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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의 특별하지 않은 박물관 이야기29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기 : 구술 인터뷰 업무 분장을 할 때, 늘 고민이 된다. 어떤 전시를 하고 싶다고 해야 할까. 조선시대일까? 아님 근현대를 해야 한다고 할까? 이런 고민 말이다. 우리 박물관은 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를 아우르는 곳이고, 그래서 저 멀리 조선시대를 전시할 수도 있고 가깝게는 지금 현재를 전시해야할 수도 있다. 전시에서 어느 시대를 다루든 고충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것은 사람마다 주관적으로 느끼는 것이기에 어느 쪽이 맞느냐는 담당자의 성향 문제이다. 나 같은 경우는 조선시대 전시를 좋아한다. 어차피 찾을 수 있는 유물이 한정되어 있으니, 유물의 소재지를 찾는 데 들어가는 공력이 적기 때문이다. 반면에 근현대사 전시를 하는 것을 좋아하진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좋아하지 않는다기보다는 조선시대를 다루는 전시보다 힘들.. 2023. 7. 22.
전시 크레딧의 의미 전시 크레딧을 적다보면 지나간 일들이 스쳐간다. ‘아 이때는 이런 일이 있었지.’ 혹은 이런 마음으로 약간은 예민해진다. ‘혹시 빠진 분들은 없겠지.’ 전시는 오픈하고 나면 별 것 아니지만, 생각보다 수많은 사람들의 공력이 들어간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사소한 도움부터 정말 그분들이 아니었다면 큰 일이 났었을 도움까지, 전시 막바지에는 그 도움들이 너무나 소중하다. 그래서인지 마치 학위논문을 다 쓰고 나서 감사의 글에 교수님, 부모님, 동기들, 자료를 제공해 준 곳 등등을 다 적은 것처럼, 크레딧을 적을 때도 모두의 이름을 감사의 마음으로 적는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다른 마음도 들어간다. 결정의 시간 전시 한 달 전, 전시장 풍경은 정말이지 정신이 없다. 관람객들은 모든 것이 다 세팅되고 난 정돈된 .. 2023. 7. 15.
학예사의 업무용 글쓰기 : 전시에서의 글쓰기란 대학원을 다니던 시절, 누군가가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 질문을 했다. “교수님. 저는 평소에 교수님 글을 좋아하거든요. 교수님처럼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순간 그 방에 있던 모두의 눈이 반짝반짝해졌다. 그랬더니 교수님은 잠시 망설이다가 이렇게 대답하셨다. “글 쓰는 것은 타고 나는 거야.”라고. 나중에 서양 미술사를 전공하는 동기에게 이 에피소드를 말해줬더니, 그 친구도 비슷한 이야기를 다른 교수님께 들었다 했다. 나는 두 교수님의 글을 좋아했다. 한 분은 수필 같이 따뜻하게, 다른 한 분은 냉철한 분석으로 차갑게 글을 쓰셨다. 두 분들만의 글쓰기 스타일은 감히 따라할 수도 없는, 그분들만의 무언가가 있었다. 그래도 질문을 하면 무언가 글쓰기의 비법 같은 것을 알려주실 줄 알았는데, 저렇게.. 2023. 7. 9.
전시 스토리 : 어떤 이야기를 전달할까 메일을 열었던 때였다. 마지막 문장을 읽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갑자기 울컥하면서 한참을 펑펑 울었다. ‘메일을 보내신 시간을 보니, 선생님의 고생을 알 것 같습니다.’라는 문장. 전시를 위해 유물을 대여해주기로 한 기관에서 회신 메일을 보내며, 힘내라는 말과 함께 덧붙인 문장이었다. 집이어서 망정이지, 사무실이었으면 엄청난 사연 있는 여자로 둔갑했을 것이다. 갑자기 울컥했던 이유 정말 전시를 즐기는 일부 학예사를 제외한다면, 전시 오픈이 다가올수록 대다수의 학예사들은 점점 피폐해진다(아니 어쩌면 그들도 피폐해질지도! 어쨌거나 이 말인 즉슨, 저는 전시를 즐기지 않습니다 ㅋ). 정해진 기한이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상당한 스트레스다. 계속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하며 일을 진행해야 하는 것도 생각지 못하게 마음.. 2023. 7. 1.
[전시가 만든 인연] (2) 옷소매 붉은 끝동 덕임과의 만남 교수님께 드린 말씀은 이것이었다. “교수님. 저희가 그 책을 주제로 작은 전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장하신 3~10권은 저희가 소장하고 있거든요. 가지고 계신 1~2권을 대여해주시면, 10권이 처음으로 한 데 모이는 것이 되어서 꼭 대여를 하고 싶습니다. 가능할까요? 그리고 그 책이 한글로 쓰인 소설 중, 필사자 이름이 정확한 최초의 소설이라고 하더라구요. 그 증거가 1권에 붙어 있어서, 1권은 꼭 전시에서 선보이고 싶습니다.” 그렇다. 이 책 가치는 소설 내용에만 있지 않았다. 곽씨와 장씨 가문 이야기라는 뜻인 ‘곽장양문록’은 3세대에 걸친 가문 이야기여서 그런지, 길기도 길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한 명이 필사하지 않고, 총 6명이 나누어 필사를 했다. 그것은 감사하게도, 1권 표지 안쪽에 .. 2023. 6. 12.
[전시가 만든 인연] (1) "그렇게 중요해요? 그럼 기증하께요" 우연히 인연이 생기는 때가 있다. 그리고 사람과의 인연도 있지만, 유물에도 인연이 있다. 그때도 그런 때였다. 회의를 다녀온 과장님이 갑자기 나를 호출했다. “○○ 선생. 잠시 이야기 좀 하지.” “저요?” 나를 부를 만한 이유가 없는데, 나를 부르시니 눈이 동그래졌다. “○○ 선생이 지난 번에 갖고 왔던 그 책 있잖아. 관장님이 그걸 소개하는 전시를 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네.” 이런 것이 바로 내 발등에 도끼를 찍는다는 것이었다. 맞다. 그 책은 내가 스스로(!) 우리 전시관에 전시해 놓은 책이었다. 이전부터 그 책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그 책으로 전시를 하고 싶다고 생각은 했었다. 어느 유명 소설의 모티브가 된 그 책은, 직접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았다. 트위터에 우리 박물관으로 검색하면 그 책이.. 2023.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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