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0187 고인돌 보호장치 문제는 어찌 대처했을까? 강화 부근리 고인돌이다. 그냥 기념물인지 무덤인지는 모른다. 저 내부는 아무나 들락한다. 저게 무덤이라면? 도대체 저 상태로는 보호막이 전연 없다. 이 문제를 저걸 만든 사람들은 어찌 해결했을까? 그냥 새끼줄 쳐서 들어오지마! 했을까? 혹 흙을 덮어씌운 건 아닌가? 봉분이 다 날아가고 저것만 꼴랑 남았을 가능성은 없는가? 저 보호막 장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단 하나 분명한 점은 저와 같은 상태로는 전연 내부를 보호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2024. 6. 6. 아일랜드 고인돌 개황 아일랜드 거석기념물 폴나브론 고인돌 Poulnabrone dolmen 앞서 잠깐 사례 하나로 소개했지만, 우리네 고인돌과 아주 흡사한 그런 dolmen이 아일랜드 곳곳에는 현재 파악된 것이 170기 정도라 한다. 유의할 점은 저와 같은 고인돌이 아일랜드 문화권으로 묶음을 할 만한 데는 다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인근 브리튼 섬 곳곳에도 보인다. 그 개략하는 분포현황은 아래 구글어스로 위선 참조하고 ireland dolmenExplore ireland dolmen in Google Earth.earth.google.com 이에서 보이는 고인돌은 특히 명소로 꼽히는 곳만 솎은 데라 아래 지도를 보면 그 분포하는 양상이 아일랜드 전역임을 본다. 이 아일랜드 고고학이 쓰는 용어로 우리가 참조해야 할 법한 것이 매.. 2024. 6. 6. 바이킹 심장부 스웨덴을 관통한 알라 1200년 전 어떤 바이킹 여성 무덤에서 발견한 반지다. 스톡홀름에서 서쪽으로 25 km 떨어진 비르카 Birka 에 묻힌 이 여성 반지에는 '알라를 위하여' 혹은 '알라께'에 해당하는 글자를 새겨놨다. 도대체 어찌하여 알라가 바이킹 사회까지 침투했을까? 바이킹과 아바스 칼리프 Abbasid Caliphate 사이에 모종하는 접촉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저 반지가 흘러흘러 바이킹 심장부로 침투했을 것이다. 분홍색 보라색 돌이 특징인 이 은반지는 1872-1895년 발굴조사에서 나왔다. 바이킹 시대 비르카는 무역센터가 있었다. 저 바이킹 심장부에서는 심지어 부처님도 출현했다. 부처님이 수호한 바이킹선 2024. 6. 6. 왕비의 계곡과 네페르타리 무덤 고대 이집트 매장 패턴을 파라오 중심으로 보면 합장묘는 아니어서 왕과 왕비는 따로 묻혔고 묘지도 따로 있었던 듯하다. 이것이 왕가를 벗어나서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룩소르에 파라오 공동묘지를 왕들의 계곡이라 하듯이 왕비의 계곡이 따로 있었으니 이 퀸즈 계곡 Valley of Queens 은 룩소르 나일강 서안에 위치한다. 이곳은 신왕국 파라오 많은 부인과 자녀들 무덤이 있다(기원전 1550-1070). 계곡에는 70개가 넘는 무덤이 알려졌지만 람세스 2세 부인인 네페르타리 Nefertari 왕비 무덤을 포함해 일부만 일반에 공개된다. 2024. 6. 6. 조몬시대 : 팥을 최초로 재배했다는 일본 최근 일본의 보고를 보면, 다른 작물은 몰라도 팥은 세계 최초로 일본이 재배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조몽시대부터 재배했다는 것으로 몇 가지 증거를 들었는데 지금은 가물가물하니 구체적으로 적지 않겠다. 조몬시대라면 농사 같지도 농사를 짓던 시대인데, 이 시기에도 팥을 세계 최초로 재배했다니, 그럼 한반도는 놀고 있었을까? 한국 역시 잡곡 전반에 대해 한국이 원산지일 가능성을 하나 하나 다 짚어 봐야 한다. 예를 들어 콩 (대두). 이건 한반도 (혹은 남만주)가 원산지일 가능성이 정말 높아 보이는데, 아직까지 추측만 난무할 뿐 한 번도 제대로 된 연구가 보고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사실 이런 연구도 모두 해외의 경우를 보면, 고고과학에서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고고과학 전공자들의 열악한 .. 2024. 6. 6. 잠깐 탐조에 미쳤던 시절 몇 년 되지 않았지만 아승끼 전세겁 같은 시절 그때는 탐조랍시며 아주 잠시간 나로선 외유라 할 수밖에 없는 탐조探鳥 시대가 있었다. 사진이 부업이라 할 만치 그에 혹닉하기는 했지만 내가 특별히 새가 좋아 그리한 것도 아니며 이 분야 업계를 우리 공장에서 개척한 유형재 선배 말씀처럼 새 사진은 첫째 장비 둘째 인내 라 하거니와 둘 중 어느 하나도 구비하지 못한 내가 그리 나설 수밖에 없던 고역도 있으니 당시 나는 한류기획단장(나중에 K컬처기획단으로 변경)으로 어케 하면 k상품을 고민하던 찰나 탐조 역시 그 대상이 될 수 있겠다 싶어 손을 대기 시작한 데 지나지 않는다. 그리하여 짬나는 대로 쉬는 날이면 이곳저곳 찾아다니며 탐조랍시며 잠시 부산을 떨어본 데 지나지 않는다. 내가 쉬 저쪽을 단념한 이유도 애초.. 2024. 6. 5. 이전 1 ··· 748 749 750 751 752 753 754 ··· 3365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