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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지 않고도 본 듯 뻥깐 《주관육익周官六翼》 [뻥쟁이] 《주관육익(周官六翼)》이라는 책은 고려말에 편찬된 정치와 법제 따위를 정리한 서적으로 알려졌으나 오늘날 전하지 않는다. 《주례(周禮)》와 《통전(通典)》의 체제를 본떠서 고려의 문물제도를 정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책마다 그 저자를 달리 전하고 있어 김구용(金九容), 김경숙(金敬叔), 김지(金祉) 등 여러 명이 언급되고 있다. 《세종실록(世宗實錄)》 등지에서 고려의 답험손실(踏驗損失), 염법(鹽法), 부세(賦稅), 산장수량(山場水梁) 따위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언급되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는 삼한(三韓), 삼국, 고려 등의 역사와 지방의 연혁, 성씨 유래 따위와 관련하여 자주 인용되었다. 임란 직후 이항복 등은 《주관육익(周官六翼)》에 이런 구절이 있다고 하는데, 저.. 2020. 10. 9.
친취親嘴, 입술박치기 [한글 만세] 이런 것 한글 없었으면 어찌 표현했겠어. 친취(親嘴)가 뽀뽀였구나. 《어류수록語類収錄》에서 *** 台植補 이 외에도 주로 신체이상과 관련한 표현이 많이 보인다. 친취는 입마초다 라 했으니 입술박치기다. 2020. 10. 9.
일본의 천황 후계 시스템과 신라의 성골 진골 아들 없는 나루히토 일왕 내달 8일 후계자 책봉의식 송고시간 2020-10-09 10:09 김호준 기자 당초 4월 19일 개최하려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연기 www.yna.co.kr/view/AKR20201009029300073?section=international/all 아들 없는 나루히토 일왕 내달 8일 후계자 책봉의식 | 연합뉴스 아들 없는 나루히토 일왕 내달 8일 후계자 책봉의식, 김호준기자, 사회뉴스 (송고시간 2020-10-09 10:09) www.yna.co.kr 일본 천황가 후계구도를 보면 실은 동아시아 세계를 관통하는 그 흐름을 그대로 잇는다는 사실을 엿보게 되거니와, 저들의 새로운 천황 즉위의식이라든가 천황위 후보서열 등등이 실은 우리한테는 사라진 그 전통시대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더욱.. 2020. 10. 9.
푸틴 영감 쌍디 낳았다는 체조선수 출신 사업가 "체조선수 출신 푸틴 연인, 쌍둥이 출산 후 종적 감춰" 송고시간 2020-10-09 08:09 안용수 기자 영국 언론, 카바예바 주변 인물 인용 폭로"체조선수 출신 푸틴 연인, 쌍둥이 출산 후 종적 감춰" | 연합뉴스"체조선수 출신 푸틴 연인, 쌍둥이 출산 후 종적 감춰", 안용수기자, 국제뉴스 (송고시간 2020-10-09 08:09)www.yna.co.kr 이 아지메 여러 모로 눈길을 끈다. 첫째 러시아 리듬체조 선수 출신으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 하니 언뜻 손연재가 어른어른하고, 둘째 한때는 맨날맨날 웃통 훌훌 벗어제끼고는 근육질 자랑하며 엄한 부하나 군인들 붙잡고 엎어치기 유도 실력 자랑한 푸틴 영감 애인이라 하며, 셋째 은퇴 후 여당 의원이 되면서 정치인으로 변신했고 넷째 무엇보다 지금은 열라.. 2020. 10. 9.
국립박물관 온녕군 석곽 이야기 국립중앙박물관 산책로에 전시되어 있는 "온녕군 석곽" 이야기 입니다. 박물관 산책로에 전시된 태종의 일곱째 아들인 온녕군 (1407-1454) 석곽의 덮개돌은 쪼갠 흔적이 있는데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석곽을 무덤에 쓰는 것은 고려시대부터 계속 내려온 전통인데 회곽묘가 보급되기 전까지는 계속 이러한 제도가 고수되었습니다. 다만 석곽 개석이 너무 크고 무거워 사람이 다칠 수 있으니 태종은 개석을 반으로 쪼개어 쓰라는 명을 내립니다."상왕이 지병조사(知兵曹事) 곽존중(郭存中)을 보내어 임금에게 유시(諭示)하기를, "산릉의 석실(石室) 덮개가 넓고 두터워서 운반하기가 어려우니, 두 쪽으로 쪼개어 운반하기 쉽게 하고, 또 그렇게 하도록 법을 세워서 뒷날의 규례가 되도록 하라. 또 들으.. 2020. 10. 9.
忠과 孝, 균열하는 일심동체 임진왜란은 결코 忠과 孝가 합치할 수 없음을 명백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집에선 부모한테 효도를 잘해야 임금한테도 충성할 수밖에 없다는 유교윤리 2천년 역사가 여지없이 무너졌다. 孝와 마주한 忠은 고양이 앞 쥐와 같았다. 忠은 처절하게 패배했다. 그렇다고 孝 역시 일방적 승리를 구가했는가? 孝 역시 타격이 적지 않아 자체 분열을 일으켰으니 왜적 앞에선 부모 버리고 마누라 자식 그리고 애첩 챙기느라 여념이 없었던 것이다. 이 민감한 변화를 조선의 지식인들과 권력은 알았다. 그걸 가장 민감하게 캐취한 이가 내가 보는 한 우암 송시열이었다. (2017. 10. 9) 2020.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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