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4436 [오빠를 가장 많이 닮은 동생] (1) 자매대전의 승자 문희 역사상 언니 동생이 붙은 시스터 대전大戰이 적지 않고, 그것이 때로는 피비린내를 내기도 했다. 왕자의 난을 언급하지만, 자매의 난 역시 녹록치는 않다. 전한시대 말기 황제 성제成帝를 사이에 두고 총애를 다툰 조비연趙飛燕 조합덕趙合德 자매 역시 그러했다. 비연은 동생이라 해서 합덕을 믿고 후궁으로 들였다가 나중에는 성제의 총애를 동생에게 빼앗겨 버리고 만다. 자매의 난은 내가 정확한 통계 수치가 없지만, 대개 승자는 동생이다. 나아가 이들의 쟁투는 거의 예외없이 남자 한 명을 사이에 두고 이뤄지는 까닭에 더 젊거나 어린 동생이 보통은 이기기 마련이다. 김유신의 여동생으로 역사에 모습을 들이미는 보희寶姬와 문희文姬 역시 그러하다. 이들 자매 역시 김춘추金春秋라는 걸출하면서도 잘 생긴 남자 한 명을 사이에 .. 2023. 8. 7. 나라 안 으뜸가는 정자 망양정望洋亭에 올라 회고하는 역사 by 신정일 바다를 망망하게 바라보는 정자 망양정望洋亭은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에도 있고, 기성면 망양리에도 있는데, 겸재 정선이나 송강松江 정철鄭澈(1536~1594),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1539~1609)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곳은 기성면의 망양정이다. 사라졌던 것을 새로 지은 망양정에서 지난날을 회고했다. 망양정은 원래 평해군 기성면 망양리 앞 모래사장 가에 있었다. 조선 세종 때 평해군수 채신보가 정자가 오래되어 허물어진 것을 마을의 남쪽 현종산 기슭에 옮겨 세웠다. 조선시대 정국공신 채수蔡壽(1449~1515)는 ‘우리나라를 봉래 방장과 같은 산수 좋은 신선의 고장이라 하는데, 그 중에서 관동이 제일이며 이곳의 누대를 백으로 헤아리지만 망양정이 으뜸.’이라고 극찬하였는데 이것은 망양정이 이름 그대로 바.. 2023. 8. 7. 《돈황변문교주敦煌變文校注》 저자의 토로 나는 그 당시 《돈황변문교주敦煌變文校注》의 저술 출판이 나의 승진을 가져다주기를 내심 바랐었는데, 이 책이 출판될 때 나는 이미 정교수가 되어 있었다. 《돈황변문교주》는 내가 승진하는데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고, 벌어들인 원고료도 얼마 되지 않았으며(초반에는 오히려 4만 위안을 출판사에 보내야 했다), 다만 내게 마음의 병과 허영심만 가져다 주었다. '마음의 병'이란 백만자가 넘는 분량을 만년필로 한 글자 한 글자씩 손수 적어나가야 했던 것 외에도, 조자造字와 조판, 한 번에 장장 한 달 보름이 꼬박 걸리는 교정을 여섯 차례에 걸쳐 해오는 동안 심장 스트레스의 급증으로 부정맥이 유발하여 20일 동안 병원에 입원해 '에너지'를 보충해줘야만 했던 일을 말한다. 이 '에너지'는 내가 너무 말라 살 좀 찌라고.. 2023. 8. 7. 우즈벡 답사기(8):타슈켄트 타슈켄트는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이자, 실크로드의 오래된 도시 중의 한 곳이지만, 지금은 고대의 흔적보다는 도시화가 많이 진전된 곳이다. 이제 타슈켄트에서 하루를 보내면 이번 답사도 끝이 난다. 그동안 히바, 부하라, 사마르칸트를 거치면서 고대와 중세의 많은 유적과 건물을 보고 왔기 때문에 이번 타슈켄트 답사기에서는 우즈베키스탄 국립역사박물관하고 티무르 박물관만 소개하려 한다. 우즈베키스탄 국립역사박물관의 건물 외관은 독특한 편인데, 국립역사박물관이라는 이름값치고는 규모가 큰 편은 아니다. 입장료는 50,000숨, 근데 사진 찍으려면 돈을 더 내야한다. * 우즈베키스탄 국립역사박물관 홈페이지를 찾았는데, 아쉽게도 홈페이지에는 볼 만한 콘텐츠가 별로 없다. 썸네일 언니만 예쁘다 ㅎ O'zbekiston: xa.. 2023. 8. 6. 전 국민이 일주일에 한 번은 닭고기 먹게 해주고 싶다던 앙리4세 오늘날 북한을 보면 반공교육이 필요 없다. 김정은이 나오는 사진에서도 주변 북한 사람들을 보면 못 먹고 사는 분위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조선시대가 그렇다. 조선시대는 잘 먹고 잘 산 적이 없다. 고기? 우리가 흔히 생각할 때 집집마다 닭을 키우고 돼지 키우고 소 키웠을 것 같지만, 조선시대건 고려시대건 삼국시대건 우리나라는 사육동물뼈보다 야생동물 뼈가 희안할 정도로 많이 나오는 나라다. 상당히 시대가 내려올 때까지도 사냥은 단순히 유희가 아니라 단백질 공급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생산활동이었던 셈이다. 그나마 이렇게 산과 들에 의지하여 육류를 섭취하던 조선의 시스템이 위기에 봉착한 것은 17세기였다. 이 시기에 산과 들이 개간되고 농사 지을 수 있는 곳은 몽땅 농사짓게 되면서 비로소 야생동물에 육류를 의.. 2023. 8. 6. 고대 음식의 대체재 닭과 꿩 사슴과 돼지 어느 한 쪽이 올라가면 다른 쪽 소비가 줄어든다. 조선시대 일기를 보면 한번 꿩 사냥 나갔다 하면 100마리씩 잡아왔고 이런 사냥을 한 달에도 여러 번 나갔다. 닭을 키울 이유가 없었던 셈이다. 조선시대 아마 닭은 달걀 때문에 키웠을 것이다. 일기를 보면 닭잡아 먹은 기록보다 꿩 고기 먹은 기록이 더 많고 구한말까지도 닭값보다 꿩값이 더 쌌다. 우리가 지금 보는 대규모 양계장은 일제시대에 처음 모습을 보였고 지금처럼 국민 육류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은 80년대 이후이다. 70년대까지도 닭은 "영양센터"에서 팔았다. 사슴과 돼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어차피 둘 다 평민들에게는 맛보기 어려웠겠지만, 사슴고기를 쉽게 구할수록 돼지사육은 줄어들고, 사슴이 드물어질수록 돼지 사육은 늘게 .. 2023. 8. 6. 이전 1 ··· 2086 2087 2088 2089 2090 2091 2092 ··· 4073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