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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전 들고 서빙 나선 폼페이 고고학은 홍보없이는 성립할 수 없는 학문이라, 시대 변화에 맞는 홍보 맞춤을 끊임없이 시도하며 변신을 꾀했으니, 그런 홍보에 이 폼페이 Pompeii 유적 만큼 최적화한 데가 있겠는가? 폼페이는 마르지 않는 샘이라, 발굴이 언제 완료될지도 모르고, 앞으로 수백년은 너끈히 해 먹을 만한 데라 종래엔 전통매체 기자님들 모셔다가 블라블라했지만, 요샌 그런 전통시대 매체는 캐털이라, 직접 기자님 되어 각종 sns 활용해 대중을 접촉한다. 이번엔 뭘 들고 나왔나 하니 살피니 파전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rI3Ml4lJNH8 이 분이 폼페이 유적을 전담하는 Director라시는데 성함이 가가멜 쭈그리? Gabriel Zuchtrigel 라 신다. 폼페이 유적은 이를 조사하는 .. 2023. 6. 29.
명태, 명천 사는 태씨가 잡은 물고기라 해서 얻은 이름? 조선 후기 학도 이유원李裕元(1814∼1888)이 손 가는 대로 써내려간 글 모음집 임하필기林下筆記 제27권 / 춘명일사春明逸史에 보이는 일화다. 미리 말하지만 믿거나 말거나다. 명태明太 명천明川에 사는 어부漁父 중에 태씨太氏 성을 지닌 이가 있어 어느 날 낚시로 물고기 한 마리를 낚아 고을 관청의 주방廚房 일을 보는 아전을 통해 도백道伯께 드리니 도백이 이를 매우 맛있다 해서 물고기 이름을 물었지만 아는 사람이 없고 다만 “태 어부太漁父가 잡은 것이옵니다”고 할 뿐이었다. 이에 도백이 말하기를 “명천의 태씨가 잡았으니, 명태라고 이름을 붙이면 좋겠다” 했다. 이로부터 이 물고기가 해마다 수천 석씩 잡혀 팔도에 두루 퍼지게 되었는데, 북어北魚라 불렀다. 노봉老峯 민정중閔鼎重이 말하기를 “300년 뒤에는 .. 2023. 6. 28.
원조는 생존의 문제였다 이런 상황이 60년대라고 70년대라고 변화가 있었겠는가? 돈만 준다면 쌀만 준다면 전쟁터 총알받이도 해야 했고 탄광으로도 가야 했으며 해외 원정 간호사라도 해야했다. 그래도 버티지 못한 사람들은 남미행 이민 배를 탔다. 국가는 그렇게 폐허와 가난을 자양분 삼아 이제 겨우 걸음마를 시작했다. 미국의 구호원조를 너무 쉽게 생각한다. 사대고 친미고 매판이고 나발이고 먹고 살아야 했다. 하루하루가 살아 있음이 하나하나 기적인 시대였다. #원조물자 #구호물자 #국가재건 #미국원조 2023. 6. 28.
1953. 7. 27 정전협정 조인식과 판문점 정전협정 조인식이 열린 판문점 | 1953년 7월 27일 I 국가기록원 정전협정 조인식 | 1953년 7월 27일 | 서울역사박물관 그 역사적 중요성에 견주어 그 현장은 막상 적막하기만 하다. 2023. 6. 28.
부채 든 목 길쭉이 여인, 스페인독감이 느닷없이 앗아간 클림트 최후의 그림 구스타프 클림트 Gustav Klimt. 생몰 연대가 1862~1918년이라, 죽은지 대략 백년이요, 이승을 누린 기간이라 해 봐야 쉰여섯에 지나지 않는다. 하긴 뭐 고흐가 오래살았는가? 그에 견주면 대략 동시대를 살다간 피카소(1881~1973)는 천수를 누리고도 덤을 더 살았고, 그의 라이벌 마티스(1869~1954) 역시 당시로서는 기록적인 장수를 했다 봐야 한다. 이를 보면 예술세계에서는 불꽃 같은 삶을 살다갔다 해서 반드시 그 상품성을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는가 싶다. 흔히 클림트를 일러 오스트리아 태생 상징주의 화가라 하며 근대 미술계에서는 꽤나 영향력을 발휘한 소위 빈 분리파 운동Vienna Secession movement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라 한다만, 우리한테 각인한 클림트는 실상 아.. 2023. 6. 28.
보스만 판결과 메이저리그 총파업 남들 눈엔 기자로서의 김태식이라고 하면, 대뜸 문화재를 떠올리겠지만, 23년에 이르는 기자 생활 기간 중 문화재 기자 생활은 17년에 지나지 않는다. 1993년 1월 1일, 연합통신(현 연합뉴스) 기자로 입사하는 나는 여러 곳을 전전하다 98년 12월 1일 문화부로 발령났다. 문화부 이전 나는 부산지사와 체육부, 그리고 사회부를 거쳤다. 체육부는 내 기억에 정확치는 않으나, 94년 7월 1일에 발령나서 96년 11월 30일까지 일했을 것이다. 대략 2년 반이라 치자. 이후 나는 사회부로 갔으니깐. 체육부에서는 제대로 해 본 것 없이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시키는 대로 했으니, 야구와 축구도 해 봤다. 당시만 해도 외신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 체육 관련 외신은 국제부가 아니라 체육부에서 별도로 처리했다. .. 2023.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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