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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2266

[추적, 한국사 그 순간 –8-] 백제 멸망케 한 황산벌 승리의 비결 김유신, 조카이자 사위인 반굴 제물 삼아 계백 이기다 [중앙선데이] 입력 2017.01.08 00:44 | 513호 18면 『삼국사기』 권제47 열전 제7이 표제로 내세운 인물 중 김영윤(金令胤)의 전기는 실은 그를 중심으로 그의 아버지 김반굴(金盤屈), 그리고 그의 할아버지 김흠춘(金欽春)에 이르는 3대에 걸친 가문 이야기다. 비록 짧은 분량에 지나지 않으나, 반굴과 흠춘에 대한 생애의 몇 가지 중요한 단락을 보충한다. 김영윤에 앞서 등장하는 반굴과 흠춘의 행적은 다음과 같다. “김영윤은 사량(沙梁) 사람으로 급찬 반굴(盤屈)의 아들이다. 할아버지인 각간(角干) 흠춘(흠순·欽純이라고도 한다)은 진평왕(眞平王) 때 화랑이 됐는데 인덕이 깊고 신의가 두터워 뭇 사람의 마음을 얻었다. 장성하자 문무대왕이 발.. 2018. 1. 20.
[추적, 한국사 그 순간 -7-] 태종무열왕 출생의 비밀 김춘추 아버지 용수·용춘은 형제 사이 [중앙선데이] 입력 2016.12.18 00:42 | 510호 23면 서기 654년 봄, 진덕여왕이 죽자 신라엔 성골(聖骨)이 더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선덕여왕 즉위(632년) 때부터 남자 성골이 씨가 말랐다. 하는 수 없이 마지막 성골 여인인 선덕과 진덕을 차례로 왕으로 세운 것이었는데,이는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았다. 신분제 사회인 신라에서 성골은 품계가 없는, 더 정확히는 품계를 초월하는 신분이었다. 그 다음 신분인 진골(眞骨)은 신하들이 차지했다. 성골이 멸종했으므로 신하 중 누군가가 왕위에 올라야 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김춘추다. 그의 후견인은 처남 매부가 되어 끈끈한 인연을 다진 맹장 김유신. 처남의 절대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김춘추가 마침내 권좌를 차지.. 2018. 1. 20.
[추적, 한국사 그 순간 -6-] 황음무도해서 쫓겨난 진지왕 사도태후, 권력욕에 눈멀어 아들 몰아내고 왕 노릇 [중앙선데이] 입력 2016.11.20 00:38 | 506호 23면 『삼국유사』 기이(紀異)편이 집적한 고대 삼국의 괴담 중에 제목이 ‘도화녀 비형랑(桃花女鼻荊郞)’인 에피소드가 있다. 도화녀와 비형랑은 모자지간이다. 어머니 도화녀는 글자 그대로는 복숭아꽃 같은 여인이라는 뜻이니 얼마나 아름다우면 이렇게 일컬었을까? 반면 그가 낳은 아들 비형랑은 그 의미를 종잡기는 힘들지만 하필 이름에 ‘가시나무(荊)’가 들어갔으니 추상(秋霜) 같은 느낌도 없지 않으면서도 조금은 을씨년스럽기도 하다. 그렇다면 비형랑의 아버지는 누구인가? 그 실체는 이 이야기 첫 대목에서 다음과 같이 풀린다. “(신라) 제25대 사륜왕(舍輪王)은 시호가 진지대왕(眞智大王)이고, 성은 김.. 2018. 1. 20.
[추적, 한국사 그 순간 -5-] 수수께끼 신라 재상, 김양도 당에 사신 갔던 전쟁 영웅의 옥사, 나당 전쟁 부르다 [중앙선데이] 입력 2016.10.23 00:42 | 502호 23면 『삼국유사』 중 ‘흥법(興法)’이라는 이름이 달린 챕터가 있다. 불교를 일으킨 일화를 묶어놓은 것으로 ‘원종흥법(原宗興法) 염촉멸신(厭觸滅身)’이라는 제목을 단 것이 있다. 원종이라는 사람이 불법을 일으키고, 염촉이라는 사람은 스스로 몸을 희생했다는 의미다. 원종은 신라사에서 불교를 처음으로 공인한 법흥왕이요, 염촉은 바로 이를 위해 순교한 이차돈(異次頓)을 말한다. 불교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맞서고자 법흥왕과 이차돈이 벌인 게임, 다시 말해 이차돈이 스스로 목숨을 청해 잘려나간 그의 목에서 흰 피가 솟는 이적(異蹟)이 일어남으로써 신라에서 불교가 공인되게 되었다는 그 이야기가 골자.. 2018. 1. 20.
[추적, 한국사 그 순간 -4-] 선덕여왕과 3색 모란꽃 ‘씨내리’ 남자 셋 들이고도 임신 못한 선덕여왕 [중앙선데이] 입력 2016.09.18 00:46 | 497호 23면 “신이 듣기에 옛날에 여와씨(女媧氏)가 있었으나, 그는 진짜 천자가 아니라 (남편인) 복희(伏羲)가 구주(九州)를 다스리는 일을 도왔을 뿐입니다. 여치(呂治)와 무조(武?) 같은 이는 어리고 약한 임금을 만났기에 조정에 임해 천자의 명령을 빌린 데 지나지 않아, 사서에서는 공공연히 임금이라 일컫지는 못하고 다만 고황후(高皇后) 여씨(呂氏)라든가 즉천황후(則天皇后) 무씨(武氏)라고만 적었습니다. 하늘로 말한다면 양(陽)은 강하고 음(陰)은 부드러우며, 사람으로 말한다면 남자는 존귀하고 여자는 비천한 법이니, 어찌 늙은 할망구(??)가 규방을 나와 국가의 정사를 처리하게 할 수 있습니까? (.. 2018. 1. 20.
[추적, 한국사 그 순간 -3-] 대야성 전투서 딸 잃은 김춘추 백제 멸망, 김춘추 사위의 치정이 부른 복수극 [중앙선데이] 입력 2016.08.21 00:46 | 493호 23면 백제는 660년 음력 가을 7월 18일, 사비성(泗?城)에서 북쪽 웅진성(熊津城)으로 도망친 의자왕이 나당(羅唐)연합군에 항복함으로써 700년 사직에 종언을 고했다. 이때 일은 『삼국사기』 신라 태종무열왕본기 7년(660)조에 자세하게 나와있다. 이에 의하면 의자왕은 이달 13일 포위망을 뚫고서 가까운 신하들만 데리고 야음을 타 웅진성으로 들어갔다. 현지에 남은 의자왕의 아들 융(隆)은 대좌평 천복(千福) 등과 함께 나와 항복했다. 그리고 닷새가 지난 18일, 의자왕마저 태자를 데리고 웅진성을 나와 항복했다. 태종무열왕 김춘추는 “(같은 달) 29일 금돌성(今突城)에서 소부리성(所夫里城)에.. 2018.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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