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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축년대홍수, 한국전쟁을 능가하는 참상 을축년 대홍수가 한국 근현대사에 미친 영향은 한국전쟁의 그것보다 크다. (2017. 1. 17) *** 이 을축년대홍수는 내가 그 심각성, 그리고 그것이 한국근현대사에서 막중한 위치를 계속 상기하거니와, 2025년 내년이 그 발발 100주년이라, 그 심각성은 한국전쟁의 그것을 버금하거니 뛰어넘는 대사건이다. 꼭 백주년이라 해서 대대적으로 기념 추념할 사안은 아니라 해도, 이때 아니면 또 언제 하겠는가? 저 일을 새기는 기획 혹은 전시 같은 것들을 관련 기관들에서는 1년 남았으니 제대로 준비해줬으면 하는 마음 간절해서 계속 상기한다. *** related articles *** 간략히 살피는 1925년 을축년대홍수 간략히 살피는 1925년 을축년대홍수 홍수라는 고고학자 앞에서 1997년 이후 풍납토성 일대.. 2024. 1. 17.
줄행랑을 세탁한 광개토왕비, 그보다 더 정확한 삼국사기 옛적 시조(始祖) 추모왕(鄒牟王)이 나라를 세웠는데 (王은) 북부여(北夫餘)에서 태어났으며, 천제(天帝)의 아들이었고 어머니는 하백(河伯 : 水神)의 따님이었다. 알을 깨고 세상에 나왔는데, 태어나면서부터 성(聖)스러운 … 이 있었다(5字 不明). 길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가는데, 부여의 엄리대수(奄利大水)를 거쳐가게 되었다. 왕이 나룻가에서 “나는 천제(天帝)의 아들이며 하백(河伯)의 따님을 어머니로 한 추모왕(鄒牟王)이다. 나를 위하여 갈대를 연결하고 거북이 무리를 짓게 하여라”라고 하였다. 말이 끝나자마자 곧 갈대가 연결되고 거북떼가 물위로 떠올랐다. 그리하여 강물을 건너가서, 비류곡(沸流谷) 홀본(忽本) 서쪽 산상(山上)에 성(城)을 쌓고 도읍(都邑)을 세웠다. 왕이 왕위에 싫증을 내니, (하늘님이.. 2024. 1. 17.
통념으로부터의 탈피, 새로운 통념의 주입 신라를 비롯한 고려 이전 고중세사를 접근하는 첩경은 한 여자가 두 남자 이상한테서 씨를 받을 수 있다는 통념의 주입이다. 왜 자꾸 여자는 한 남자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고려 시대만 해도 이런 여자가 쌔고쌨다. 심지어 아버지 여자를 취한 아들도 흔해 빠졌다. 이것만 이해하면 미해결로 치부한 역사의 비밀 상당수를 파헤친다. 외려 이혼과 재혼이 흔한 지금이 바로 신라사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시대다. (2017. 1. 16) *** 고대사를 공부하는 이유 중 하나가 현대의 상대화다. 절대적 가치 혹은 통념 혹은 상식의 파괴다. 현재를 상대화하고 객관화하는 일, 그것이 시급하다. 말로야 이리 떠드는데 하는 짓을 보면 당대에 사로잡혀 한 발짝 진전이 없다. 내가 역사를 볼수록 신이한 것은 그것이 끊임없.. 2024. 1. 16.
1915년 흑판승미 조선사적유물조사복명서 서문 서언 우리 상대에 일한 교섭이 빈번했다는 것은 우리 상대사를 연구할 때 우선 주의해야 한다고 하지만, 역사서에서 빠뜨리거나 오류가 있어 이것을 상세하게 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조선사에 그 자체에서도 아직 해결해야 할 것이 적지 않다. 이번 승미勝美의 출장 목적은 그 실지를 답사하여 고고학·역사지리학 등의 방면에서 그것을 관찰하고, 그럼으로써 상대사 연구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데 있다. 그래서 남선南鮮에서 여행 대부분을 보냈는데, 신라·임나 땅인 경상남북 양도는 2~3개군을 제외하고 거의 답사했으며, 특히 낙동강 유역 섬진강 연안 및 진해만 부근을 정밀 조사하였고, 우리 상대上代 문명과 지대한 관계가 있는 백제 땅이 충청남북 전라남북 4개 도에 걸쳐 있었고, 또한 그 중요한 지점을 지나, 금강 유역 .. 2024. 1. 16.
[대물大物 이야기] 거근巨根의 창시자 노애嫪毐 (1) 장사꾼 여불위 중국이 기나긴 춘추전국시대를 지나 서쪽 변방 진秦이 통일왕조를 이룩하는 데 터전을 닦은 이는 소양왕昭襄王 혹은 약칭 소昭王으로 일컫는 군주라, 그가 닦은 터전을 토대로 시황제 시대에 이르러 마침내 분열한 중국 대륙을 하나로 통일했다. 소양왕은 무엇보다 재위기간이 길어 기원 306년에 보위를 이어 기원전 251년에 사망했으니, 반세기를 넘는 기간 안정된 국정을 운영했다고 평가된다. 한데 재위기간이 길어지면서 그에게도 고민이 있었으니 후계 문제였다. 태자가 있었지만 그의 재위 40년째에 그만 죽어버리니 그 다음 아들 안국군安國君을 태자로 봉했다. 이 안국군이 훗날 아버지 뒤를 이어 왕이 되니 효문왕孝文王이라 일컫는 이다. 이 안국군한테는 이미 아들이 스무 명이 넘게 있었다. 한 여자한테서 저리 많은 아들을 .. 2024. 1. 16.
늙어야 비로소 아는 30대 그래 어찌 나 하나로써 일반화하겠는가? 하지만 나만 아니라 주변을 봐도 이후 펼쳐지는 인생은 이 삼십대에서 결딴 난다. 학문하는 놈들? 볼짝없어 이 삼십대에 벌어놓은 것으로 생평을 울거먹고 살 뿐이다. 내가 그렇고 주변을 봐도 다 그렇다. 30대 탱자탱자한 놈이 뒤늦게 정신차려 맹렬 정진해서 40대에 공부한다?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40대에 정신차리는 놈 세상을 망친다. 그만큼 30대는 전체 삶을 결딴하는 획기다. 앞으로 내가 뭘 먹고 살 것인가는 오직 이 30대에 결판날 뿐이다. 나를 돌아보면 저때는 미쳐서 살았다. 그래서 건강을 해쳤지만, 기고 만장하여 온 세상이 내 발 앞에 엎드린 듯한 기개로 산 시절이었다. 방황? 그런 지랄은 20대로 집어쳐야 하며 회의? 그딴 지랄할 시간이 어딨단.. 2024.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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