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1919 2천년 묵은 낙랑 목관으로 판 후지츠카 장서인藏書印 앞서 나는 추사학를 개척한 원훈대신 후지츠카 치카시 등총린 藤塚隣 소장품으로 과천 추사박물관에 기증된 것으로 평양 일대 낙랑 무덤에서 수습한 목관 조각을 이용해 인장 하나를 만들어 사용했다는 소식을 전했거니와, 아래가 그것이라. 낙랑 목관으로 제작한 후지츠카 도장 낙랑 목관으로 제작한 후지츠카 도장과천 추사박물관이 개최 중인 후지츠카藤塚와 난학蘭學 특별전 출품작 중에는 추사학을 개척한 원훈대신 후지츠카 치카시藤塚隣 유품으로 다량의 인장印章 도장이 인장함과 함께 선보이거니historylibrary.net 이 인장은 그것을 담은 그릇인 인장함과 더불어 지금 추사박물관에서 개최 중인 '후지츠카와 난학蘭學' 특별전에 선보이고 있거니와, 다만 여러 제약으로 문제의 도장을 제대로 촬영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으니 그리하.. 2023. 7. 24. 이상한 1970년 모파상전집 번역물 앞서 나는 60년대 말~70년대 초반 세계문학 전집 발간 붐이라는 소식을 정리했거니와 개중 하나의 실례로써 거론한 것이 이 모파상전집이라 모파상전집이 저 시대에 이미 저런 모습의 번역본으로 선보였다는 사실이 놀랍기 짝이 없거니와 한데.. 그 서지사항을 보면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나로서는 허심히 넘긴 이 대목은 외우 신동훈 교수께서 예리하게 지적한 것인데 1970년 유문有文출판사라는 데서 초판이 나왔다는 저 전집 편집위원 명단을 보니 작위하는 냄새가 아주 짙어 김수국金修國 유문출판사 수석 번역워원 김재천金齋天 유문출판사 번역위원 김가평金家平 박재천朴齋天 이며 역자는 이제천李齋天 이라, 이는 누가 봐도 수신제가친국평천하修身濟家治國平天下라는 유가의 절대 이상을 단순무식하게 응용한 인위의 작명이다. 濟라는.. 2023. 7. 24. 한국의 사적 기록 말살의 역사 한국은 유구한 지적 전통이 있는 나라다. 문자 사용의 흔적만 해도 한반도에서만 2000년이 넘고 과거제를 천년이나 시행할 저력이 있었고 엄청난 양의 불교 목판 대장경을 여러 차례 조판하고 또 조선시대에는 실록, 승정원일기등 많은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런데-. 한국의 역사는 또한 유구한 사적기록말살의 역사이기도 하다. 실록작성의 종료와 함께 이루어졌던 세초는 필화를 막고 종이를 절약하기 위함이라 하지만 실은 방대한 사적 기록의 말살이기도 하다. 당대에 사찬하여 남긴 수많은 개인의 역사 기록들은 자가검열에 의해 불태워졌다. 이런 전통이 축적되고 축적되어 이루어진 것이 한국과 일본의 역사기록의 차이다. 일본은 육국사 이후 관찬서가 없다. 모두 사찬서이다. 그리고 역사기록은 개인기록이 풍부하게 이용된다. 많은 .. 2023. 7. 24. 김재근에서 맥아더까지, 헌책방서 낚아챈 회고록과 회고록들 어제 이만 팔천원에 어느 헌책방 뒤져서 긁어다 놓은 회고록들이다. 회고록은 실록이다. 특히 국가에 의한 관찬사서 편찬이 폐지된 근현대에 저런 회고록은 중대성을 더한다. 이것이 회고록 첫번째 특징이다 장점이다. 회고록은 제아무리 객관을 가장한다 해도 변명과 자랑으로 흐르는 숙명이 있다. 이 지점에서 회고록은 이른바 사료비판이 끼어들 여지를 필요조건으로 제시한다. 거기엔 과장과 거짓과 왜곡이 혼재 탑재한다 실상 광개토왕비도 장수왕의 지 애비 회고록이다. 진짜로 솔직한 회고록은 읽기가 거북하기 짝이 없다. 카사노바 회고록이 그렇다. 이것이 회고록이 주는 두번째 매력이다. 회고록은 관찬사서의 생략을 벌충한다. 나아가 법과 제도가 실제로는 어떻게 삶의 현장에서 통용했는지 그 생생한 목격담이다. 이것이 세번째 매력.. 2023. 7. 24. 조선 서학은 순교사관에서 해방시켜야 한다 조선서학사를 순교사관에 따라 해석하니 실체가 제대로 안 보이는 것이다. 조선 서학자들이 어제까지 성리학을 믿다가 오늘 서학서를 읽고 하루 아침에 정통 기독교신자로 홀라당 바뀌었으리라 보는가? 실상은 그와 달랐을 것이다. 조선서학사를 천주교 순교사에서 해방하여 한국철학사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와야 한다. 특히 서학을 유교사의 입장에서 재평가해야 한다. 서학을 순교사관에 묶어두니 절대 건드리면 안 되는 종교의 영역에 역사가 머물고, 그 안에 존재했을 다양한 유학과 서학의 대화와 갈등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서학은 종교사가 아니다. 천주교의 전유물로 놔둬서도 안된다. 인간사를 종교사의 영역으로 절대 불가침의 영역으로 만드는 것. 우리는 그것을 왜곡이라 부른다. 선교사가 전도하지도 않았는데 책을 읽고 감화.. 2023. 7. 23. 조선후기, 서학은 "이단 유학"이었다 그렇다면, 조선의 선비들은 모두 바보였다는 말인가? 조선시대의 기록을 보면 그 시대 선비들의 고도의 사유에 공감하는 바 많아진다. 조선 후기의 선비들도 바보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왜 조선에서는 일본 고학파 같은 "이단유학"이 나오지 않았을까? 왜 "성리학"을 묵수하는 모습으로 나라가 망할 때까지 간 것일까? 유심히 당시의 사상의 흐름을 보면 눈에 띄는부분이 있다. 바로 "서학"이다. 고도의 성리학 교육을 받은 유학자들이 어느 아침에 홀라당 서학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것도 선교사도 없이, 전해진 책만 읽고, 교황은 이 "선교사도 없이 교회가 일어난 것을 듣고" 기적이라며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지만, 그것이 아니라 조선의 유학자들에 있어 서학이란 "근대성을 갖춘 이단 유학"이었던 셈이다. 성리학의 .. 2023. 7. 23. 이전 1 ··· 1689 1690 1691 1692 1693 1694 1695 ··· 3654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