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3268

요즘의 고민 2: 어떤 도록을 만들어야 할까 ‘전시가 끝나더라도 도록은 남는다.’라는 말을 일하면서 몇 번이나 들었다. 이 말 그대로, 학예사에게 도록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요즘은 전시가 끝나도 VR로 전시를 볼 수 있지만 모든 전시가 VR로 기록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여전히 전시 이후에도 그 전시가 궁금하다면 도록을 펼쳐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도록은 남는다.’는 말은 말 그대로 전시의 전반적인 것을 전시가 끝나도 도록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무게 때문인지, 전시만큼 도록에 신경을 많이 쓰는 학예사들도 있다. 다양한 도록들 도록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유물의 사진을 위주로 싣는 도록이 있는가 하면, 각종 도표와 설명글이 들어간 도록 등등. 그래도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유물의 사진이 크게 실리고, 뒷면에 전문가의 글이 실리는 것이다... 2023. 8. 19.
계획도시 한양 Hanyang as Planned City 계획도시 한양 한양은 10만 명의 주민이 거주할 수 있도록 건설된 계획도시였습니다. 왕실과 전혀 연고가 없는 수도였던 한양은 처음부터 모든 기반 시설을 계획하여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때 고려한 것이 유교적 전통과 풍수지리였습니다. 유교적 전통에서 도읍을 건설할 때 중시된 것은 왕이 거주하는 궁궐, 종묘·사직과 같은 제사 시설, 관청 그리고 백성들이 상품을 거래하는 시장입니다. 유교 경전인 『주례周禮』 「고공기考工記」에는 ‘좌조우사左祖右社 면조후시面朝後市’라는 중국 고대의 도읍 건설 원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한양의 도시공간은 『주례』의 원칙과 함께 고려시대에 유행했던 풍수지리 사상이 함께 적용되어 건설되었습니다. 경복궁은 국도풍수國都風水에서 한양 명당의 지맥이 흐르는 백악산 아래에 건설되었고, 종묘와 사.. 2023. 8. 19.
조선시대의 서울, 500년 왕도를 세우다 Establishing Joseon Capital  조선시대의 서울, 500년 왕도를 세우다 “이제 이 땅의 형세를 보니 왕도를 삼을 만하다. 더욱이 조운漕運이 통하고 전국에서 거리도 균등하니 사람들이 사는 일에도 편리한 바가 있으리라.” 1394년(태조 3) 8월, 태조가 한양을 왕도로 삼고 한 말입니다. 이내 종묘·사직과 궁궐이 들어서니 비로소 임금의 교화敎化와 정령政令이 나가며, 왕도로서의 면모를 갖추었습니다. 조선의 서울 한양으로 전국의 물산이 모여들었다 다시 흩어지고, 육로를 따라 갖가지 물품을 실은 말과 수레, 물길을 따라서는 배들이 모여들면서 한양은 조선 경제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중국·일본·만주·유구에서 오는 사신들을 맞이하고, 또 그곳으로 사신들을 보내는 곳 역시 한양이었습니다. 외국의 물품이 한양으로 들어왔고, 조선의 물품이 한양에.. 2023. 8. 19.
한양의 조선시대 판문板門 Plank Door from Joseon period 한양의 판문 조선시대 주택가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낸 서울 종로 청진지구 발굴조사는 조선의 폼페이라고 말할 정도로 많은 유물이 잘 남아 있었죠. 운종가 시전 뒤편 주택가에서 출토된 수많은 유물을 통해 당시 한양 사람들의 실생활 모습을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곳에 전시된 판문板門도 청진동 도심 재개발부지 발굴과정에서 출토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발굴된 것으로는 가장 오래된 판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00년 넘게 땅 속에 묻혀 있었던 이 판문은 발굴 당시 앞면이 심하게 불탄 채 집 안쪽으로 넘어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아마도 16세기 어느 날 청진동 주택가에서 전란이나 사고로 큰 화재가 일어나 불에 탄 것으로 보입니다. 두 개의 두꺼운 소나무 판을 잇대어 만든 이 판문은 대문 옆에 나란히 세운 보조문으로.. 2023. 8. 19.
볼모 신세 청와대 불상은 울분한다 환지본처가 그리 중요하다면 이 부처님도 당연히 본래 있던 경주로 가야지 않는가? 함에도 그냥 저 자리 볼모로 있으라 한다. 누가? 대한불교계종이 그러라 부처님한테 명령한다. 그람서 지들은 열암곡 자빠진 불상 바로 세우라 난리블루스를 추어댄다. 이게 불교니? 이게 승려니? 사진들은 모두 오세윤 작가 촬영이다. 2023. 8. 19.
농민과 아시가루足輕 출신의 신센구미新選組 막말 쿄토를 피로 물들인 신센구미新選組(しんせんぐみ)라는 집단이 있다. 이 집단은 원래 막부가 막말 쿄토의 반막부 세력을 제압하고자 후원한 청부경찰조직 같은 것이었는데 20세기 후반들어 다수 소설가와 만화가가 이야기에 자꾸 살을 붙여 지금은 거의 사상 최강의 사무라이 집단, 사무라이 정신을 구현한 무사단 정도의 평가까지 받고 있는 듯하다. 최근에는 젊은층에 인기있는 애니 등에도 다수 이들 이야기가 다루어지고 있어 그 인기는 당분간 더 지속될 모양이다. 신센구미는 총인원 200여명 정도로 군대식 조직이 되어 있었는데 이 신센구미에서도 특히 유명한 인물은 다음 정도이다. 곤도 이사미 近藤勇 (こんどう いさみ, 1834~1868) 사이토 하지메 斎藤一 (1844~1915) 히지카타 토시조 土方歳三 (1835~.. 2023. 8. 19.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