 먹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과연 그럴까. 쇄미록을 보면 국수는 그다지 귀한 음식이 아니다. 밀로 뽑았는지 메밀로 뽑았을지 모르겠다만아무튼 제사음식 제대로 차릴 수 없을 때도면은 거의 빠짐없이 올라가는 것을 보면요즘 라면 먹듯 상식은 못했다 하더라도그다지 반가에서는 먹기 힘든 음식은 아니었다 할 것이다. 이때문에 조선시대는 밀가루는 귀해도 메밀가루는 흔했으니이런 국수는 모두 메밀국수일 것이라는 이야기도 보이는데이것도 정말 그럴 것인지 알 수 없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그 전까지 상식으로 알려졌던 것이 조선시대 일기를 보면 너무 쉽게 무너져 버린 경험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인데, 조선시대 면식에 대해서도 우리가 .. 2025. 8. 16. 노비 사역농장의 해체 양반의 사역농장해체 → 소작제의 등장과 소농사회의 성립 → 소농의 양극분해 현재까지의 주류학계의 주장은 결국 이것인 바 양반의 사역농장 해체가 대체로 17세기부터 시작되었다 이것인데 필자가 보기엔 노비사역농장 해체는 이것보다 훨씬 늦다. 양반의 노비사역농장 해체는 호적을 보면 빨라야 18세기 초엽에 시작되었고 대체로 19세기 초가 되면 어느 정도 해체가 완료되었다고 본다. 소작제의 보편화는 따라서 이와 상관관계로 진행되었을 것이다. 지금 주류학계에서 소작제의 등장과 소농사회의 성립을 어느 시기로 보는지 모르겠는데소작제는 모르겠지만소농의 성립은 호적을 보면 대체로 이건 18세기 중엽 이후 19세기 초반까지다. 이 이전으로는 소농을 절대로 한국사회의 주류로 볼 수 없다. 18세기 초엽까지도 우리나라 향촌에는.. 2025. 8. 1. 이전 1 ··· 58 59 60 61 62 63 64 ··· 84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