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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최신 발굴 성과 by 유성환 바빠서 요며칠 업데이트를 못한 사이에 이집트에서는 여러 건의 발굴 소식이 있었습니다. 모처럼 시간이 나서 이들 발굴 소식을 페친 여러분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양머리 미라 2,000개가 무더기로 발굴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아비도스(Abydos)에 위치한 람세스 2세(Ramesses II: 기원전 1279-1213년)의 장제전(葬祭殿, mortuary temple)에서 뉴욕대학교(New York University) 고대문명연구소(Institute for the Study of the Ancient World.) 탐사팀에 의해 미라 처리된 양머리 미라 2,000여 개가 발굴되었습니다. 아비도스는 명계의 왕인 오시리스(Osiris)의 성지였기 때문에 이곳에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조성한 장례 기념물이.. 2023. 3. 29.
새로운 황도 12궁도의 복원 by 유성환 Esna 위치 에스나 · Esna City, Esna, 끼나 이집트Esna City, Esna, 끼나 이집트www.google.com 이집트-독일 고고학팀이 5년 간 진행한 복원작업 덕분에 켜켜이 쌓인 먼지·그을음과 같은 오염물에 오랜 세월 가려져 있었던 황도 12궁도 부조가 원래의 색상과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이번에 새롭게 복원된 황도 12궁도는 에스나 Esna에 위치한 크눔 신전 Temple of Khnum의 열주실/다주실 Hypostyle Hall 천정에 새겨져 있습니다. 앞으로 에스나의 크눔 신전을 방문하실 페친 여러분들께서는 아름답게 복원된 황도 12궁도를 감상하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복원작업은 2018년부터 시작되었으나 2020년 COVID-19 팬데믹으로 잠시 중단되었.. 2023. 3. 29.
악티움 해전의 재현 by 유성환 "옥타비아누스는 자신이 이성의 신 아폴론을 받드는 전사로서 야수적이고 술 취한 비이성을 상대로 싸움에 나섰다고 공언했다. 그는 그 전쟁이 동양 대 서양, 도덕 대 부도덕, 남성다움 대 사악한 여성의 일대 격돌이라고 주장했다. ... ... 클레오파트라는 자신을 로마에 대항하는 세력의 지도자이자, 서방에서 온 오만한 침략자에 맞서는 정의로운 무장봉기의 옹호자라고 주장했다. 거기서 더 나가아, 구세주이자 이시스 여신의 화신인 그 자신의 승리는 새로운 황금시대를 불러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토니우스는 자신이 클레오파트라의 배우자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아시아를 정복한 디오니소스 신이 자신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고 주장했다. 또 옥타비아누스는 자신을 질투할 뿐만 아니라 불경스럽기 짝이 없는 자라고 주장했다. .. 2023. 3. 29.
신라新羅 국모묘國母廟로서의 신궁神宮 新羅 國母廟로서의 神宮 Ⅰ. 문제의 제기 : 왜 다시 神宮인가? Ⅱ. 始祖 誕降之處 蘿井 Ⅲ. 신라 神宮과 주변 문화권의 神宮 Ⅳ. 결론 : 新羅 神宮은 國母廟임을 확인하며 김 태 식 始祖가 誕降한 나을奈乙에 세웠다는 신라 神宮은 主神이 누구인가를 둘러싼 첨예한 논란이 있다. 이를 해명하기 위해 우선 赫居世가 탄강한 나정蘿井에 대한 검토를 시도했다. 이를 우물로 간주하지만, 실상 蘿井을 우물로 볼 증거는 없었다. 오히려 그것은 井자 모양으로 구획된 땅을 지칭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드러난다. 특히 蘿라는 말로 볼 때, 이곳은 덩굴식물이 우거진 곳일 수도 있었다. 神宮은 종묘宗廟의 일종이었다. 한데 종묘로서의 신궁은 신라뿐만 아니라 고대 중국에도 있었으며, 고구려에도, 그리고 백제에도 있었다. 나아가 고대 .. 2023. 3. 29.
여행은 다리 떨릴 때 말고 가슴 떨릴 때 떠나라 연합뉴스 K컬처아카데미 여행자학교 3기 제3강은 저명한 여행작가이며 파워블로거인 '페이지' 배선희 작가를 모셨다. 그는 어제 시종일관 여행의 중요성을 설파하며 그 실행은 과감해야 함을 두 시간 내내 열토했다. 누구나 공감하지만 누구나 그 실행이 어렵다. 그가 한 말 중에 유난히 저 말이 박힌다. 여행은 다리 떨릴 때 떠나지 말고 가슴 떨릴 때 떠나라. 참 좋은 말이나 결행이 쉽지 않다. 그러면서 기록의 중요성을 말한다. sns 활동을 하며 자기를 과시하라 주문한다. 이 말을 받아 강의를 클로징하며 내가 한마디 보탰다. 사람은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이미 관종인 사람과 관종이기를 준비하는 사람. 모든 인간은 관종으로 태어났다. 2023. 3. 29.
4.19는 왜 학생이 주도했나 해방이후부터 이승만 정권 말기까지 학교수와 학생수가 급증하고 문맹률이 떨어지면서 이전과는 다른 정치적 상황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1960년 당시, 45년과 비교하여 대학생수는 10배가 늘어나 있었다 (10만명). 이때쯤에는 전국적으로 고등학생이 16만명 정도로 늘어나 있었다.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이 늘어나니 당연히 정치적 관심이 높아졌다. 1960년 당시 "사상계" 잡지 출판 부수는 놀랍게도 5만-8만부 였다고 한다. 60-70년대에 학생시위가 정치국면을 주도하게 된 이유는 고학력자가 그 위 세대에는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80년대 이후 바뀌기 시작했다. 이때도 여전히 학생시위는 많았지만 이전과는 받아들여지는 무게가 바뀌기 시작했는데, 고학력자가 중년층에서도 늘기 시작하면서라고 할 .. 2023.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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