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19473 광교산이 품은 서봉사지 2.9 x 2.4미터 석축기단의 실체 카카오맵당신을 좋은 곳으로 안내 할 지도map.kakao.com 용인 서봉사지瑞鳳寺址를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 중 하나가 여타 사찰 터가 그렇듯이 입지조건이라, 어떤 자리에 어떻게 똬리를 틀고 있느냐가 중요하거니와, 예서 관건은 저와 같은 산중 사찰이 대체 무엇으로 먹고 살았느냐 하는 의뭉함을 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저와 같은 사찰이 창건 혹은 번성하던 무렵 저에는 적지 않은 승려와 보살이 상거했을 것이로대, 그들이 이렇다 할 농토도 없는 데서 초근목피로 연명할 수 없는 노릇이다. 무엇인가 물주가 있었을 것이로대, 그 영업기반이 무엇인지 현재로서는 가늠하기가 쉽지는 않다. 우선 서봉사瑞鳳寺라는 이름을 풀어보면 실은 역전 앞과 같은 표현이라, 봉황 중에 서징瑞徵 아닌 것이 없으리로대 굳이 瑞한 鳳.. 2021. 4. 9. 복사꽃에 물든 경복궁 경복궁엔 사쿠라가 없다. 일제 잔재라 해서 궁궐 안 사꾸라는 다 주워뽑았다. 다른 데선 지고 없는 사꾸라가 매화와 함께 사멸한 경복궁을 찾았다. 복사꽃 몇 그루가 한창이다. 이래서 복숭아꽃을 미인에 견주어 그에 비견하는 미인을 도화녀桃花女라 하지 않았겠는가? 아미산은 절정이 조금 이르다. 모란은 금방이라도 망울 터줄 기세라 두어 송이 백모란 서둘러 꽃망 터뜨렸다. 옥매회가 한창이다. 살피니 할미꽃이라 할미가 가장 좋아하는 데는 미등이라 무덤이다. 할미꽃은 주검꽃이다. 이것도 요샌 약이 된다 해서 뿌리까지 다 뽑아가버려 야생이 남아돌질 아니한딘. 참콫 지기 시작하면 거짓꽃 철죽 시즌이라 독성이 매우 강해 저 꽃이파리 먹었다간 목숨부지 힘들다. 무슨 꽃인지 아지 못하겠으나 주변을 환하게 한다. 박태기 박치고.. 2021. 4. 8. 영상 | 전곡선사박물관 관람 리뷰(1탄) 뮤지엄톡톡 | 돌 끝에서 나오는 힘! 전곡선사박물관 드디어 전곡선사박물관 리뷰 영상을 올립니다. 3월 17일에 다녀왔으니 거의 한달이 되었네요. 영상을 만들면서 다시 한 번 느낀거지만, 누구랑 박물관을 보느냐가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처음 경험하는 그 공간을 좋게, 혹는 그저 그렇게 기억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행운입니다! 전곡선사박물관을 이한용관장님과 함께 봤으니깐요.ㅎㅎ(무엇이든 척척 리승수군도 같이!) 인류 진화의 시기 구분을 칼같이 자를 수는 없지만, 최대한 자료를 참고하려고 했습니다. 아직도 새로운 자료가 나오고 있어 계속 수정보완중이라고 합니다. 와우! 편하게 영상 봐주시고, 혹 의문이 가거나 바로잡아야 할 부분이 있다면 말씀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21. 4. 7. 서봉사 현오국사가 있던 자리 이와 관련한 자세한 소식은 이 블로그에 용인시 담당 학예연구사 이서현 선생이 정리한 아래 보도자료를 참고하기로 하시고 용인 서봉사지 현오국사탑비 원위치 단서 확인 용인 서봉사지 현오국사탑비 원위치 단서 확인 용인 서봉사지 현오국사탑비 원위치 단서 확인 - 용인시, 5차 발굴조사서 중요한 근거 확보…추가 조사와 연구 진행할 계획 - 용인시가 서봉사지 5차 발굴조사에서 보물 제9호인 현오국사탑비의 historylibrary.net 이에 대한 내 생각은 현장 탐문 결과를 바탕으로 추후 정리하기로 하되, 우선은 이번 발굴성과를 사진으로나마 감상해 주기 바란다. 2021. 4. 7. Original location of 12th century Goryeo-era famous Buddhist monk's monument confirmed Archaeologists have found an important clue to reveal the original location of the Stele for State Preceptor Hyeon-o at Seobongsa Temple Site, Yongin, Gyeonggi-do Province. This monument, which recorded the history of a famous Buddhist monk named Hyeon-o (1125~1178) during the Goryeo Dynasty period in the 12th century, is still standing on the temple site, but its original location has been unkn.. 2021. 4. 7. 동국이상국집을 읽다가 ㅡ 나는야 개경에 살리라 고려시대 분들은 지금의 우리보다도 개경을 떠받들고 거기서 살고 싶어했다. "개경 or nothing"이랄까. 그래서인지 고려시대엔 개경에 살던 고위층을 연고지로 보내버리는 '귀향형'이 꽤 무거운 벌이었다. 반면 지방관이나 유배객이 그 지역에서 죽으면, 유해를 거의 반드시 개경 근처로 모셔와 장사지냈다. 2021. 4. 7. 이전 1 ··· 1919 1920 1921 1922 1923 1924 1925 ··· 3246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