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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렁슬렁 자발 백수 유람기] (51) 라틴어권의 영어 같은 유럽이라 해도 영어 친숙도가 문화권별로 극도로 갈리는데 이태리 프랑스 스페인 이른바 라틴어권은 거의 깡통수준이라 한국 일본사회의 그것과 비슷하다 보아 대과가 없다. 물론 외국 관광객 내방이 많은 지점 종사자들이야 사정이 다르지만 이 범위만 벗어나면 깡통이라 보면 된다. 반면 독일이나 북구권은 초동급부까지 영어가 졸라 유창하다. 언뜻 네이티브 영어 스피커가 아닌가 할 정도다. 왜 이런 대비가 일어날까 생각해보면 결국은 뿌리 문제로 귀착하는데 영어는 실은 독일어라는 사실이 곧잘 망각되곤 한다. 영어는 독일어에서 갈라져 나왔다. 반면 라틴어는 저와는 계통이 완전히 다르다. 견주건대 영어와 독일어는 한국어와 일본어 관계인 반면 영어와 라틴어는 한국어와 중국어만큼이나 이질적이다. 한데 신기한 건 의사소통. .. 2023. 11. 20.
사군육진 개척을 둘러싼 의문 사군육진은 위도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높다. 사군 육진은 홋카이도 남부지역과 위도가 같다. 세종 때 이 지역에 사민이 이루어진 것은 여러모로 의문스러운 점이 많다. 우선 도대체 뭘 먹고 살았을까? 일본사에서도 15세기에는 저 위도까지 올라가지를 못하고 있었다. 특히 두만강 연안의 사민정책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고 유지되었는지, 도대체 뭘 먹고 살았는지 밝혀진 것이 너무 없다. 거듭 이야기 했지만 북방 사민은 그냥 올라가서 지킨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일본사에서 북해도까지 올라가 개척을 한 시대는 메이지유신 이후에야 본격화하는데 이 당시 북해도에 심을 적당한 종자가 없어 개척농민들은 크게 고생을 했다. 일본 동북지역은 19세기 초중반까지도 만성적인 흉년에 시달렸는데 결국 그 이유는 벼농사가 안정적이지.. 2023. 11. 20.
거지 로마의 미스터리 로마는 그 명성과는 달리 거지다. 실제로도 거지라 툭하면 북쪽에다 손을 벌린다. 이것이 미스터리다. 도시별 관광객 숫자 통계 수치가 있을 텐데 로마야 파리 바르셀로나와 어깨를 견주거나 그에 버금하지 않겠는가? 이리도 관광객이 쏟아져들어오는데도 왜 로마는 거지인가? 부패 때문일가? 조폭 때문일까? 모르겠다. 이태리는 남북 문제가 심각하다 하는데 로마보다 남쪽 나폴리는 같은 대도시지만 이보다 더 거지 슬럼도시라 김민재가 1년만에 왜 뮌헨으로 떠났는지 알겠더라. 마누라가 그 더러움을 참지 못했을 것이다. 그 등살 못이겨 냅다 튀었으리라. 2023. 11. 19.
[슬렁슬렁 자발 백수 유람기] (50) 계란 빵쪼가리 주워 담는 이유 늙어보니 알겠더라 그래 지금 나보다 늙은 사람들아 쿠사리 찐밥 먹여 미안하외다. 특히 아줌씨 할매들 해외 나가셔서 아침 식사 더불어 빵쪼가리 계란 밀감 사과 바리바리 주서담아 나오시는 모습 심히 꼴불견이었고 제발 코리언 가오상하니 그런 짓 좀 그만하라고 욕 되바가지 했던 일 잘못했소이다. 늙어보니 알겠더이다. 다니다 보마 배가 그리 고푸고 그때야 저 빵쪼가리 고마운 줄 알겠더이다. 그랬소 나도 따라해봤소. 에르콜라노 들어서기 전 호텔 나서며 계란은 두 개, 빵쪼가리도 두 개 쌔벼 나왔다오. 두 시간 흘러 배가 뒤지도록 고프더이다. 꺼내먹었소. 꿀맛이었소. 이젠 알았소. 고맙소. https://youtu.be/yIaD_cb40Q8?si=GtBsvAW2Qmh-YHu- 2023. 11. 19.
이규경《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가 유전한 내력과 군밤장수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가 최초로 발견된 때는, 말하는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어떤 이는 1910년대, 어떤 이는 1920년 중반, 어떤 이는 1930년대라고 한다. 육당 최남선(崔南善)이 설립한 조선광문회가 당시 고문헌을 수집할 때 권보상(權輔相)이란 사람이 광교(廣橋)근처 군밤장수로부터 입수했다고 전한다. 확인해 보니, 1918년 12월 17일 신문에 《五洲衍文》을 설명하고 내용을 인용한 것이 보인다. 이규경의 초고본은 육이오에 불탔지만, 규장각에 필사본이 두 종이 있고, 국립중앙도서관에 필사본 한 본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본은 언제 필사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규장각본 보다 정확하다. 이규경 친필본 《오주서종五洲書種》이 고려대 도서관에 있는 것을 보면 군밤장수 이야기는 너무도 극.. 2023. 11. 19.
젊은 소정小亭, 폭포를 그리다 근대 한국화단에는 숱한 화가가 있었다. 하지만 그 가운데 그림솜씨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이는 적고, 또 그 중에서도 처신을 흠잡을 구석이 드문 분은 더욱 적다. 그 적은 사례 중 한 분이 바로 소정 변관식(1899-1976)이다. 오원 장승업(1843-1897)의 제자뻘인 소림 조석진(1853-1920)의 외손으로 태어난 그는,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총독부 공업전습소工業傳習所 도기과陶器科에 입학해 도자기 만드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이를 마친 뒤엔 외할아버지가 간여하던 서화미술회에 드나들며 그림을 배운다. 1920-30년대 변관식은 서화협회전, 조선미술전람회에 여러 차례 작품을 내는데,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두 차례 특선을 거두면서 기량을 널리 인정받는다. 1925년부터 4년간은 일본에 건너가 고무로 스이.. 2023.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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