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1918 외채와 민간자본 한국자본주의 성장사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는 땡전 한푼 없이 시작했기 때문에 외채와 민간자본 의존도가 높다는 것이다. 일본이 제국주의 길을 걸을 때만 해도 일본은 없는 살림을 쥐어짜고 이따끔식 들어오는 전쟁 배상금 등으로 메꿔가며 아직까지는 추격 가능한 선진 제국주의를 추격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국이 해방이후 성장의 길을 추구할 때쯤이면 이미 후발 국가가와 선진국 차이는 이전보다 더 벌어져 있었고, 더 큰 문제는-. 정말 신생 대한민국에는 땡전 한 푼 없이 까막눈 국민 3천만이 하루 하루 먹고사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한국과 일본의 성장 전략의 차이가 나오기 시작하는데, 한국은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보다 외채와 민간자본 의존도가 훨씬 높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언론 표지를 장식하던 외.. 2023. 7. 19. 미끼를 물어분...이 아니고 미키를 도와준 후지츠카 한국 의학사醫學史 양대산맥 중 하나로 꼽히는 미키 사카에(삼목영 三木榮, 1903-1979)라는 분이 지은 란 책이 있다. 말 그대로 삼국시대부터 근대까지의 한국 의학서의 서지사항과 해제를 정리한 책이다. 초판은 1956년 나왔는데 등사謄寫로 120부만 인쇄한 자가판自家版이다(작년 말인가에 한국어 번역이 나왔다). 그 서문을 읽어보니, 도움을 받은 분들을 거진 한 페이지 통으로 할애해 적어놓고 있다. 그런데 그 중간쯤을 보니 "전 경성제대 교수 후지타 료사쿠(등전량책 藤田亮策, 1892-1960) 선생" 아래에 "돌아가신 同(필자 주: 전 경성제대 교수) 후지츠카 지카시 선생"이 나오는 게 아닌가 말이다. 이런 걸 보면 후지츠카를 의 신화나, 추사니 조선 북학파니 청대 고증학이니 하는 것의 연구자로만 기.. 2023. 7. 18. 이마니시가 베낀 후지츠카 소장 고려도경 이마니시 류(금서룡今西龍, 1875-1932)의 장서 상당수가 들어가있는 나라 천리대학도서관天理大學圖書館의 한국 고서 목록을 찾아볼 일이 있었다. 을 교정해 연활자본으로 낸 이마니시답게 그 스스로도 을 갖고 있었다. 18세기 사본이라니 지부족재본知不足齋本을 베낀 건가 싶은데 실물을 언제 만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 근데 중요한건 그 위다. 달랑 6장이라기에 뭔가 싶었는데, 해제를 읽어보니 후덜덜. 1931년 7월 후지츠카藤塚 교수의 교시로 그의 소장본을 빌려 베껴서 지부족재총서본에 주석을 단다는 게 아닌가. 분명 이 후지츠카는 후지츠카 치카시(등총린藤塚鄰, 1879-1948)다. 그가 어떤 을 갖고 있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는데, 지금은 허공의 연기가 되었을테니 아무것도 할 수 없고(혹 하버드 옌칭에 .. 2023. 7. 18. 70년대 소가 논을 갈던 압구정동 뭐 지금이야 개발 첨단을 달리다 이젠 어디까지 간 줄도 모를 압구정동 일대 70년대 풍광이다. 뒤쪽에 들어선 아파트가 어딘지 내가 모르겠다만, 혹 여즉 재개발이 되지 않았다면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제 갓 들어서기 시작한 아파트를 배경으로 드넓은 농지에서 농민이 쟁기로 논을 간다. 저 아파트 아래로는 판잣집이 보인다. 저 분, 땅을 끝까지 지키셨다면 떼부자 되셨을 것이다. 저 시대 강남 개발을 배경으로 삼은 영화도 있었다고 기억한다. 지금 찾아보니 김래원 이민호가 형제로 주연한 강남 1970이 그것이라, 이 무렵 논밭 천지였던 강남은 개발의 광풍이 불기 시작한다. 경부고속도로가 뚫리고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아부지도 저런 데서 농사 지었음 좀 좋아? 중구 정동 #국토발전전시관 에서 .. 2023. 7. 18. 마지막 고고기생충 샘플 처리를 마치며 오늘 필자는 고고기생충 연구 남은 마지막 샘플 처리를 마쳤다. 이로써 지난 20년간 계속한 고고기생충학 검사 종지부를 찍는다. 물론 우리나라 고고기생충학연구는 앞으로도 오창석, 홍종하, 서민 교수에 의해 계속 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필자가 이제 직접 시료 분석에 참여할 일은 없을 것이다. 필자의 현장 참여는 고고기생충에 관련해서는 이제 이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남아 있는 논문 출판 2-3편, 그리고 단행본 2권 정도 집필이 남아 있지만 금명간에 필자의 고고기생충 연구는 완전히 끝나게 될 것이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항상 든든한 동료가 되어 주었던 오, 홍, 서 교수님 제위께 깊은 감사의 뜻을 표한다. 또한 필자의 연구 마무리와는 상관없이 관련분야가 앞으로 영원히 지속되며 한국 고고학 발전에 기여할 .. 2023. 7. 18. 투사가 된 어느 非투사 해직기자 해직과 더불어 어떤 의도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그것이 위로 차원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하지만, 아무튼 난생 듣도보도 못한 해직 축하 파티가 대대적으로 개최되었다. 나는 당시 페이스북 기반 학술 겸 친목 모임 문헌과문물(문문)을 만들어 그쪽을 기반으로 활동 중이었으니, 이때문에 내가 창설 때부터 간여한 정통 학술모임인 신라사학회를 떠나는 계기가 되기는 했지만, 아무튼 이 단체 일부 회원이 주동이 되어 해직 축하연을 성대히 한 것이다. 이를 실질로 주도한 이는 현재 국내에는 없다. 그가 회원들 공지하고 일일이 연락해서, 내 기억에는 아마도 을지로 쪽이 아니었나 싶은데, 수십 명이 몰리는 성황이었다고 기억한다. 나는 특히 이 친구가 고맙기 짝이 없다. 내가 미디어오늘인가 아니면 기자협회보인가 인터뷰에서도 .. 2023. 7. 18. 이전 1 ··· 1700 1701 1702 1703 1704 1705 1706 ··· 3653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