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1909 300년전 담당 공무원이 증언하는 어살 고기잡이의 고통 병술년 (1706, 숙종 32년 2월 26일) ○ 수부壽夫 외숙부께서 오셨다. 지금 기로소耆老所 어살의 감관監官으로 계신데, 어살이 있는 곳은 인천이다. 어부들의 고기 잡느라 고생하는 실상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바닷가의 조수가 물러나면 바닷물과 물가 언덕의 거리가 수십 리나 되는데 어살은 그 중간에 설치되어 있다. 조수가 밀려와 물과 언덕이 모두 평탄해지면 어살은 까마득히 멀고 드넓은 곳에 잠겨있어 식별할 수 없다. 조수가 물러날 때는 너무나 빨라 순식간에 바로 다 없어지기 때문에 물고기들이 파도를 따라 오르내리다가 모두 어살 안에 걸려든다. 그러면 곧 감관이 격군을 인솔하여 어살로 들어가 거두이 나오니, 세속에서는 이를 '관수觀水'라고 한다. 하루 중에 두 번 조수가 일어나는데, 조수가 밤이나 새벽에 .. 2023. 5. 31. "집을 지어라" 건축재상 남구만 (병술년, 1706, 숙종 32년 2월) 25일 주동 남 참판 어르신이 견여를 타고 아버지(엄집) 찾아와 밤을 새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가셨다. 남 참판 어르신은 영사 남구만의 9촌 아저씨이다. 남구만 재상의 일에 대하여 남 어르신이 말씀하시기를, "남구만 재상은 집 짓는 것을 좋아하는 버릇이 있어 도처에 집을 지었네. 결성結城(충청 홍성)은 대대로 살던 곳으로 큰 집이 있는데, 구성駒城(경기 용인)의 묘소 아래에도 큰 집을 지었네. 비파담琵潭潭(경기 용인)에도 집이 있는데 물가에 너무 가까이 있는 것을 싫어하여 물가와 거리가 조금 먼 곳에 새로 집을 짓기 시작하였네. 공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수원에도 민가를 사서 종을 두어 지키게 하고, 경성 동쪽 박 사인朴舍人의 골짜기에도 그곳의 수석水石을 좋아하여 초.. 2023. 5. 31. 왕궁 왕릉 종묘 사찰을 하나로 묶는 그랜드디자인 왕릉에 대한 이해의 출발은 왕궁이다. 왕궁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왕릉이 안보인다. 둘은 왕이 거주하는 집이다. 나와바리가 다를 뿐이다. 왕궁은 살아있는 왕의 독점적 구역이요 왕릉은 죽은 왕들의 조차지다. 이 둘이 만나는 접점이 종묘다. 종묘는 두 가지를 한 군데로 봉합한다. 이런 이해는 사찰에 대한 그것에도 그대로 관통한다. 사찰은 부처님의 집이다. 그 집은 불교 도입 초창기엔 생전의 집(대웅전)과 사후의 집(탑파)가 착종하다 고려시대 이후엔 급속도로 대웅전 중심으로 재편한다. 탑은 사라졌는가? 대웅전으로 통합됐을 뿐이다. 탑이 애초에 중국에 상륙했을 적에 그것을 원묘圓廟와 같은 용어로 번역하곤 했으니, 이는 탑파가 지닌 원초적 의미가 추모에 가 있었음을 증명한다. 그런 廟로서의 탑파가 훗날 대웅전 하나.. 2023. 5. 31. 일제시대의 지식인 연재에 붙이는 말 사실 이 연재는 목적이 일제시대 사셨던 분 학력 검증이 목적이 아니다. 필자는 지금 이 작업을 온라인에 올라있는 정보를 토대로 작업을 하고 있는데 오류가 나올 가능성이 몇 가지 있다. 1. 첫째는 고인의 프로필을 올리는 측에서 일제시대 구제교육 시스템을 잘 모르고 올리는 경우. 이런 대표적인 예가 전술한 바와 같이 고보의 문제이다. 많은 기록에서 고보를 고등학교로 착각하는데 당시 살던 분들은 다르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일제시대 고보가 대전 말기에 중학교가 되었다가 해방이후 고등학교로 승격되는데 이렇게 이름이 자꾸 바뀐 것도 혼란의 이유가 된다. 이를 정확히 알고 기록을 유지하면 별문제 없을 텐데 온라인상의 기록 상당수가 이 부분에 둔감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2. 둘째는 온라인 정보 자체.. 2023. 5. 31. 일제시대의 지식인: [4] 양주동 선생 일제시대 프로필을 보면, 그 시대 구제교육제도를 잘 인식하지 못하고 정리해 놓은 것이 많이 보인다. 예를 들어서, 앞에 이병철 선생의 경우에서도 예를 들었지만, 조선의 고보를 졸업한 경우에는 죽었다 깨어나도 대학으로는 바로 진학이 안 된다. 중졸 학력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그 다음 프로필에 대학이라고 써 있다면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학 전문부일 가능성이 높다. 대학 전문부를 나오면 고등학교 학력이 되므로 그 다음에는 물론 대학으로 진학이 가능했다. 이 경우 일본의 대학 전문부였다면 대학본과 진학도 어렵지는 않았을 것 같다. 조선의 고보를 나온 후 바로 대학이 나와도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는 것은 고보를 우리가 고등학교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인데, 앞에서 여러 번 썼지만 고보와 대학 사이에는 고등학교가 .. 2023. 5. 30. 일제시대의 지식인: [3] 이병철 (ft: 데츠카 오사무) 삼성 창업자 이병철(1910~1987) 선생에 대해 알아보자. 한글 위키에 의하면 선생의 일제시대 프로필은 다음과 같다. 1919년 3월 한학 수학을 인정받아 진주군 지수면에 있는 지수공립보통학교 3학년에 편입했다. 1920년 11살에 지수공립보통학교 4학년 당시 어머니의 친정이 있는 경성의 수송공립보통학교로 전학을 갔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 심한 경상도 사투리 때문에 경성 지역 학생들과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곧 학교 생활에 적응, 중동중학교에 진학한 후에는 학습진도가 올라 우수한 성적을 거두게 된다. 중동중학교를 졸업한 후 1929년에 와세다대학교 정치경제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시절 이병철은 공부에 열중하고 스스로 충실하게 생활했으나, 1학년 때 건강 악화로 쉽게 지치고 조금만 책을 읽어도.. 2023. 5. 30. 이전 1 ··· 1772 1773 1774 1775 1776 1777 1778 ··· 3652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