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504 19세기 幼學 다시보기 19세기 호적에서 이전에 평민 심지어는 노비 후손들까지도 약 1세기에 걸친 노력으로 대거 유학으로 등장하는데 과연 유학이란 무엇인가. 이 유학이라는 이름은 지금은 학생이라는 명칭과 함께 제사 때나 들어볼 수 있는 "선생" 같은 호칭이 되어버렸지만 원래는 조선시대 호적에 기록되던 양반 유생들의 직역으로 18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아무나 붙일 수 없는 이름이었다. 호적에서 유학을 달면 일단 군역에서 면제되며 법적으로 과거 응시가 가능한 포지션이 되기 때문에 그 중요성을 말로 해서 뭣하리오. 조선시대 18세기 전반만해도 서얼들은 "업무" "업유"라는 이름으로 불렸을 뿐 양반의 끝자락에 해당한다는 이들도 "유학"이라는 이름을 쉽게 붙이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18세기를 넘어 19세기로 들어가면 동네마다 ".. 2025. 7. 10. 19세기 가짜 양반들을 다시 보기 우리나라 희극계의 거성 구봉서 배삼룡 선생의 "양반 인사법"이다. 이 희극은 언제 봐도 정말 웃기는 장면이지만19세기에 각 향촌마다 넘쳐난 "가짜양반"들이 과연 저렇게 맹한 모습이었을까? 우리가 세상 살다 보면 남들 다 안 된다고 하는 것도 희안하게 되게 만들어 오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박정희 정주영을 만나면 크게 출세하는 것 아니겠는가? 19세기 양반으로 올라선 이들은 바로 "어떻게든 안 되는 것을 되게 만들어 오는" 사람들인 것이다. 이들은 호적으로 상징되는 양반사회의 빈 구멍을 찾아서 끊임없이 기회를 노리다가그것도 수십 년에 걸친 공작으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족보에 양반으로 자신과 가족들을 올려놓고 이를 발판 삼아 더 큰 재부를 추구하면 살았던 사람 아니겠는가? 19세기 가짜 양반들은 무.. 2025. 7. 10. "유학" 그 강렬한 상징성 조선후기 신분 상승을 꿈꾼 노비들이 19세기가 되면 죄다 스스로 "유학"을 칭한다. 집집마다 동네마다 "유학"이 없는 집이 없을 정도이다. 그런데 왜 하필 "유학"일까? 물론 유학을 칭해야 군역에서 빠지기 쉽다는 현실적인 이익이 분명히 있을 테고, 양반이라면 식자층이어야 하고배운 사람이라는 간판이 있어야 무시당하지 않는다는 생각도 있을 터이다. 그런데 자신의 신분 상승의 수단으로 왜 "유학"을 선택했을까? 이 "유학"이 결국 20세기가 되면 대학졸업장이되고, 박사학위가 되는 것이다. "유학"간판을 단 사람들이 양반 대접을 받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비로소 거기서 "못배운 한"이 나오는 것이다. 19세기에 너도 나도 "유학"을 칭하는 순간에 이미 20세기의 우골탑과 교육열은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겠다. 2025. 7. 9. 출세를 위한 교육, 신분상승을 위한 공부 흔히 출세를 위한 교육, 신분상승을 위한 공부를 망국병이라던가 한심한 동기라고 폄하하는 시각을 보는데, 미안한 이야기지만 조선시대, 공부라는 것이 위기지학으로 수기치인, 도덕적 완성을 위해 해야 한다는 그 시대에도 그렇게 공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사서삼경을 읽는 것은 소과라도 붙어 양반 자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자 함이지 위기지학 수기치인이라는 건 웃자고 하는 소리지 정암 조광조 같은 기인이 아니면 심각하게 이걸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문집에 이런 이야기를 가득 채워놨다고 해서 정말 그런 동기에서 공부했으리라 보는 건 바보 같은 생각이다. 정말 그렇다면 하루 일과를 적어 놓은 일기에 수기치인의 수련 이야기가 가득차야 할 텐데일기에는 대부분 뭐 먹었는지 이야기, 누구하고 술먹었다는 이.. 2025. 7. 9. 신분을 끌어올리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 조선 후기 한국인은 18세기 이전까지도 대부분이 노비였다. 양반은 숫자가 얼마 되지 않았다. 남아 있는 호적으로 보면 너무나 명확해서 이를 부정하는 일은 바보같은 짓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노비사역이 주류가 되어 있는 사회에서 자본주의 맹아론 운운은 부질없는 시도라 본다. 그렇게 본다면 지금 한국인 거의 절대 다수는 17세기 이전 노비 조상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필자의 말에 설마 하겠지만 조선시대 호적을 한 번만 실물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1700년대 호적만 봐도 양반 수는 많지 않고 절대다수가 노비다. 이들이 다 어디로 갔겠는가. 오늘날 한국인들은 모두 조상이 왕족, 양반, 귀족인 족보를 가지고 있지만 사실 대부분은 노비의 자손이다. 흔히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말을 한다. 헐리웃 영화.. 2025. 7. 9. 새로운 시대를 준비한 영정조 시대 영정조 시대를 문예 부흥,이를 조선문화 후기 르네상스로 보는 시각이 있다. 물론 이 시대를 그렇게 정의하지 마란 법은 없겠지만 필자가 보기엔 영정조시대 최대 업적은 19세기 민란의 시대를 낳았다는 데 있다. 18세기 전반기만 해도 노비 사역이 사실상 주류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조선 땅에 18세기 후반을 거치면서 19세기가 되면가구의 크기도 훨씬 줄어들고 노비 사역이 거의 사라진 우리가 알고 있는 가족의 형태가 완성되는 것 같다. 노비 사역이 공고한 상태에서 일어나는 민란은 고려시대 만적의 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겟지만19세기의 민란은 아예 왕조를 뿌리채 흔들어 이를 무너뜨리는 데까지 발전한 까닭은따지고 보면 한국 향촌사회에서 노비 사역이 거의 사라져 버린 데 있다 하겠다. 물론 19세기에도 노비가 완전.. 2025. 7. 9. 이전 1 ··· 65 66 67 68 69 70 71 ··· 84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