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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통사는 어느 박물관을 조우할 것인가? 내가 말하는 이 물음은 고고학과 역사학 기반을 말한다. 우리 같으면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민속박물관 같은 통사 기반 기관을 말한다. 이 경우 문제가 생기는데, 이탈리아를 가서 이런 물음을 묻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점이 그것이라, 묻지 않으니 이태리 쪽에서도 이걸 따로 가공 판매할 이렇다 할 절박성이 없다. 세계가 이탈리아에 요구하는 상품은 이탈리아 그 자체 통사가 아니라, 정확히는 로마제국의 그것이며, 나아가 그만큼 구찌가 큰 것이 이탈리아 미술, 특히 르네상스 이래 미술이라 보아도 대과가 없다. 내가 말하는 저 수요를 충족하려면 어딜 가야 하는가? 언뜻 떠오르지 아니한다. 로마에 포진하는 무수한 박물관 미술관은 전반으로 보아 테마 중심이라, 거개 국립을 표방하지만, 테마 중심인 까닭에 그것이 .. 2024. 7. 1.
하워드 카터가 유물 정리에만 꼬박 10년을 투자한 투탕카멘 왕묘 흔히 투트 왕 King Tut (c. 1341 – c. 1323 BC)이라 약칭하는 투탕카멘은 고대 이집트 제18왕조(재위 BC 1332~1323)의 마지막 파라오다.투탄카멘은 그의 지위에 견주어 유난히 규모가 작은 무덤에 묻혔다. 그의 죽음은 더 큰 왕릉이 완성되기 전에 예기치 않게 발생하여 그의 미라는 다른 사람을 위한 무덤에 묻혔을 수 있다. 거의 온전한 무덤은 1922년 하워드 카터Howard Carter가 찾아내 발굴한다.무덤에서 발견된 물건은 단단한 금관, 안면 마스크, 왕좌, 활, 이미우트 페티시Imiut fetishes 2점, 금발가락 가판대 gold toe stalls, 가구, 음식, 와인, 샌들, 신선한 린넨 속옷 등 5천398점을 헤아렸다.그 조사자 하워드 카터 Howard Carte.. 2024. 6. 30.
도화원기의 남상을 이룬 삼국지 동이전 삼국지 동이전을 보면, 진한에 대해 아래와 같이 적어두었다. 辰韓在馬韓之東, 其耆老傳世, 自言古之亡人避秦役 來適韓國, 馬韓割其東界地與之. 有城柵.註 176 其言語不與馬韓同, 名國爲邦, 弓爲弧, 賊爲寇, 行酒爲行觴. 相呼皆爲徒, 有似 秦人校勘 140, 非但燕·齊之名物也. 名樂浪人爲阿殘; 東方人名我爲阿, 錢大昭曰, 後人名我爲俺, 俺卽阿也. 聲之轉耳. 謂樂浪人本其殘餘人. 今有名之爲秦韓者. 局本, 無爲字, 誤. 始有六國, 稍分爲十二國. 范書, 辰韓在東, 十有二國, 其北與濊狛接. 辰韓은 馬韓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辰韓의] 노인들은 代代로 傳하여 말하기를, “[우리들은] 옛날의 망명인으로 秦나라의 苦役를 피하여 韓國으로 왔는데, 馬韓이 그들의 동쪽 땅을 분할하여 우리에게 주었다.” 고 하였다. 그곳에는 城柵이.. 2024. 6. 30.
투탕카멘 의자 뒤쪽을 장식한 문양 투탕카멘(c.1370-52 BC) 왕좌 뒷면을 장식한 문양들이다. 신왕국 삼나무 cedarwood 재질 카이로박물관 소장 2024. 6. 30.
[동부 터키 여행] (10) 반 요새 Van Fortress, 우라르투 산상 요새의 아이콘 튀르키예 쪽에서 이곳은 세계유산 등재를 준비하는지, 그 임시목록에 올라 있으니, 첨부 파일은 그 소개 정리 문서니 참고 바란다. 이는 아울러 아래 유네스코에서도 문서를 제공한다. https://whc.unesco.org/en/tentativelists/6114/ Tushpa/Van Fortress, the Mound and the Old City of Van - UNESCO World Heritage Centrewhc.unesco.org 위치는 아래와 같다. GPS coordinates: 38.503395, 43.337959 오픈스트리트맵오픈스트리트맵 (OpenStreetMap)은 여러분과 같은 사람들이 만들어, 개방형 라이선스에 따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세계 지도입니다.www.openstreetm.. 2024. 6. 30.
봉래각 이야기(5) 벼농사는 어떻게 바다를 건넜는가 한국땅에서 일본으로 도작 농경이 유입된 데 대해서는 그 시기는 논란이 있지만, 들어간 경로는 비교적 명확한 것으로 안다. 이에 반해 한반도의 도작에 대해서는 유입된 경로에 대해 여러 설이 있다. 혹자는 산동반도에서 요동반도로 들어와 서해안을 따라 남하했다고 하며 또 다른 설에서는 산동반도에서 한강유역으로 들어왔다고도 한다. 일부에서는 아예 양자강에서 바다를 건너 한반도 서남부로 들어왔다는 주장도 한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 중 첫째설이 가장 유력하다. 이유는?우선 산동반도와 요동반도 사이는 섬으로 연결되어 상호거리가 짧으면 십 몇 킬로미터, 멀어봐야 30-40킬로 정도로 맞은편 육지가 보이는 정도다. 두 번째 이유는, 현재까지 보고된 도작 관련 발굴 보고다. 이것이 현재까지 발굴 보고인데, 빨간색이 순수.. 2024.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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