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19573 里와 호구戶口 조선후기 리里는 도대체 몇 호가 기준이었을까? 오늘날 장성 황룡면 아곡리는 《세조실록》에는 소곡리小谷里로 나오고 조선후기에도 오래도록 소곡리였다가 정조 연간에 소곡리와 북문리, 하남리 셋으로 나뉘었다. 북문리는 암탉골이라는 곳으로 탁곡卓谷으로 표기했는데, 아곡리 자동차캠핑장 주차장에 사창社倉이 만들어지고 그 북문 쪽이라고 하여 북문리가 되어 '북너메'로 불린다. 하남리는 우리집 하남정사가 있어서 붙은 이름으로 하남정사와 아래 작은집 입재立齋-나중에는 성재省齋로 바뀜-를 이르는 마을이름이다. 호제노호(戶第奴戶)까지 포함해도 모두 6집 정도인데, 하나의 리가 된다. 도통 알 수가 없다. 사진은 1789년 《호구총수 戶口總數》 다. 2021. 11. 30. 진상품, 힘 있는 고을이 만만한 이웃에 떠넘긴 고역 진상품을 지역 특산물이라고 홍보하는 자치단체가 허다하다. 그러나 실상을 알면 그런 소리 못한다. 진상품은 힘없는 동네의 설움일 뿐 특산물과는 상관이 없다. 각 고을에서는 월령月令 진공품이 정해져 있어서 매달 이를 진상해야 했다. 힘 있는 고을은 쉽게 구하고 변질될 우려도 없는 쌀 따위를 바치는 것이고 힘 없는 고을은 변질되기 쉽고 구하기도 어려운 것을 바쳐야 했다. 심지어는 바다를 끼지 않은 산군山郡 진상품에 조기도 있었다. 고향 장성이 오늘날은 폐기물처리업체 따위만 가져오지만, 조선 시대에는 힘이 엄청 세서 진공품을 하나하나 이웃 고을에 떠넘겼는데, 헌종 때에 이르면 죽력을 만드는 청대죽靑大竹 25개와 2년마다 생록生鹿 1마리만 바치면 되었다.-저 청대죽도 얼마 뒤에 담양에 토스했다. 나주나 담양을 보.. 2021. 11. 30. 이 동물의 이름은? '중국 고대 청동기-신에서 인간으로' 라는 특별전이 국박에서 열려 관람했다. 특별전에 나온 청동기 중에 아래 동물이 시선을 끌었다. 그런데 어떤 동물인지 이름이 붙어 있지 않았다. 청동기 이름은 '동물모양 술통'. 이 동물이 무슨 동물인지 나는 안다. 이 동물은 다름 아닌 물소의 한 종류로 학명은 Bubalus Mephistopheles라 한다. 은허殷墟 유적에서 나온 동물 뼈 중에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이 물소다. 지금은 멸종하고 없다. 동남아 지역에 이 녀석 사촌쯤 되는 놈이 지금도 살고 있긴 하다. 필자의 연구실 블로그: http://shinpaleopathology.blogspot.com/ 2021. 11. 28. 너무나 쉬워진 해외 강연 COVID-19 판데믹이 시작되기 이전만 해도 해외강연 한 번 하려면 엄청나게 힘들었다. 일단 무조건 비행기 타고 현장으로 출동해서 당일 사람들이 모여야 강연이 되건 어쩌건 했으니까. 따라서 주최측도 많은 비용을 써야 비로소 유치가 가능했던 것이 해외강연이었다. 판데믹이 없었으면 수십년은 걸렸을 변화가 대학가에 몰려온 것 같다. 어제 필자는 해외강연을 하루에 두 차례 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하나는 일본, 또 하나는 인도 측 부탁으로 시행한 것이었다. 둘 중 하나는 시간을 잘 못 알아 청중을 죄송스럽게도 장시간 기다리게 만들었지만 (좌장의 급한 메일 연락으로 비로소 내가 시간을 착각한 것을 알았다). 예전이라면 하루에 일본에 하나, 인도에 하나, 이런 강연 스케줄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판데믹 이전에는 .. 2021. 11. 28. 한국과 일본: 公田의 역사를 생각하며 우리 역사에서 후삼국시대의 "호족"이라는 것이 일본사에서 "지방의 반란과 무사의 성장"에 해당하는 것 아닐까? 우리 역사를 보면 항상 드는 생각이 과연 전시과체제와 과전법체제라는 것이 한국사의 흐름을 제대로 반영한 시스템일까..말하자면 해체되어 가는 公田을 인위적인 방법으로 자꾸 부활시키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역사상 일본에서 公田이 해체되어갈 때 한국도 비슷하게 해체되어 가는 흐름이었던 것 같은데 이것을 인위적으로 자꾸 가로막는 것이 전시과 체제와 과전법 체제 같아 보인다. 이런 흐름이 일본사에서도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긴 할 것 같지만 우리는 이런 흐름이 시도에만 그친 게 아니라 실제로 인위적으로 公田을 재창출해 내고 사전과 이의 집적체인 장원을 억제하는데 큰 역할을 한 것 같더라는 생각.. 2021. 11. 28. 죽은 유튜브를 살린 BTS, 몹시도 씁쓸한 문화재 나는 내 세대 혹은 비슷한 연배 기자보다는 이른바 sns를 무척이나 많이 이용하는 편이라 오죽하면 업무시간 사적인 sns 활동이 다섯 가지 해고 사유 중 첫번째로 거론되었겠는가? 그럼에도 이상하게도 유튜브엔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한 데다 그 어중간에 잠깐 이것도 해볼까 해서 손을 댔지만 기대한 만큼 호응도 없었으니 흐지부지 실상 계정만 살려놓고는 중단하고 말았다. 그나마 내가 장점을 발휘할 만한 분야가 문화재라 그쪽 소재로 이것저것 시도했지만 기껏해야 편당 조회수는 백을 넘지 못했고 구독자도 사돈의 팔촌까지 다 우겨 넣어서 줄곧 400 언저리에서 변화가 없었으니, 문화재는 제아무리 잘해도 ebs 교양프로 수준을 뛰서넘지 못한다는 게 내 판단이다. 그런 가운데 언제인지 내 서재를 침범한 족제비를 때려잡은 .. 2021. 11. 27. 이전 1 ··· 1772 1773 1774 1775 1776 1777 1778 ··· 3263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