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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관은 왜 실패했는가"에서 출발한 세종 이도의 음모 정부가 편찬한 조선 왕대별 공식 편년체 역사인 조선왕조실록 중 유독 세종실록에는 지리지가 붙어있다. 세종은 왜 이 지리지를 편찬했을까? 아니, 세종시대를 정리하며 조선왕조는 왜 이 지리를 굳이 넣었을까? 단순히 조선왕조가 개창하고서 이제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 그것을 정비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그래서 지리지 말고도 다른 志들을 편찬했다고? 나는 한국 역사상 가장 영토 야욕이 컸으며, 이를 위해서는 음모를 마다 않은 세종한테서 그 음모술수를 배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어떤 음모인가? 목적을 위해서는 그는 수단방법 가리지 않았지만, 그것은 언제나 명분을 동반하는 각본에 기반했다. 간단히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그 논리를 만들었다. 지리지는 중국이 치고 들어올 때를 대비해 짠 시나리오다. 북방으로 진군해 4군6.. 2022. 12. 26.
함길도가 폭로하는 세종실록지리지의 음모 세종은 함경도를 병합하고 나면 명나라로부터 간섭이 있지 않을까 항상 두려워했던 것 같다. 윤관의 비가 두만강 건너 선춘령이라는 구절도 그렇지만, 이 땅이 역사적으로 한반도 국가의 땅이라는 점을 어떻게든 증명하려 했다. 이런 프로파간다의 도구로 사용된 것이 세종실록 지리지의 함경도에 대한 설명이다. [A] 함길도는 본래 고구려의 고지(故地)이다. 고려 성종(成宗) 14년 을미에 경내(境內)를 나누어 10도(道)로 하고, 동계(東界)로써 삭방도(朔方道)를 삼았는데, 함주(咸州) 이북이 동여진(東女眞)에게 함몰되어 예종(睿宗) 2년 정해 【송나라 휘종(徽宗) 대관(大觀) 원년(元年).】 에 중서 시랑 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 윤관(尹瓘)을 원수(元帥)로 삼고,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 오연총(吳延寵)을 부원수(副.. 2022. 12. 26.
조선전기 변방 생활의 일상 고사리진에서 자다〔宿高沙里鎭〕 성현成俔(1439~1504), 《허백당집虛白堂集》 제13권 시詩 산에 기댄 성첩이 강 언덕에 자리하고 / 石堡憑山枕水崖 성안엔 수십 가구 백성들이 사는 이곳 / 城中數十吏民家 오랑캐 막느라 밤마다 야경 돌고 / 防胡夜夜鳴刁柝 조 심으려 사람마다 자갈밭 개간하네 / 種粟人人墾石沙 숲속엔 조롱조롱 신 자두 열렸는데 / 苦李林間多結子 바위 아래 고사리는 이미 세어 버렸네 / 芳薇巖底已剛芽 변방 지역 경물이란 어찌 이리 암담한지 / 邊庭景物何愁慘 나그네 시 지으며 자꾸만 탄식하네 / 過客詩成屢發嗟 [주-D001] 고사리진高沙里鎭 :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대동여지도》에는 고산리高山里로 되어 있다. 평안도 강계에 속한 거진巨鎭으로, 병마첨절제사를 두었다. [주-D002] 間 : 대본.. 2022. 12. 25.
허백당虛白堂 성현成俔(1439~1504)이 증언하는 광개토왕비 황성교를 바라보다〔望皇城郊〕 성현成俔(1439~1504), 《허백당집虛白堂集》 제13권 시詩권 긴 강가에 너른 평야 아득하게 펼쳐지고 / 平郊渺渺長江湄 산이 돌고 물 굽이져 경치가 뛰어난데 / 山回水複多淸奇 어느 시대 영웅이 여기 와서 할거하여 / 何代英雄來割據 지금까지 황성의 기내畿內라고 불리는가 / 至今猶謂皇城畿 흑룡강 왕기 마치 철과 같이 견고하니 / 黑龍王氣堅如鐵 속저의 큰 사업이 마침내 쇠퇴했고 / 屬猪大業冬業衰 하찮은 강좌로는 대적할 수가 없고 / 區區江左抗不敵 중원이 복속되어 오랑캐 땅 되었구나 / 中原左衽皆胡夷 왕업 근거지에 도읍을 정한지라 / 興王之地大都邑 높은 성첩 큰 궁궐이 험한 산에 기댔으니 / 崇墉傑殿憑險巇 백만 공경과 장수 집안에서 / 公侯將種百萬家 부귀영화 누리면서 좋은 시절 .. 2022. 12. 25.
기생의 본고장, 그 좋다는 평안감사 허백당 성현成俔이 증언하는 신년하례회 설날 기록하다 2수. 정미년(1487, 성종18)에 공이 여전히 관서에 있으면서 지었다. 〔元日記事 二首 丁未年公猶在關西作〕 성현成俔(1439~1504), 《허백당집虛白堂集》 제12권 시詩 십여 년 짐 싸들고 변경으로 나돌다가 / 十年書劍走關河 올해는 또 평양에서 새해를 맞았어라 / 又見箕城換物華 장경사의 버들에는 눈이 아직 남았는데 / 殘雪尙餘長慶柳 새봄이 온 대동강에 물결이 또 이는누나 / 新春又發大同波 이른 아침 고을 원들 모두 와서 하례하고 / 早朝鵷鷺盈庭賀 저녁 무렵 친구들이 술병 들고 찾아오네 / 薄暮親朋載酒過 한 도 맡아 다스리니 비록 중한 임무지만 / 分閫保釐雖重任 오운과는 멀고도 먼 해서의 물가로세 / 五雲遙阻海西涯 객관에 귀인들이 비단 방석 깔고 앉고 / 華館犀龜鎭錦茵 기녀들이 세 줄로.. 2022. 12. 25.
한국 고대사의 기록이 빈약하게 된 것은 통일신라에 제대로 된 역사서 한권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으로 본다. 이때 뭐라도 나왔으면 이름이라도 남아 있어야 하고,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쓸 때쯤 뭐라고 그 편린이라도 남아 있어야 하는데, 삼국사기를 쓸때 김부식 앞에는 통일신라시대에 제대로 편찬된 관찬서 하나 놓여 있지 않았다는 게 필자 생각이다. 통일신라시대와 같은 시기, 일본에는 소위 6국사가 편찬되었는데 이 시기 편찬된 사서 권수는 무려 190권에 달한다. 삼국시대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통일신라 기록은 뭐라도 있어야 할 것 아니겠는가? 이 시기 기록은 내가 보기엔 관찬사서가 있었는데 태워먹은 게 아니라 편찬을 아예 안 한 것이다. 한국 고대사 문헌의 빈약함을 김부식에게 뒤집어 씌우는 경우가 많은데, 어떻게든 한글자라도 더 남겨보려고 애쓴 그의 입장에.. 2022.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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