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604 붕당론과 당쟁 조선시대의 당쟁을 붕당론이라는 이름으로 견제와 균형을 이야기하며 옹호하는 입장이 있는데 애초에 도학자들의 세계관에서 견제와 균형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본다. 조선시대에 당쟁, 붕당정치가 끝도 없이 전개된 이유는 정쟁에서 패배해도 진 쪽도 진 것 같지 않게 세력이 끝없이 유지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우리나라 당쟁의 원인으로 사람은 많은데 관직은 적어서 싸움이 났다는 주장도 봤는데 이것도 어폐가 있는 것이 어차피 과거 급제해봐야 얻을 수 있는 관직도 제한되어 있었고, 우리나라 사대부라는 사람들은 애초에 나라에서 녹봉받아 먹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과거란 자신들이 뼈대 있는 사대부 집안이란 것을 딱 증명하기 위한 정도면 되는 것이었고, 과거 급제한다고 해서 그로부터 먹고 살 기반이 나오는 것이 아.. 2024. 9. 18. 조선시대 사마시 조선시대의 사대부들과 일본 에도시대의 사무라이는 둘 다 士이다. 일본에서 士라고 하면 바로 사무라이를 가리킨다. 공경을 士라고 부르는 경우는 없다. 조선후기 한국의 선비들과 일본 에도시대 사무라이의 가장 큰 차이는 역시 전자는 벼슬 없이도 재지 지주로서 대대로 선비의 자격을 물려줄 수 있는데 반해 후자는 막부건 번이건 소속되어 직역을 받지 않는다면 사무라이로 존재할 수 없었다는 말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급제자에서 유심히 봐야 할 부분은 사실 사마시다. 사마시만 통과하면 향촌애서 재지지주이자 유력 사대부 집안으로 계속 존재할수 있었기 때문에.... 향촌에서 사마시만 통과하고 지주로 계속 살아간 이런 계층은 에도시대 일본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계층이다. 2024. 9. 17. 조선은 학자들이 현실 참여를 안해 망한 것이 아니다 조선은 소위 자칭 학자들이 현실참여를 안해 망한 것이 아니다. 그 반대다. 학자도 아니고 정치인도 아니고 관료도 아닌 어느 쪽으로 봐도 함량미달인 지식인을 양산했던 것도 17세기 이후 조선이라는 사회를 아마추어 수준에 머물게 한데 크게 공헌했다. 일본 최초의 근대적 해부번역서 해체신서解体新書를 쓴 스키타 겐파쿠杉田玄白(1733~1817)는 그 책에서 이렇게 외쳤다. "이 책(해체신서)을 읽는 사람은 마땅히 그 면목을 고쳐야 한다. 옛 관습에 빠져 내장과 뼈에 대한 한의학 설과 차이가 나는 것을 보았으면서도 다만 의심할 뿐 망설였으니...결국 분명하게 알 수 없었기에 끝내는 지리멸렬하게 되었다....그런 까닭에 진실로 그 면목을 고치지 않는다면 그 방에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오호라! 사람들 중에는 유.. 2024. 9. 9. 일단 때려 부수고 시작한 여말선초의 폐불론 동아시아 역사상 폐불운동은 여러 번 있었다. 중국도 그렇고 일본도 불교 전래 이래 심각한 폐불운동이 불과 메이지유신 이후 폐불훼석으로 왔다. 지금 불교 사원이 즐비한 일본을 보면 믿어지지 않지만 당시로서는 심각하여 이 당시 불타버린 불교사원도 드물지 않았던 모양이다. 불교가 동아시아에서 때때로 공격의 대상이 되었지만 꿋꿋이 버틴 이유에는, 첫째는 인간의 마음을 위로하는 종교로서의 기능. 항상 번뇌에 시달리고 홧병에 고통받는 대중이 의지할 종교가 전무했던 당시, 불교는 이 부분을 충족시켜 항상 살아 남았고, 둘째는 그 심원고고한 불교철학 때문으로, 유학계열에서 가장 높은 차원의 철학경지에 도달한 성리학조차 불교에서 상당 부분 그 액시옴을 빌어와야 할 정도로 불교철학은 수준이 높았다. 따라서 일본 역시 폐불.. 2024. 9. 8. 삼정문란은 19세기 위기 원인인가 결과인가 흔히 한국사의 19세기는 위기의 세기로 쓰고, 그 위기의 징후로 삼정문란을 든다. 그런데-. 삼정문란이라는 건 위기의 원인이 아니고 위기가 만든 현상에 불과하다. 이전까지 견고하게 유지되던 전근대적 사회가 붕괴하기 시작하면 당연히 삼정이야 문란해지겠지 그러면 온전히 유지되겠는가. 우리보다 훨씬 견고하게 유지되던 에도막부 사회조차 종말기에 이르면 막번체제에 의한 직역제한에서 이탈하여 사무라이 흉내내는 농민이 수두룩했다. 삼정문란은 19세기 위기의 이유가 아니고 어찌보면 이전 시대가 무너지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징후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19세기는 우리 인식처럼 어둡고 문란하고 퇴행적 세기가 아니라 앙샹레짐이 무너지기 시작한 활기찬 시기였을 수도 있다. 19세기 말 그 움직임이 결국 식민지화로 이어지.. 2024. 9. 8. 가장 빛났던 16세기 조선 성리학 필자가 보건데 조선 성리학이 정점에 이른 시기는 16세기다. 사화로 많은 선비들이 죽고 주자학에 대한 이해가 깊어가던 무렵으로 중국주자학과는 또 다른 조선성리학의 특색이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하던 무렵-. 일본주자학은 이 시기 주자학의 직접적 후예라고 보아도 된다고 보며 이 시기를 정점으로 이후의 조선성리학은 나라가 망할 때까지 했던 이야기의 변주곡에 지나지 않았다고 본다.에도시대의 학문은 1700년이 넘어서면서 조선을 완전히 추월했는데 여기에 난학이 더해지면서 메이지유신 전야가 되면 비교 불가능한 수준까지 그 차이가 벌어졌다. 이 학문의 수준 차이가 20세기까지도 내내 유지되었으며21세기 현재 그 차이가 많이 좁혀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완전히 극복되었다고 할 수 없다. 2024. 9. 8. 이전 1 ··· 96 97 98 99 100 10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