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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616

아직 제대로 된 호칭조차 없는 19세기 유학모칭자들 19세기 유학모칭자들, 이라고 하지만이 숫자는 거대하다.많게 보면 전체 조선인구 절반 가까이 될 수도 있으며 적게 봐도 30프로는 넘는다. 그도 그럴 것이 많아 봐야 인구의 20프로를 넘지 못하던 유학호가 19세기 중 후반에 이르면 인구의 60-70프로에 달하게 되는 탓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무더기로 유학호를 달게 되었는데우리나라는 아직도 이들을 부르는 호칭조차 변변한 게 없다. 그 당시부터 돌이켜 보자면, 놀고 먹는자들, 군역회피자, 향촌의 중인, 등등이 이들에 대한 호칭이며현대 한국의 학계에서도 유학모칭자, 항촌 중인, 등등을 비롯해 가짜양반에 이르기까지다양한 호칭이 있지만 무려 인구의 절반에 육박할지도 모르는 이 사람들에 대해 통일된 호칭이 없다. 이와 대응하여 가장 많이 쓰이는 호칭이 잔반일 .. 2025. 9. 6.
호적을 보면 매우 이상한 균역법 1750년 이후 조선시대 호적을 보면균역법의 실체에 대히 의문을 갖는다. 이거이 실제로 제대로 시행되었던 것일까. 매우 의심스럽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균역법 실시이후 선무군관 숫자가 너무 적다. 실록인지 어딘지 기록에 의하면 균역법을 실시하면 정부 수입이 줄어드니까 이를 메꿔 줄 선무군관은 정부에서 도별로 숫자를 정해 위에서 반드시 채우라고 내려 꽂았다. 그런데 막상 향촌의 호적을 보면 선무군관이 몇 없다는 말이다. 선무군관을 받으면 직역이 그 이전에 유학이건 업무건 업유건 간에선무군관으로 바뀐다. 거의 백프로 이전에는 갖은 방법으로 군역을 회피하던 소위 향촌의 중인들이 대거 충원되었어야 정상인데막상 호적을 보면 선무군관으로 잡혀 들어간 사람이 몇 안 된다. 그나마 이 사람들도 그.. 2025. 9. 6.
호적에서 보는 균역법 균역법은 1750년, 영조 26년에 공포되었다. 온라인의 나무위키 글을 따서 옮겨보면 이렇다. 인정(人丁) 단위로 2필씩 징수하던 군포(軍布)를 1필로 감해주고, 대신 균역청을 설치하여 줄어든 세원을 보충하는 정책을 실행하도록 했다. 왕족이나 권문세가, 지방 관아에서 세금을 매겨오던 어전(漁箭), 염분(鹽盆), 곽전(藿田), 태전(苔田)과 선박에 대해 국가에서 세금을 거두게 하였다. 그리고 토지마다 1결당 2말의 결작미를 징수하였는데, 이는 군역의 부담이 전세로 바뀌게 된 셈이다. 일부 상층 평민을 대상으로는 선무군관제에 따라 선무군관이라는 지위를 주어 선무군관포 1필을 납부하게 하였다.요약하면 군포를 노상 내던 평민들 2필을 1필로 감하는 대신, 새로 1필을 내는 사람들을 뽑아 손실분을 메꾸게 했다 이.. 2025. 9. 6.
19세기 유학모칭자들 우리나라 18-19세기에 향촌사회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소위 유학 모칭자들-. 이들은 숫자도 많고 신분 상승의 욕구도 강하여19세기 후반 이미 뚜렷한 입지를 드러내는데, 과연 조선 후기의 각종 차별을 뚫고 입신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겠다. 이들은 구한말의 거쳐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이들의 그 이후 추이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한 연구를 필자는 본 적이 없다. 일제시대 활발한 활동을 하던 한국인이 19세기 유학 모칭자들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그리고 해방 이후 활동하던 사람들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면밀하게 따라가는 연구를 본 적이 없는 까닭이다 다만 필자의 막연한 추측이기는 하지만이들이 19세기, 유학호를 참칭하며 신분상승을 꿈꾸며 벌이던 그 강렬한 에너지와 물불 안 가리는 행각을 생각하면, 이들은 20세기 .. 2025. 9. 5.
메이지 초기를 지배한 출세주의 (2) 메이지 시대, 하면 우리는 아무래도 식민지배의 기억이 있어서이 시대는 제국주의자들의 시대, 라고 정의하기 쉽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메이지시대의 초창기는 조금 다른 각도에스의 조명도 필요한 것이, 이 메이지 초기는 막부를 쓰러뜨리고 개국개화의 국가적 대전환 위에 막부편에 섰던 사람이나 아니면 신정부 편에 섰던 사람이나 극소수의 벌열이 된 이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쪽박 차고 시작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여 극도로 빈핍한 이들이 공부 하나로 출세해보겠다는 기풍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던 대였다. 이 시기에 일본의 교육제도라는 건 근대적이라고 보기 일천하여 허술하기 짝이 없었는데 아래로는 소학교에서 위로는 대학까지 졸업생도 없고 가르칠 선생도 거의 없는 상태에서 만들어가며 교육하는 상황이라 어제까지 교육생.. 2025. 9. 5.
들끓는 동등에의 욕망, 족보는 그 분출구였고 권리장전이었다 족보.식민지 시대 조선 사람&대한제국 사람이 가장 열망하던 욕망의 도서였다.신분제가 이미 철폐되었지만족보는 재산 상속의 근거가 되니문중, 종가, 종손, 장남이 물려받는 재산을 차지하기 위해서족보에 이름을 올려 지분을 확보해야 했다. 위조족보를 만들어서라도 재산을 차지하려 했으니족보는 그야말로 욕망의 화신인 거다.신분상승의 욕망에서재물상속의 욕망으로붙이기 일가일수록, 종사에 열심히 참여했다.박지원의 양반전이 소설일 수 있는 이유는똥냄새처럼 구린 양반의 행실을 욕망하던 사람이 많았는데양반 신분 사는 것을 포기하는 결말이니 이는 환상이다.현실은 양방이 누리는 똥구린내나는 기득권을 사는 것이 사람이다.그렇게 끝났으면 논픽션, 다큐멘터리, 르뽀르타쥬가 되는 것인데연암은 부자가 양반 신분 매매를 파기하는 것으로 끝.. 2025.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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