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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라고 다를 바 없다는 처녀 애엄마 [톡톡일본] 제도 바깥에 있는 사유리 방식 '비혼 출산' 송고시간 2020-12-05 14:13 이세원 기자 '한국은 불법·불가능' 부각됐지만 일본도 법 규정 미비 개인 간 정자 거래로 문제도 발생 [톡톡일본] 제도 바깥에 있는 사유리 방식 '비혼 출산' | 연합뉴스 [톡톡일본] 제도 바깥에 있는 사유리 방식 '비혼 출산', 이세원기자, 국제뉴스 (송고시간 2020-12-05 14:13) www.yna.co.kr 결국은 싱글맘을 바라보는 사회시각 문제 아니겠는가? 이 싱글맘이라는 게 참말로 묘해서, 사유리처럼 남자가 누구인지 그 정체를 모르는 상태에서 씨를 받아 낳은 자식을 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실제 섹스를 통해 임신해서 아이를 낳았지만 여러 이유로 아비를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저 .. 2020. 12. 5.
김우급金友伋(1574~1643)이 읊은 장성 각현사桷懸寺 일전에 장성 남창골에 있었던 노산사蘆山寺를 소개한 바 있다. 오늘은 각현사라는 절을 소개한다. 다른 기록에는 전혀 보이지 않고 추담秋潭 김우급金友伋(1574~1643)의 문집에 딱 이 시 한편만 전한다. 시에 보이는 고마산顧馬山은 고봉 기대승을 봉향奉享하는 월봉서원月峯書院 뒷산으로 그 남쪽에 고봉의 서실書室 낙암樂菴이 있었다. 오늘날은 판사등산이라고 한다. 카카오맵 당신을 좋은 곳으로 안내 할 지도 map.kakao.com 장성군 동화면 월산리 또는 남산리 들판에 있었던 절로 추정된다. 절이 오래되었다고 뻥치는 건 예나 지금이나 한가지였던 모양이다. 각현사[桷懸寺] 우연히 왔다 들판의 절간 찾아서 偶來尋野寺 한나절을 대숲 누각에서 보낸다 半日竹樓間 횃대 걸어 남루한 옷을 매달았고 椸掛懸鶉褐 문은 고마산을.. 2020. 12. 5.
오이익吳以翼(1618~1666)이 몽유夢遊한 장성 노산사蘆山寺 전근대 기록을 보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절이 나온다. 이름이 자꾸 바뀌어 한 절을 달리 표현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라진 절이 대부분이다. 김우급金友伋(1574~1643)의 《추담집秋潭集》과 오이익吳以翼(1618~1666)의 《석문집石門集》 권3에 실린 제목이 473자나 되는 〈夜初更……姑書一律以寄興〉이란 시에는 노산사라는 절이 나온다. 이 두 기록을 종합하면 장성군 북하면 신성리 남창골 몽계폭포 근처에 있었던 절이었다. 오이익이 찾았을 때 이미 절터만 남아 있었다. 〈꿈속에 노산사에서 노닐었다[夢遊蘆山寺]〉 꿈속에 찾아 들어간 노산사에 夢入蘆山寺 전과 같이 상방에 앉아있었네 依然坐上房 중과 함께 부처를 이야기하고 共僧談佛祖 학을 불러 비상하는 걸 보았지 招鶴見翱翔 폭포 근처에서 옷은 온통 젖었고 瀑.. 2020. 12. 5.
툭하면 갇혀죽는 고래, 띨빵 애니멀? 뉴질랜드서 30t짜리 고래 해변 모래톱에 걸려 죽어 송고시간 2020-12-05 11:14 뉴질랜드서 30t짜리 고래 해변 모래톱에 걸려 죽어 | 연합뉴스 뉴질랜드서 30t짜리 고래 해변 모래톱에 걸려 죽어, 고한성기자, 국제뉴스 (송고시간 2020-12-05 11:14) www.yna.co.kr 돌고래인가? 이 친구들은 지능이 아주 높아 70정도 된다나 하는 기록을 본 적 있는데, 이 친구들 저런 식으로 죽어가는 장면 심심찮게 연출하거니와, 그때마다 사람들이 고래 살린다고 처절한 사투를 벌이곤 하는 장면을 목도하곤 하는데, 저런 거 보면 그닥 머리가 좋은 동물은 아닌 듯하다. 티미한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건지. 폼새 보니, 밀물에 먹이 좇아왔다가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 된 모양이라 조난사고 아닌.. 2020. 12. 5.
《화랑세기》에 보이는 진흥왕 말년~진지왕 시대 화랑과 원화, 그 왔다리갔다리 혼란상 - 562년 5세 풍월주 사다함 사망, 6세 풍월주 세종 취임 - 568년 원화源花 부활, 29년 만(540년 기준), 미실美室 원화 취임, 연호 대창大昌 개원 - 572년 홍제鴻濟 원년 3월, 동륜태자 보명궁 개한테 물려 사망, 미실 연루, 원화 4년 만에 폐지, - 572년 풍월주 세종 재취임. 세종, 설원랑에게 풍월주 양위(양위연대는 불명, 아마 572일듯) - 576년 진흥 사망, 진지 즉위와 더불어 화랑 분열, 호국선護國仙 문노파가 독립해 설원랑의 운상인파雲上人派와 대립 - 579년, 진지 폐위 직전 진흥왕비 사도태후가 두 파를 통합, 원화 부활, 미실 원화 재취임. 미실이 설원랑을 다시 풍월주로 임명, 곧이어 문노에게 풍월주 양위 *** 이것이 화랑세기에 보이는 진흥왕 말년과 진지왕 시대에 걸.. 2020. 12. 5.
서기 2000년은 나에겐 발굴보고서와의 전투였다 흐름이 있다. 유행이 있다. 풍납토성 문제가 겨우 안정되기 시작하면서 이후 나는 또 다른 사투를 벌였다. 다름 아닌 미간 발굴보고서와의 싸움이었다. 그 주된 침공 대상은 국립박물관과 대학박물관이었다. 이 친구들 주특기가 몇십 년 지난 발굴보고서를 계속 미간 상태로 두었다는 점이었다. 천지사방 발굴만 하고 보고서 안 낸 데가 수두룩 빽빽했다. 내가 짜증을 냈다. 왜 안 내냐 물으면, 맨날 하는 말이 똑같아서 "제대로 연구가 안 돼서.."라는 말이었다. 연구가 안 된 상태에서 섣불리 보고서를 낼 수 없다는 거였다. 물론 예산이 없어서 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애초 보고서 예산은 누가 어디다 말아쳐드셨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더 웃긴 건 문화재청. 보고서 안 낸 기관과 교수들 다 고발하고 문화재 현장엔 얼씬도.. 2020.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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