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3212 영국식민지 몰타의 유산 어제 공항에서 내려 발레타 숙소로 오는 길에 이십여분 정도 옆자리 앉은 할매랑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연세는 대략 70어간이라 몇살로 보이냐기에 fifty? I am sorry forty 라 했더니 파안대소 하며 너무 좋아하시는데 헤어지고 나서는 thirty라 할 것을 후회막급이었다. 영어가 유창했다. 그래서 마더 랭귀지가 영어냐 했더니 아니랜다. 국적이 어디냐 했더니 Maltese 라 했다. 좀 수상해서 그제야 위키로 들어가서 몰타를 검색했더니 몰타는 몰타 국어가 따로 있다 했다. 그제야 이해를 했다. 이곳 원주민들은 외모가 남태평양 사람들이랑 비슷했다. 착종 혹은 혼혈이 된 듯한 그런 느낌을 준다. 나이를 여쭈니 곧 칠십이라 하는데 젊은시절 런던에서 보냈단다. 그럼 영국 식민지 시절에 태어났겠다 했.. 2023. 11. 29. 눈부신 지상낙원 몰타의 찬란한 고통 대서양 정중앙을 코딱지 만하게 정좌한 몰타Malta 는 지도를 보면 왜 이곳을 유사 이래 권력이 애지중지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절감한거니와 저런 요충을 어찌 방기한단 말인가? 나랑은 전연 인연이 없을 듯한 이곳을 우연히 밟게 되었으니 내가 마주한 몰타는 지상낙원 딱 그것이었다. 내가 매양 하는 말 중 하나가 진짜로 아름다운 곳을 보면 자살충동을 일으킨다고 했거니와 내가 마주한 몰타는 그것을 배신하고선 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곳이다. 다만 잊어서는 안 되는 대목은 지금은 아름답기 짝이 없는 이곳이 무수한 희생을 딛고선 오늘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지금 내 눈에 지상낙원으로 비친 이곳이 훗날 언젠가는 과거에 그랬듯이 다시 피비린내나는 전장터로 변할 날이 있으라는 암울한 전조이기도 하다. 이곳을 점령하는 이.. 2023. 11. 29. 유럽을 조금 더 깊이 보는 수단, 로마 숫자 읽기 유럽여행을 하다 보면 수많은 조각상과 수많은 건축물을 만나게 된다. 언제 지어진 것인지 매번 검색해 보기도 귀찮고, 그렇다고 모든 정보를 공부하고 가기엔 슬프게도 이미 머리가 굳어버린 지금의 우리를 위해 로마 숫자 읽는 법을 소개한다. 이것만 알아도 해당 유산과 관련된 연도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정보’라 함은 꼭 만든 해만 의미하는건 아니고, 중요한 새겨넣음이 있었던 해 일수도 있다.) MCCCCLXX Ⅲ이 3인 것과, V가 5인 것은 벽걸이 시계나 손목시계를 통해 익히 접했을 것이다. 여러 변형도 있으나, 문화유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본적인 것만 간단히 나열하면, F : 5000 (문화유산에서 볼 일은 거의 없다) / 5000년전에 로마 숫자로 새긴 게 없으니까. M : .. 2023. 11. 29. [어슬렁 몰타] 발레타 성을 들어가다 이곳을 소개한 친구가 세계유산 마크 앞에서 인증샷 찍으라 해서 그대로 했다. 등재년도가 1980년. 우리는 당시 세계유산을 모른 때다. 이 제도 시행 이듬해 몰타는 냉큼 등재했다. 굉장히 대응이 빨랐다. 이질하는 듯하나 성채는 다 통한다. 해자를 깊게 팠다. 마른해자인지 물채움이었는지는 지금은 단안 나는 못한다. 성문은 옹성 구조인데 우리랑 구조가 다른듯하나 뭐가 달라? 똑같다. 귀퉁이마다 망루를 세운 점도 같다. 2023. 11. 28. 몰타에 입성하며 로마서 암거한다니 몇몇 분이 말타 인지 몰타 함 가보라 추천하는데 파리 다녀오고선 마뜩한 소일거리가 없어 질러 버렸다. 피우미치노공항에서 한 시간 15분 정도 날으니 내려주는데 천상 우리네 제주도 같은 곳이라 오랜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한 이 지중해 시칠리아 남쪽 망망대해 섬나라는 제주도 육분지 일 크기며 주섬을 중심으로 주변 크고작은 섬 여섯개로 구성하거니와 이 나라가 우리한테는 축구 개박살 단골이라 얼마전에도 북중미 월드컵축구 예선전에서 프랑스한테 십이대빵으로 발렸다는 소식이 있으니 휴양지로 이름 난 곳이라 해서 찾았지만 문명 첨단을 구가했으니 그리스 로마가 가만둘 수 없는 교통의 요충이라 이런 지정학적 중요성은 이차대전 격전지라는 데서도 증명하고 남음이 있다. 내리면서 보니 지도 모양 그대로라 이는 .. 2023. 11. 28. 고려시대에 군인전은 왜 필요했을까 앞에도 썼지만, 고려시대의 전시과제도와 조선시대의 과전법은 매우 유사해 보이지만, 가장 큰 차이가 바로 전자의 경우 군인전이 있다는 것이다. 군인전이 왜 따로 필요했을까? 조선시대에는 군인전은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군인은 병농일치로 군역을 지는 일반 백성으로 병사를 채우고 장교들은 과전법체제하에서 관리들에게 분급하는 토지로 녹봉을 충당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고려전기의 군인전은 직업군인에게 분급한 토지인데 문제는 이 군인전은 전시과제도에서는 아주 간단하여 별것 아닌 거 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계산해 보면 군인전에 속하는 토지의 규모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군인전으로 지급되는 토지가 일반 하급관료 수준이었던 데다가 군인전을 받는 군인의 수를 여기에 곱하면 무려 백만결에 육박한다는 계산도 있다. 이 군인전의.. 2023. 11. 28. 이전 1 ··· 1665 1666 1667 1668 1669 1670 1671 ··· 3869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