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1913 조건이 결정하는 논문, 강단을 먹여살리는 사이비역사 식민성 여부를 떠나 고조선 중심지가 지금의 평양이라는 주장은 적어도 남한 강단역사학계서는 식민지시대 이래 눈꼽만큼도 새로울 순 없어 조선왕조를 이성계 일파가 세웠다는 주장이랑 진배없으니 이런 말을 담은 글은 적어도 논문이라는 형태로 실릴 수는 없다. 한데 이 철 지난 주장을 시종일관 내세우는 글이 논문이라 해서 버젓이, 것도 집중으로 실리는 시대가 불과 5~6년 전에 있었으니 백주대낮 날강도 같은 이런 일은 어찌해서 가능했던가? 당시 동북아역사지도니 해서 이른바 역사왜곡 사태에 즈음해 이른바 사이비역사학 혹은 유사역사학이라는 이름의 이른바 재야사학계 공격에 시달리던 강단사학자들이 저런 주장을 담은 글들을 논문이라는 형태로 집중으로 투고하는 호시절이 있었더랬다. 왜 호시절이라 하는가? 표절이 합법화했고 결.. 2023. 6. 30. 여자만 수십명 떼로 묻은 2천500년 전 이스라엘 사막 무덤 Israeli Archaeologists Find Enigmatic 2,500-year-old Burials in the Desert Dozens of people, possibly all female, were found in an elaborate tomb in the middle of the Negev desert, nowhere near any ancient settlements. Was the goddess of crossroads involved? Israeli archaeologists find enigmatic 2,500-year-old burials in the desert***www.haaretz.com 저 Haaretz라는 이스라엘 언론은 그 지역 발굴소식을 집중으로 전하는 대표적인 .. 2023. 6. 30.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그 답을 찾아서 (3) 출세의 시작, 권적과 권정평 1 12세기에 들어서면 자기 능력을 바탕으로 개경에 올라 벼슬을 살던 안동권씨가 사료史料에 나타난다. 권적(權適, 1094~1146)과 권정평(權正平, 1085~1160)이라는 인물이 그들이다. 둘 다 묘지명이 현재 전해지고 있어 가계와 생애를 어느 정도 복원하는 것이 가능한데, 와 에 모두 등장하는 권적을 먼저 살펴보도록 하자. 의종毅宗 2년(1148) 작성된 「권적 묘지명」(국립중앙박물관 소장)에서는 권적의 가계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공은 안동부安東府 사람이다. 증조할아버지[曾王父]는 호장戶長 배융교위陪戎校尉인 휘諱 균한이고, 할아버지[大王父]는 정조正朝에 추봉된 휘 좌섬佐暹이며, 아버지[王父]는 검교태자첨사檢校大子詹事인 휘 덕여德輿이다. 권적의 증조부 권균한은 에 권행의 증손이자 우일품별장右一品別將.. 2023. 6. 29. 번역과 반역 번역은 반역이다. 번역은 매양 그 너머를 미지로 몰아넣기 때문이다. 불경佛經. 우리가 아는 불경은 번역이 누층한 결과물이다. 이른바 원전은 팔리어 아니면 산스크리트어다. 이를 구마라집과 현장 등의 무수한 역경승들의 간난을 거쳐 외국어인 한문으로 태어났다. 이 땅 한반도는 그것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해 이해한다. 중역을 넘어 삼역이다. 이런 고통에 불면의 밤을 지새운던 자 중에 일부가 괘나리 봇짐 싸들고 인도로, 인도로 갔다. 거기엔 번역 넘어 오리지널이 있으리란 확신을 안고 말이다. 하지만 그리 애타게 찾은 부처님 목소리는 결국은 내 곁에 있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스스로를 위로한 이가 원효다. 원효는 행복했을까? 죽는 날까지 그는 천축을 바라보며 절규했으리라. 부디 다음 세상엔 개돼지도 좋으니 천축에서.. 2023. 6. 29. 초거대 사찰 옆에 있어 억울한 미탄사, 누군가 저택을 희사했다? 미탄사味呑寺라는 사찰은 꼴랑 한 번 모습을 들이밀고는 영원히 사라지고 만다. 것도 역사상 저명한 인물을 소개하는 자리에 곁다리로 잠깐 고개를 들이밀었다가 말이다. 삼국유사 권1, 기이紀異 1편, 신라시조 혁거세왕 이야기에 이르기를 ‘최치원은 본피부 사람이다. 지금 황룡사 남쪽 미탄사 남쪽에 [그가 살던 집] 옛 터가 있다. 이것이 최후崔候(최 문창후-최치원)의 옛집이 분명하다.’ 이것이 전부다. 실제 미탄사 자리가 어딘지는 실상 오리무중이었다. 다만, 황룡사 남쪽이라 했고, 또 그 남쪽 인접 지점 드넓은 경주평야 한가운데 누가 봐도 신라시대 흔적인 삼층석탑이 우람하게 있어 이곳이 미탄사 터일 것이라는 심증만 있었다. 그런 심증은 이후 이 일대에 진행한 발굴조사를 통해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포착됨으로써 .. 2023. 6. 29. 손대지 말란 건 모름지기 손을 대야 하는 이유가 있다 나는 우리 문화재를 망치는 대표적 고질로 실체도 없는 원형 고수 뒷다리 잡기와 더불어 신주단지 애물주의 를 매양 꼽거니와, 특히 후자와 관련해선 매양 반문하거니와 손 대면 어때서? 하거니와 저 걸상 의자만 해도 그렇다. 저것이 어찌하여 백년이 지난 지금도 불쏘시개로 가지 않고 살아남았는지 경외는 한다만 만지지 마시오 Please do not touch 라는 경고문이 놓여 있길래 보자마자 짜증나서 치워버렸다. 묻는다. 만지면 어때서? 치워 버리고 맘대로 어루만지며 사진 맘대로 찍었다. 물론 저 경고가 표방하는 정신 자체까지 내가 폄훼하고픈 생각은 없다만 그렇다고 만지지 않는 데서 없던 경외심이 생긴단 말인가? 사진 찍는데 방해만 될 뿐이다. 붙일 필요도 없다. 또 붙이려거든 관람에 방해하지 않는 데 두든 .. 2023. 6. 29. 이전 1 ··· 1728 1729 1730 1731 1732 1733 1734 ··· 3653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