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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는 아파트 짓듯이 과감히 개발해야 한다 자연이라는 이름을 앞세워 그 보존을 외치는 사람들은 거의가 본능에 가찹게 무엇을 인위로 설치하는 일을 극렬히 혐오한다. 경북 의성의 이른바 조문국 사적지...이곳엔 신라시대 이른바 고총고분이 밀집한다. 이 고분군에서 내가 매양 찬탄해마지 않는 것이 저 정자다. 저 정자가, 인위로 풍광을 훼손한 저 정자가불룩한 봉분 만이 떼를 이루는 공동묘지 전체 풍광의 면모를 일신한다. 개발할 것은 개발해야 하고, 세울 것은 세워야 한다. (2015. 8. 29) *** 무지한 문화재청과 그 주변 문화재위원입네 얼쩡하는 전문가연 하는 놈들은 생득으로 이른바 사적 같은 데다 무엇인가 세우거나 뜯고자 하면, 밑도끝도 없는 원형 타령, 경관 훼손을 앞세워 막고 본다. 문화재는 개발을 해서 망하는 것이 아니라 개발을 못하.. 2024. 1. 26.
삼피에트리니sampietrini, 21세기 대한민국을 침공한 로마 로마 특유하는 보도블럭 삼피에트리니를 한국에 적용한 사례를 더러 보는데 국내서도 이 디자인을 혹닉하는 건축가가 있다. 그가 보기에도 천편일률하는 아스팔트 바닥을 증오해서 이리 한 모양인데 그것을 보거나 경험하는 사람들 반응은 어떤지 모르겠다. 로마에서는 16세기에 등장해 18세기에 보편화하는 이 전통은 지금. 로마에서는 철거하느냐를 두고 내내 논란이 되거니와 그런 디자인이 느닷없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부활하고 있으니 좀 기분이 묘하다. 유의할 점은 명백히 로마의 그것을 우라까이 했음이 분명하지만 예서는 이른바 현지화라 이를 만한 변형이 관찰되는 대목이어니와 첨부 앞 사진 김포 어느 지역 보도블럭이 그렇다. 한데.. 같은 지역에서 로마 원단 산피에트리니도 짬뽕해서 나타난다. 의도가 뭘까? 그냥 심심해서?.. 2024. 1. 26.
신하들을 데려다 가르친 영조와 정조 사실 영조와 정조가 신하들을 데려다 가르칠 만한 수준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필자 생각에는 이 양반들은 세종 정도 수준은 안 되는 양반들로 본다. 부지런하고 영명한 사람들임은 분명하지만. 숙종 때는 그렇다 치고, 영조와 정조는 많은 부분이 닮았는데 특히 신하들을 데려다 가르치고 말이 경연이지 경연때는 신하들한테는 대충 묻고 자기가 가르치는 것이 태반이었고 책을 낼 때마다 서문을 갖다 붙였는데 전부 도통道統 상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자임한 것이 태반이었다고 본다. 정조가 그 정도가 좀 심했기 때문에 영조는 상대적으로 좀 덜 부각되는 측면이 있는데 이 양반도 만만찮은 양반이었다. 따지고 보면 숙종, 영조, 정조의 이러한 성정은 필자가 보기엔 전부 숙종의 모후인 명성왕후 (명성황후가 아니다, .. 2024. 1. 26.
영감님들 지하철 영감님들 지하철 무임 승차문제로 말들이 많은데, 결론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의학계에서도 논의가 좀 있었던 걸로 아는데 간단히 요약하면 지하철 무임승차로 그 분들이 좀 걸어다니고 운동하게 하는 것이 사회전체적으로 볼 때 의료비 부담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노인들은 움직이지 않으면 병치레로 범벅이 된다. 차라리 전철을 타고 어딘가를 놀러도 갔다 오고 움직이게 해드리는 것이 의료비 부담을 줄이는데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그 양반들이 전철비 때문에 집에 틀어박혀 있으면 사회적 경비가 절감될 것 같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이 문제는 지금보다 무임승차 개시 연령을 좀 올리고 (개인적으로는 65는 좀 빠르다고 본다), 러시아워 시간에는 무임승차를 막는 등 개선책은 필요하겠지만 노인.. 2024. 1. 26.
서인 세계관보다 더 문제인 황극론 흔히 18세기 집정 서인 세계관의 대척점으로 숙종-영조-정조대의 황극론을 세우는데, 이 황극론에서 탕평책이 나왔으므로 함께 이해하여 서술한다. 황극론은 흔히 정조를 지목하지만 그 사상적 연원을 따지고 보면 숙종 이후 정조 때까지 이 대가 쎈 군주 세 명의 치세에 서서히 발전하여 정조 임금 때 최종 완성되었다고 해도 좋다. 이 흐름의 이해에 있어 숙종과 영조도 자유롭지 않다는 말이다. 숙종, 영조 치세에 보면 정조 때의 사상적 흐름의 단초는 이미 충분히 많이 보이고 있어 정조 때에 완성된 황극론의 흐름에는 그 상류에 숙종과 영조가 당연히 포진하고 있다. 이 주장을 옹호하는 입장에 따르면 정조는 정약용 등으로 대표되는 남인과 연대하여 소위 근대적 맹아를 옹호하는 입장이었다는 것인데, 전혀 동의할 수 없다. .. 2024. 1. 26.
눈가리고 아옹? 돌절구에다 자기 표식을 단 소심한 권오영 몽촌토성 출토 돌절구로 서울대박물관 고고실 상설전시품 중 하나다. 저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붙었다. 돌절구 석구石臼 stone mortar 몽촌토성과 풍납토성에서는 작은 돌절구가 여러 점 확인되었습니다. 크기로 보아 이것으로 식재료를 가공했다기보다는 차를 보관하거나[茶甁] 약재를 빻는 데 사용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중국제 주전자, 청자 사발 등과 함께 출토된다는 점에서 중국에서 들어온 차 문화와 관련된 유물로 보기도 합니다. 저런 설명은 권오씨가 관장으로 오기 전에는 없었다. 그러니 저 팻말은 권오씨 의도가 짙게 반영된 그의 작품이다. 왜? 아마 선생질하신지 35년 정도 되었을 권오영은 동아대와 한신대를 발판삼아 지방을 떠돌다 서울대 국사학과로 전직하고는 박물관장까지 냉큼 먹어버렸는데 일찍이 역사학으.. 2024.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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