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0065 사로가 곧 신라지 어찌 모태란 말인가 고고학이나 역사학에서 흔히 하는 말 중 하나가 기원전 1세기 이래 3세기 중후반 이전 신라 흔적이 나왔다고만 하면 사로국 운운하며 그것이 신라의 모태라 하는 작태라 나 역시 한때는 아무 문제의식 없이 그런 말을 쓴 적 있는 듯하며 언론에서도 그리 흔히 쓰기도 한다. 심지어 고고학에선 어디서 그런 쓰레기를 주어왔는지 모르겠지만 원삼국이란 개떡 같은 말을 버젓이 쓴다. 쓰면서도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 외려 자랑스러워한다. 저 말 개소리다. 고려왕조를 일러 태조 이래 현종까지를 고려 왕조 모태라 하며 조선왕조를 일러 원심 분리하고는 태조 이래 성종까지를 조선왕조 모태라 하던가? 말도 안 되는 헛소리 잔치다. 왜 사로가 신라의 모태란 말인가? 신라일 뿐이다. 물론 그것이 국호 변동에 따른 단순 구분이라 한다면야.. 2024. 10. 4. 비단을 생산하고 소비하고 유통한 마한 후한서나 삼국지가 그리는 3세기 중후반 이전 삼한 사회를 다름 아닌 역사학도나 고고학도들이 바로보는 관점을 어찌 일률로 논하겠느냐마는 나는 원시미개주의 그 짙은 그림자를 본다. 간단히 말해 제대로 된 국가 체계, 이른바 중앙집권적 통제 질서가 확립되지 아니했다는 관점이 널리 분포하는데 이는 이 시점, 그러니깐 3세기 중후반을 기점으로 삼아 이후 신라와 백제를 제대로 된 국가 혹은 왕조로 보려 한다는 점에서 내 판단은 유효하다가 본다. 더 간단히 말해 3세기 중후반 이전 신라 백제는 국가다운 국가, 왕조다운 왕조도 아니요 동네 꼬꼬마 대장 같은 그런 존재로 본다는 뜻이다. 이 삼한 사회가 그리 간단한가? 역사학이나 고고학은 허심하게 넘기는 대목으로 양잠이 있다. 마한 사람들은 농사와 양잠을 할 줄을 알며,.. 2024. 10. 4. 용미리 부처님 독대를 신청하며 각중에 기돗발이 필요해서 기돗발 센 곳으로 주말은 행차하려 한다. 2011년 혹은 2012년 무렵 찾았을 때라고 기억한다. 물론 이 파주 용미리 석불은 수시로 다니곤 했다. 첫째 내가 필요해서 둘째 수도권 가차운 곳에서 보여줄 만한 곳이라 해서 그렇게 해서 다니곤 했다. 그러고 보니 저 부처님 용안 뵌 지 오래라 느닷없이 뵙고 싶다. 이 부처님 보다시피 사람다운 냄새 물씬해서 더욱 좋다. 부처님이라 해서 저쪽 간다라처럼 빼빼로여야겠으며 아니면 통말고려처럼 풍만하거나 펭귄 다리여야 하겠는가? 또 시대 추세에도 맞는 부처님 아니겠는가? God 부처님이니 말이다. *** 근자 현장을 다녀온 지인에 의하면 그 아래 용암사라는 조계종단 사찰 용암사가 아래서만 부처님을 뵙게 해 놓았다 해서 아쉬웠다 하거니와 이곳은.. 2024. 10. 4. [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31) 문화재청장 서정배 (1) 풍납토성과의 운명적 만남 한국 문화재 정책을 총괄하는 부처인 문화재청은 그 모태를 구황실재산사무국을 삼는다. 이 기구가 1962년 1월 10일 문화재보호법이 제정 시행되기 시작함으로써 문화재관리국으로 탈바꿈한다. 지금은 차관급 문화체육관광부 외청이지만 출범 당시는 지금의 교육부 전신인 문교부 산하 외국外局이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궤를 같이한 문교부는 1990년 12월 26일 교육부로 개편되거니와 그것을 구성하는 국 단위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 현재에 견주어 권능은 형편 없었다. 초대 관리국장은 구황실재산사무총국장을 역임한 한당욱. 문화재관리국은 1967년 7월 24일 소속이 문화공보부로 넘어간다. 이름은 그대로 문화재관리국이었다. 문화공보부에서 공보가 따로 독립하자 문화부에서 계속 자리를 지킨다. 내가 문화재 분.. 2024. 10. 4. 한원翰苑, 고대사의 도토리 버전 일본에서 와와!!! 한다고 줏대없이 우리도 와와!! 하며 따라가는 분야가 어디 한둘이겠냐마는 지금 계속 거론하는 고고학 분야 도토리, 딱 그 버전에 해당하는 고대사학계 버전이 한원翰苑이라는 어디 듣보잡 문헌이다. 다 사라지고 1권인가 하는 분량만 꼴랑 남았는데, 상어한테 다 뜯어먹히고 뼈다구만 남은 헤밍웨이 다랑어랑 진배없어, 그 남은 뼈다귀 붙잡고 일본이 와! 하니깐 줏대 없는 한국사학계도 와! 무슨 보물이나 되는양 난리버거지를 피운다. 뭐 대단한 문헌 아닌가 하겠지만, 뜯어보면 암것도 아닌 빈쭉정이다. 이르기를 당 고종 현경 5년(660년) 이전에 장초금張楚金이라는 자가 찬술하고 그에다가 송나라 시대에 옹공예雍公叡라는 자가 주석을 가한 유서類書, 곧 분류식 백과사전이라 하는데 남은 건 꼴랑 그 권 제.. 2024. 10. 4. [마한 성곽론 점검] (1) 같은 듯 다른 두 가지 증언 마한에 성곽이 있었는가? 그 모순을 점검한다.이를 판별하는 기준은 현재 전해지는 판본이다. 다시 말해 이를 점검하는 두 가지 절대적인 사료, 곧 후한서後漢書 한전韓傳과 삼국지三國志 한전韓傳 두 가지다.그 원본이 등장한 이래 이미 천년이 넘게 흘렀으니 그것이 그 원본 그대로 현재로 전승되었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따라서 이 시점에서 저 제목에서 제기하는 문제를 판별하는 기준으로 오로지 현재 전해지는 후한서와 삼국지 판본을 검토대상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 둔다. 그렇다면 마한에 성곽이 있었는가? 이와 관련해서 후한서와 삼국지는 비슷한 내용인 듯하면서도 자세히 따지면 전연 다른 내용도 없지 않으니 이를 세밀히 검토해야 한다. 이런 기초 작업이 한국 고대사학계에서 제대로 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2024. 10. 4. 이전 1 ··· 500 501 502 503 504 505 506 ··· 3345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