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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 논문 쓰느라 날 샌 조선시대 조선시대에 한문 읽는 건 둘째 치고 한문으로 글 짓고 동문선 백 이십 몇 권을 쉽게 보는 것을 많이 보는데, 필자가 보기엔 우리나라는 한문 때문에 나라 망했다. 한문 익히고 쓰는 그 노력의 10분의 1만 국문에 신경 쓸 겨를이 있었으면 우리나라는 지금보다 100배는 많은 인문적 자산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21세기에도 SCI 논문 한 편 쓰려면 머리털 다 빠지는데 조선시대에 한문으로 글 짓고 시 쓰고 동문선에 왕조실록에 고려사 도대체 왜 그렇게 한문에 집착해야만 했을까? 딴 거 없고, 과거제 때문이다. 과거제의 시험과목이 딱 정해지면 식자층은 거기서 한 걸음도 벗어날 수 없다. 조선시대 내내 사림들은 과거제의 폐단을 지적했지만 문과는 고사하고 사마시라도 붙으려면 과거 시험 공부를 안 하면 어쩔 건데? 젊.. 2024. 3. 5.
심곡서원과 친일파 한규복(韓圭復) 정암 조광조 선생을 모신 심곡서원(深谷書院)은 1985년, 1992년 두 차례 소장 전적을 도난당해서 남아 있는 자료가 많지 않다. 그렇지만 심곡서원 강당 안에는 송시열이 찬한 1673년 강당기(講堂記), 1730년 숙종대왕 어제(肅宗大王 御製), 도암 이재(李縡, 1680~1746)가 원장으로 취임하여 제정한 1747년 심곡서원 본원 학규(本院 學規) 등 심곡서원의 역사를 알 수 있는 편액들이 남아 있다. 이 가운데 1931년과 1933년 심곡서원 중건 당시를 기록한 중건 상량문 편액과 조광조 선생이 심었다고 전해지는 은행나무를 소재로 지은 한시 ‘행수가(杏樹歌)’ 편액이 남아 있는데, 찬자는 한규복(韓圭復, 1881~1967)이란 사람이다. 한규복은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친일반민족행위자 중 한 사람이다.. 2024. 3. 5.
문명의 구조 문명은 다양한 사회적 구조 위에서 피어난다. 한국과 일본-. 임란 이전 상황을 보면 이렇다. 한국: 목판인쇄물이 다량 나오며 과거제가 11세기 이후 계속된다. 한문의 이해와 그 배경 사상에 익숙한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 문제는 이런 식자층 외에는 문자 그대로 그 외에는 까막눈. 이번에는 일본: 목판인쇄물의 기원은 헤이안시대까지 올라가지만, 한국만큼 보편화하지는 못했다. 책은 대부분 필사본이다. 인쇄본은 중국이나 한국에서 인쇄된 것이 많다. 심지어는 칙찬서도 필사본이다. 무가정권 이후 한문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다. 심지어는 스승을 자처하는 이들도 한문을 쭉쭉 읽어내려가는 이들이 드물다. 한문에 대한 이해가 있는 사람들은 공경 아니면 스님으로 숫자가 많지는 않다. 그런데... 15세기 조선의 기록을 보면.. 2024. 3. 5.
[독설고고학] 과학으로 재편해야 작금 고고학, 특히 한국고고학에 시급히 필요한 것은 고고학의 과학으로의 재편이다. 내가 생각하는 고고학은 자연과학이다. 물론 그 자연과학은 인문학이라는 외피를 걸쳐야 한다. 이른바 문질빈빈文質彬彬이라 해서 외양이라는 文, 바탕이라는 과학이 버무려져야 한다. 현실은 어떠한가? 내가 보는 한 한국고고학은 文과 質이 따로 논다. 둘간 합종연횡이 만만치 않다 하나 여전히 전자는 과학을 팽개친 채 무늬 외양으로만 달려가서 글쓴 놈 혼자만 알아보는 각종 무수한 양식변화표를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일로 발전했고, 흔히 보존과학이라는 후자는 그 고고학의 도구로만 전락해 첫재 그 분석결과치라 해서 기계가 내놓는 수치를 무미건조하게 표로 만들어서는 고고학이 먹으라 던져주거나 아니면 해진 물건 수리하는 세공업자 그 이.. 2024. 3. 5.
노인과 어린이들을 총알받이로 내세운 거란 드라마 고려거란전쟁 흥화진 전투 한 장면이었다고 기억하는데, 양규가 고군분투하는 흥화진 공략을 위해 거란군이 포로로 잡은 고려 노인과 어린아이들을 앞세우고서는 성벽을 기어오르게 하는 장면이 있었으니, 이를 두고선 작가 상상력 운위하겠지만 놀랍게도 이것이 실은 거란 실제 전투 전법 중 하나였다. 요사遼史 중 병위지兵衛志는 글자 그대로 거란의 군사조직과 그 운용방식을 정리한 대목이라, 개중 권34 지志 제4 병위지 상兵衛志上을 보면 그네가 전쟁을 하는 방식이 잘 소개되어 있는데 개중 한 대목이 이렇다. 그(거란) 타초곡 집안 병사들[打草穀家丁]이 의갑衣甲을 갖추고 병기를 들고서 둥글에 부대를 이루는데 모름지기 먼저 윈림園林을 베고난 뒤에 노인과 어린이들을 잡아다가 흙과 나무를 달라서는 호참壕塹(해자)를 메우.. 2024. 3. 5.
[박물관 현황과 연혁] 공립박물관 탄생의 전형의 보여주는 경산시립박물관 이 경산시립박물관은 박물관이라는 이름을 간판에 내걸지 아니하나 박물관으로 등록한 삼성현역사문화관, 그리고 조만간 선을 뵐 임당동유적전시관과 더불어 경북 경산시가 운영 주체인 3개 공립박물관 중 가장 먼저 생겨났다. 그것이 출범하는 내력은 아래에서 보듯이 공립박물관이 탄생하는 전형을 보여준다. 곧, 우리 고장에는 왜 우리 고장을 선전 홍보할 박물관이 왜 없을까? 있어야지 않을까? 그럼 만들자! 해서 등장했으니, 이것이 실은 한국 공립박물관이 탄생한 제1의 비결이다. 다만 경산의 경우, 대도시 대구와 인접한 데서 그 위성도시 느낌도 나는 데다 문제는 신라 천년 고도 경주가 가깝다는 사실은 여러 모로 무엇으로써 경산의 정체성을 특징지을 것인가 하는 고민을 돌발하기 마련이다. 이 숨통을 터준 데가 1996년 임.. 2024.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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