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504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 ROOTS 지금 세대는 잘 모르시겠지만 필자의 세대가 익숙한 미드 중에 뿌리라는 작품이 있다. 서아프리카에서 잡혀와 노예가 되고 그 후손의 후손이 이어져 현대 미국의 작가가 된 집안의 이야기인데알렉스 헤일리라는 작가가 자신의 경험담을 적은 실화 반 픽션 반의 소설이라 하겠다. 이 소설은 티비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공전의 히트를 쳤었는데 한국에는 소설의 단계가 아니라 미드의 단계에서 수입되어 우리나라에도 적잖은 여파를 미쳤다.이 드라마는 사실 미국 60년대 흑인민권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다 할 만한데 60년대의 민권운동으로 각성한 흑인들이 망각 속에 묻혀있던 자신의 뿌리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이 소설의 작가는 그 뿌리를 1767년, 아프리카에서 사로 잡혀 노예가 된 쿤타킨테라는 사람에게 까지 거슬러 올라가 찾게 .. 2025. 7. 19.
바나나 값이 올라 제사 지내기 힘들어지다 흔히 차례나 제사를 지내야 할 철이 되면 사과나 배값이 항상 화제가 된다. 사과 값이 너무 비싸서 차례 지내기 부담스러워졌다던가. 그런데 사과는 우리나라에 도입되어 사람들이 먹기 시작한 것이 100년 조금 넘었을 뿐이다. 과거에 대구능금, 대구사과가 유명했다는데 능금이건 사과이건 간에 우리나라는 19세기 말 이전에는 사과는 사람들이 즐겨 먹는 과일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허생이 독점하여 떼돈을 벌었다는 제수 음식에도 대추ㆍ밤ㆍ감ㆍ배ㆍ감자ㆍ석류ㆍ귤ㆍ유자 등이 나오지사과는 없다. 사과는 20세기 초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도입되어 처음 재배가 시작되었다고 하니사실 바나나나 사과나 그게 그거인 셈이다. 차례 음식으로 왜 사과값만 따지나? 바나나값도 앞으로는 같이 따질 일이다. 이런 사과를 놓고 홍동백서니 하면서.. 2025. 7. 19.
역사서술을 바꿨을지도 모르는 호적 요즘 종종 나오는 이야기 중에 16-17세기에 우리나라는노비가 너무 너무 많았던 나라로 양반집 농사는 수백 명에 달하는 노비 사역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종종 온라인에 보이며 이와 관련하여 방송도 탔던 것이 바로 "추노"로 아는데, 사실 우리나라 16-17세기 상황이 분재기나 일기 등 전적이 소개 되면서 보다 잘 알려진 덕분도 있지만 이 시대를 우리가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왕조실록 등에는 이런 이야기 충분히 적혀있지도 않고 무엇보다 집집마다 전하는 족보에는 집집마다 양반들 후손이었던 고로 16-17세기에 이렇게 노비가 많았던 것은 의외의 사실로 받아들여진 측면도 있다고 본다. 그런데-. 기록으로서 족보는 별로 믿을 만하지 않다는 이야기도 했거니와 지금 집집마다.. 2025. 7. 19.
고려에 대해 순절한 씨족은 얼마나 있었을까 각 집안 족보들 보면 여말선초에 무너져 가는 고려왕조를 위해 충성을 안 바쳤다는 씨족이 드물다. 예를 들어 영조 때 딱 두 사람 이름만 전해졌다는 두문동 같은 경우 그 이후 확대생산되어 공문 72 제자처럼두문동 72명 이름이 다 만들어진 것도 모자라 72명 안에는 안들어 갔지만 우리 조상도 두문동에 있었다는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까지 겹쳐 두문동 이야기는 조선후기 책으로도 여럿 나올 지경이 되었다. 고려말에 멸족한 씨족이라는 것이 물론 있을 수도 있겠는데, 그 숫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필자 짐작이다. 필자 집안 족보도 상고하면 고려시대 내내 단계로 내려오다가 (이것도 할 말이 많은 부분인데 단계로만 내려올 리 있겠는가? 다 망실되고 딱 한 집안만 살아남았다고 본다)몽골간섭기 시대에 소위 .. 2025. 7. 19.
가짜양반을 역사의 주인공의 자리에 우리나라 역사에서 19세기에 대량 출현한 가짜양반들-. 이에 대해선 애매한 평가와 기술이 대부분인 것 같다. 대략 삼정의 문란으로 혼란해진 질서을 뒤집고 나와양반을 모칭한 사람들이라던가, 그게 아니면 조선후기 양반수 급증 원인 정도로 간단히 처리될 뿐 이들이 사실은 동학혁명, 갑오경장, 구한 말 이후 개화운동,일제시대 조선사회,해방 이후 근대화, 이 모든 흐름 뒤에는 바로 가짜양반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19-20세기 한국사회를 근대화의 물결로 밀고간 사람들은 누구인가? 바로 이들 "가짜양반"들이다. 우리는 가짜양반을 근대사 역사 발전의 주체로 다시 봐야 한다. 가짜양반들의 신출귀몰한 전변에 대한 이해 없이는 근현대 한국사는 없다. 2025. 7. 12.
용도불명의 목활자본: 열성수교 (6) 조선후기는 지금까지 쓴 대로 군역을 빠지려는 사람들의 욕망이 무지막지하게 분출된 시대이다. 이러한 움직임을 최근의 병역기피하고 연결시켜 설명하기도 하는 것 같지만, 사실 현대의 병역기피와 군역기피는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른 측면이 있다고 본다. 사실 조선시대 신분은 호적에 기록된 직역이 가장 정확하다고 보는데이 직역에 기록된 방식은 그 사람의 신분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기록되었다. 그런데 이 직역이란 결국 국가의 관리로 등용되면 그 관직명이 직역이 되고, 관직을 갖지 못한 양반은 "유학"이 되며, 양반이 아닌 사람들은 결국 평민들의 직역을 받게 되는 셈인데 그 평민들 직역 안에 군역이 있는 것이다 (노비는 직역이 없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군역기피"는 그 의미의 방점이 "병역기피"에 찍히는 것보다"신분상.. 2025. 7. 11.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