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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616

메이지 초기를 지배한 출세주의 (1) 일본 메이지 시대 초기를 보면, 눈에 띄는 것은나도 이제 막부가 쓰러졌으니 출세 한 번 해보자는 것이 되겠다. 에도 막부 300년은 한마디로 말해서 내가 할 일이 명확히 정해져 있고내가 받을 녹봉이 정확히 정해져 있어사무라이들은 위로는 쇼군부터 아래는 말단 하급 무사까지뭐를 해야 하고 얼마나 받을지가 정확히 결정되어 있었다. 이 녹봉이 너무 작은 경우 요샛말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벼락출세도 없었고또 하지말라는 거 안 하고 잘 보신주의로 버티면벼락 몰락도 거의 없었다. 한때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칼을 뽑았다가는 나는 물론우리 후손 대대로 먹을 녹봉을 날릴 판이라, 무사는 농민이 약올리면 죽여도 된다고 했지만아무도 그 말을 믿고 칼을 뽑는 이가 없었다. 그랬다가는 얼씨구나 하고 위에서 .. 2025. 9. 5.
18-19세기 "향촌중인"과 현대 한국의 중산층 현대 한국인은 우리나라가 빈부차가 크다고 생각하지만다른 나라 다녀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한국의 힘은 이처럼 매우 두터운 중산층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각설하고, "한국의 중산층의 기원"은 무엇일까? 한국 중산층이 결국 한국의 산업과 근대화의 횃불을 든 사람들이라 생각했을 때한국 중산층의 기원을 밝혀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향촌에는 원래 "양반"과 "평민-노비-천민" 밖에 눈에 띄는 게 없었다. 여기에 아주 얇은 층으로 "향촌중인"이 존재했는데 그 대부분은 "양반의 서자들"이었다. 이들은 조선 초-중기까지도 강고했던 서얼금고 때문에 조상 중에 한 명이라도 서자가 있으면 몽땅 과거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하층 관직을 전전하며 차별받는 층으로 묶였다. 이들이 바로 "초기 향촌중인".. 2025. 9. 5.
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 일본 동경에는 고라쿠엔後楽園이라는 곳이 있다. 여기는 지금 무슨 경기장인지 체육관인지가들어서서 거기에 이름 붙어 우리에게 유명하지만여기는 원래 에도시대 무슨 영주의 정원이었다. 그 정원의 이름이 고라쿠엔인데, 유명한 북송의 대 유학자, 존경해 마지않은 범중엄 선생의 일갈, 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에서 따온 것이다.에도시대 무사들 입에서 후락원後楽園이라는 말이 나오는거 자체가이미 이 시대 일본 무사란 더이상 전국시대 칼잡이 무사가 아니며이데올로기를 장착한 지사로 진화했다는 거을 의미한다. 한국의 19세기 향촌사회. 그 혼란과 에너지의 멜팅 폿에서 불과 몇 년 후면 진주민란이 일어나기 직전의 상황에서 묵묵히 자기 땅에서 노비 수백명을 1860년대까지도 사역시키던 소위 양반들은, 과연 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 2025. 9. 5.
17-19세기의 역사를 바라보며 우리나라 조선 후기의 역사는, 17-18세기 근대화의 맹아, 화폐경제, 자본주의의 싹이 자라다가 19세기 들어 삼정문란 등으로 난맥상에 빠지고 구한말 제국주의의 침탈을 입어 자생적인 발전이 분해된 그런 과정이라기 보다, 18세기 후반부터 근대화의 여명이라 할 싹이 보이고19세기 들어 활발한 사회의 변화가 뒤따랐지만,주변국보다 너무 늦게 변화가 시작되었고, 이 변화를 능숙히 다룰 만한 역량이 당시 정부가 부족하여 불행히도 식민지에 빠져버린 사례가 될 것이라 본다. 17-18세기에 자본주의가 자라다 19세기에 정체, 혼란에 빠진 것이 아니고, 17-18세기에는 그런 것이 없다가 19세기부터 뭔가 변화가 시작된 참이었다는 말이다. 이런 변화를 추동한 것은 18세기 이후부터 자라 나온 소위 학계에서 "유학 모칭.. 2025. 9. 4.
조선후기: 어떻게 양반으로 위장하는가 족보는 호적과 상호보완성도 갖지만 어쩔수 없는 한계가 있다. 조상을 현창하는 것이 목적이다 보니 후대의 위조와 추숭이 계속 위에 더해져원래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으로 그려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족보만으로는 과거를 제대로 들여다 볼수 없으며 호적이 여기에 더해지면 비로소 당시의 정확한 실상을 보게 된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어떤 이는 호적 자료에 17세가 말~18세기 초반 직역이 업무나 업유로 기록되었다. 17세기에 직역이 업무라면 어쨌건 말단이라도 양반은 양반 혹은 상급의 중인 직역으로비록 군역은 면제받지만 이 자체는 완전한 양반이라고는 할 수 없어 주로 하급 양반들, 특히 서자들 자손에게 많이 부여되었다. 조선 후기 정부에서 "양반을 모칭하며 놀고 먹는자들"이라고 하면백프로 이 계층을 말한다. 이 사람.. 2025. 9. 4.
홍길동은 왜 항복하지 않는가 흔히 대동보를 통해 자기 문중을 보는 근대적 시각 때문에 문중의 구성원은 모두 평등하며 한 조상의 자손이라는 생각을 요즘은 누구나 한다. 하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같은 문중 안에도 많은 다른 경제적 사회적 상황이 형성되며이에 따라 후손들 사이에 서로간에 층서를 형성하게 된다. 위로는 문중의 장손으로 사마시 대과 급제자를 대대로 낳는 집안이 있는가 하면서자도 아니고 얼자라 아예 자손 취급도 못받고 호적에 노비로 숨겨져 있는 자손도 나오게 된다. 따라서 조선후기에는 같은 집안이라 해도 위로는 명문 벌열부터 아래로는 노비까지 층서를 형성하며굳이 노비가 아니라 해도 적자와 서자, 장손과 지손간에 구별이 생겨 꼭대기에서 아래까지 층층으로 배열된 집단이 형성되니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 후기.. 2025.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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