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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504

자본가적 차지농은 절대로 나오지 못할 17세기 우리나라 17-18세기에 소위 광작운동, 자본가적 차지농이 조선에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텐데 조선시대 17세기 호적을 보면 자본가적 차지농은 나올 수가 없는 상황이다. 백보 양보해서 노비가 급격히 사라지는 18세기 후반이나 되야 한 번 비슷한 모습을 꿈꿔 볼 만한데 필자 생각으로는 우리나라 호적 상황을 보면 17세기에도 지주-전호제가 과연 얼마나 있었을지도 의심스럽고대부분이 노비 사역에 의해 농업생산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당시 호적이 이렇게 시퍼렇게 눈을 뜨고 살아 있고일기에서는 화폐경제는 고사하고 장에 나가 물물 교환이 대부분임을 웅변하고 있는데 도대체 우리나라에 광작운동화폐경제 자본의 본원적 축적이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본 기존의 연구는도대체 어떤 부분에 근거를 두고 이루어진 것인가? 2025. 7. 24.
한국근대사를 만화로 만드는 문중들 필자는 단언컨데우리나라 호적과 족보의 파악을 통해18-19세기 신분 상승과 변동 동향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면우리나라 근현대사는 영영 소설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본다. 조금만 팩트에 입각한 이야기를 하면 소위 말하는 문중이 벌떼 같이 들고 일어나 우리 집안을 어찌 보고 이런 망발 운운하면그게 역사학이겠는가 소설이겠는가 만화이겠는가. 학계에서 결과가 나왔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문중이 불문에 붙이겠다는명예로운 침묵의 약조가 필요하다. 학문적 검토에 따라 나온 이야기까지 죄다 간섭하고 항의하면그게 역사학인가? 소설이요 K 드라마가 될 뿐이다. 예전에 영국에서 리처드 3세 뼈가 나왔을 때 이 리처드 3세 뼈가 정말 그 사람인지 알기위해왕실 사람들 DNA를 검사한 적이 있는데이 검사 결과 왕족 중 한 갈래가 .. 2025. 7. 24.
족보와 한 짝으로 봐야 할 호적 족보의 태반이 위작이고 호적의 대부분이 이미 사라져 버린 우리나라에서 이런 고찰이 가능한 경우가 많지는 않으리라 보지만, 족보는 남아 있는 조선시대 호적과 함께 보면상당히 재미있는 결과를 얻는다. 조선시대 호적이라고 해서 그 기록이 완전할 수 없는 건 잘 알려져 있고누락도 많고 오기, 오류도 많지만 그 나름의 정보의 디테일 면에서 족보가 따라올 수 없는 부분이 있으며 특히 제 3자의 손을 거쳐 기록된다는 점에서 족보보다 훨씬 객관적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 아무리 족보에 조상이 양반으로 적히더라도남아 있는 호적에서 유학으로 직역이 적히지 않았다면 그 족보는 적절히 개작이 된 것일 게다. 반대로 호적은 또 완벽하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필자가 보기엔 남아 있는 호적에 올라있지 않은 사람도 많고 호적은 그.. 2025. 7. 23.
절대로 만만치 않은 외거노비 조선후기 인구 다수를 차지하던 사람들외거노비. 흔히 생각하기에 외거노비 하면 노예 비슷하게 사역되고 두들겨 맞고 일방적으로 당하고 살았을 것 같지만전혀 그렇지 않다. 16세기에 이미 외거노비들은 집에 붙어 있다가 도망갔다가 다시 돌아왔다가 완전히 자기 맘대로이며심부름을 시켜 놓으면 알아서 떼먹기 심지어는 자기 논 밭도 가지고 있어 매매도 맘대로 하는 등 말이 좋아 외거노비이지 통제가 잘 안되는 존재였다는 것이 일기를 보면 분명히 드러난다. 이들이 기존 사회가 해체되면서 일부는 지주로 상승하고 그 재력을 바탕으로 양반을 모칭하고 유학이 되어 나라에서 돈받고 뿌리는 공명첩 하나 사서 자기 이름 적어 놓으면양반으로 완벽히 탈바꿈하는 것이다. 19세기 중후반 양반 중에는 이런 노비 출신 양반상당히 있었을 것이라.. 2025. 7. 22.
노비가 주인 성을 따른다?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 중에 구한말 성을 모두 가지게 되면서 그때까지도 성이 없던 사람들 중 노비들의 경우 자기 주인성을 따라 몽땅 그대로 바꾸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 사실일까? 주인은 노비들이 자기 성 따라 바꾸는 것을 그냥 놔뒀을까? 필자가 보기엔 이렇다. 아마 주인 성 따라 성을 지은 노비들도 있을 것이고 아닌 노비들도 있을 것인데, 전자의 경우 필자가 보기엔 그냥 노비가 아니라 사실은 이들이 얼자라고 보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서자는 어머니가 평민인 경우이고, 얼자는 어머니가 천민인 경우인데, 어머니가 노비인 경우 아이가 나와도 이는 그대로 노비가 되었고 그 어머니를 면천 시키지 않는 한은 아이는 족보에 올라올 수 없었다. 반면에 어머니가 평민인 경우에 서자가 되는데, 이 경우에는 특별한 상황.. 2025. 7. 21.
한국사회 고도성장 첫 단추는 18-19세기 한국사회의 20세기 고도성장은 눈부셨으니그 기원에 대해서는 설왕설래 말이 많다. 이 기원을 어디 두느냐에 따라 식민지 근대화론을 둘러싼 논쟁도 일어나는 바, 필자는 이 부분에 대해 약간 써 본다면, 굳이 산업화, 성장률 등으로만 보지 않고사회 구조의 긍정적 변화, 근대적 사회로의 전진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필자는 한국 근대화 고도성장 첫 단추는 18-19세기에 있다고 생각하는 바. 특히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후반까지 약 100년간 한국사회는 격동의 변화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흔히 근대화를 산업화, 화폐경제, 자본주의 맹아론 등에만 두지만필자는 중세적 계급사회가 무너지는 과정 이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필자가 이 시기를 고도성장 첫 단추라고 이야기하는 까닭은18세기 전반의 호적과 같은 동네 19세.. 2025.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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