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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설고고학] 고고학은 인기가 없다! 고고학이 냉혹하게 인정해야 하는 대목이 바로 이것이다. 바로 이에서 괴리가 일어난다. 일반대중도 고고학에 열광할 것이라는 믿음, 하지만 이는 개소리라, 아무도 고고학을 찾지 않는다.왜? 절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고학을 몰라도 내가 살아가는 데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하지만 이 고고학주의자들을 만나 이야기 나눠보면, 스스로 열광한다. 그러면서 이르기를 한 번 빠지면 헤어날 줄 모르리라 확신한다.하지만 개소리다. 고고학? 인기 없다. 어느 정도 없는가? 눈꼽 만큼도 없다. 아무도 고고학을 찾지 않는다.고고학이 인기 있을 것이라는 믿음, 그에 열광할 것이라는 생각은 언어도단이며, 현실에 대한 치지도외다. 고고학이 인기가 없음을 인식하는 것과 하지 못하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반딧불과 번갯불 .. 2024. 3. 4.
서태후, AI가 되살린 권력의 화신 본방인지 재방인지는 모르겠으나 마침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서태후西太后를 소재로 다루는지라 그의 사진 혹은 그림이라 해서 돌아다니는 것들을 ai로 증폭해 봤다. 2024. 3. 4.
보음부이寶音夫而 폼페이를 읊은 박영철의 한시 박영철(朴榮喆, 1879-1939) 十萬人居都會地, 십만 명 살았던 도회지에 噴灰埋沒二千年. 화산재 뿜어 2천년 동안 잠겼네. 掘來物物多精巧, 발굴하니 문물 모두 정교한데 古代文明始可傳. 고대 문명 비로소 전해졌다네. ≪구주음초歐洲吟草≫(1928) *** 중문학도 조성환 선생이 소개한 것인데 전재한다. 저 폼페이는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이 올림픽을 끝내고 귀환하면서 쓴 기행문도 있다. 이로 보아 이미 식민지시대에 가 볼 만한 데로 꼽혔음을 본다. 2024. 3. 4.
현대의 장례 부의품목이 왜 중요한가? 경북 경산 하양읍 부호1리 하양허씨 집안에서 경산시립박물관에 기증한 광복 이후 현대기 부의기賦儀記다. 장례에 즈음해 누가 어떤 물품 혹은 돈을 냈는지를 기록한 문서다. 이 문서가 왜 중요한가? 이 패턴이 실상 역사를 통괄하는 까닭이다. 마왕퇴 한묘漢墓 출토 이른바 목패木牌라 하는 것이 바로 저와 같은 부의품 물목이며 익산 미륵사 석탑 출토 공양품에도 이 부의품목이 보인다. 금덩이리 같은 데를 보면 누가 시주한 것인지가 드러난다. 내가 매양 무덤고고학 불교공양고고학을 논할 때 저 부의품을 주시하라 그리 목청을 높이는 까닭이 있다. 부곽? 그거 부의품목이라고 그리 강조한다. 고고학이 과거를 대상으로 삼는다? 고고학은 현대학이요 당대학이며 미래학이다. 과거의 진실을 찾아? 오만이다. 현대의 탐구요 미래의 탐구.. 2024. 3. 4.
의학이, 생명과학이 인문학과 합일할 수 있을까 그런 부분이 가능 하다면 필자에게 남은 15년 남짓의 정신적 생산활동을 이런 쪽에 기울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2024. 3. 4.
조선침략에 집안을 날려 먹은 히데요시 히데요시가 말년에 조선을 쳐들어가지 않았다면 일본사 향배는 알 수 없다.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할 때 이에야스를 끼우지 않은 것은 히데요시의 이에야스 정벌 때 이에야스에게 치명적 일격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 일격이 참으로 매서운 것으로 히데요시는 어찌어찌하여 이 전쟁을 승리로 마무리 하기는 했는데 그 이후 죽을 때까지 이에야스 눈치를 봤다. 그 자신 관백으로 올라가 있을 때도 이에야스를 포섭하기 위해 심지어는 자신의 어머니까지 인질을 보내고 친동생을 이혼시켜 이에야스의 정실 부인으로 보낼 정도였고, 조선침략 때도 결국 히데요시는 이에야스를 믿지 못해 이에야스 없이 조선정벌을 감행했다. 히데요시로서는, 조선정벌을 성공했거나, 그게 아니면 조선을 쳐들어가지 않거나 둘 중의 하나만 했더라도 아마 집안은 계속 .. 2024.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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